가장 쿨한 팬츠, 리바이스 501 이야기
패션은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사람이 입고 더불어 생활하고 벗어서 버리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이야기가 생겨난다. 패션이 흥미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것에 스토리가 숨어 있으니까.
19세기 말 미국의 광부들, 1960년대 히피들, 커트 코베인, 스티브 잡스, 그리고 버락 오바마.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리바이스 501을 입었다는 점이다. 올해로 탄생 150주년을 맞이한 501 모델의 역사는 곧 ‘데님사(史)’와도 같다.
501의 역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1800년대 후반부터 1920년대 말까지 이어진 ‘워크웨어 시기’. 1873년, 리바이스 창립자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와 테일러 제이콥 데이비스(Jacob Davis)는 리벳을 데님 팬츠에 다는 방법에 관련된 특허를 취득한다. 이 단순한 아이디어로 그 어떤 옷보다 튼튼한 데님 팬츠가 탄생한 것. 험난한 환경에서 근무하던 광부와 카우보이에게 필요한 모든 면면을 갖추고 있던 501 모델은 미국을 대표하는 워크 팬츠로 거듭난다.
두 번째는 501의 부흥기다. 1930년대 할리우드에 서부극이 유행함에 따라 ‘카우보이 스타일’을 동경하고 따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카우보이들이 가장 즐겨 입던 팬츠인 501이 패셔너블한 팬츠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이후 말론 브랜도, 제임스 딘, 스티브 맥퀸 같은 스타들이 501에 ‘남성성’이라는 DNA를 주입한다.
그러나 리바이스는 501이 남성들의 전유물로 남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카우보이일까? 개척 정신으로 무장한 리바이스는 1934년, 최초의 여성용 데님인 ‘레이디 리바이스’를 선보인다. 기존 501 모델과의 차이점은? ‘높고 잘록한 허리 라인’. 덕분에 라인을 강조한 여성스러운 데님이 완성되었다. <보그>에 리바이스가 처음 등장한 것도 1934년이다. ‘리바이스가 없는 카우보이는 카우보이가 아니다.’ 90년 전 <보그> 에디터가 내린 리바이스의 정의였다.
‘거친 삶을 사는 남성들에게만 허용된 바지’를 입은 여성. 생각만 해도 도발적이고 쿨하지 않은가? 마릴린 먼로 역시 이 역설에 매료되었다. 그녀는 평상시에도 501을 즐겨 입었고, 유작이 되어버린 영화 <기인들(The Misfits)>에서도 501을 입고 등장한다.
마지막은 ‘반항기’다. 마릴린 먼로라는 섹스 심벌, 반항기 넘치는 눈빛의 제임스 딘, 레이싱을 즐기던 스티브 맥퀸까지. 1950년대의 501에는 ‘반항’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적당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모터사이클 갱단 ‘헬스 엔젤스(Hells Angels)’의 유니폼 역시 갱단의 패치를 박아 넣은 데님 베스트와 501이었다. 미국의 몇몇 학교가 반항적이고 거친 라이프스타일을 장려한다는 이유로 데님을 금지하고, 리바이스가 기업 차원에서 ‘라이트 포 스쿨(Right for School)’이라는 캠페인을 진행해야 했던 이유다.
리바이스의 이러한 노력은 성공적이었지만, 지금도 501에는 반항과 자유라는 코드가 살아 숨 쉰다. 자유로운 삶을 꿈꿨던 히피들은 501을 커스텀해 ‘벨 보텀(Bell Bottom)’이라 불리는 나팔바지를 입었다. 패티 스미스는 피스 심벌을 그려 넣은 501을 즐겨 입었고, 커트 코베인은 패치워크가 들어간 501을 입고 MTV 시상식에 참석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던 날, 대부분의 동독 청년들은 리바이스를 입고 뛰어나와 다 함께 자유를 만끽했다.
150년 동안 501은 끊임없이 변해왔다. 작업복으로 시작해 ‘남자다운’ 팬츠로, 마릴린 먼로의 팬츠로, 그리고 자유로움의 아이콘으로. 그리고 2023년에도 어떤 블루칼라 노동자는 리바이스를 입고 일터로 향할 것이고, 록 스타가 되고 싶은 누군가는 리바이스를 입고 기타를 들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떤 아이콘이 501을 선택해 이 오래된 팬츠에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부여할지 모르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리바이스보다 쿨한 팬츠는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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