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풍 로맨스의 안락함, ‘일타 스캔들’
<일타 스캔들>(tvN)이 방송 3주 만에 시청률 11%를 넘기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은 편안함이다. 우리는 이 드라마가 어디로 향하는지 안다. 주인공 행선(전도연)과 치열(정경호)은 크고 작은 장애를 겪고 좌충우돌하겠지만 결국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호감에서 사랑으로 발전할 것이다. 모든 오해는 풀리고 사건은 해결되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고 나쁜 선택을 해버린 착한 사람들은 반성하고 가족은 서로를 보듬을 것이다. 긍정적이고 예측 가능하고 안전한 세계다.
이 드라마의 편안함은 또한 안정된 연출과 연기에서 발생한다. 요즘 한국 드라마 트렌드에 비해 부드러운 조명과 동화 같은 색감, 행선 가족의 오붓한 모습은 미소를 자아낸다. 주역들의 연기 앙상블은 최고다. 전도연은 곧잘 사랑스러운 유혹자를 연기했지만 행선은 여기에 운동선수 출신다운 단순하지만 단단한 마음, 가벼운 몸, 책임감, 생활력을 가미한 캐릭터다. 2000년대 로코 주인공 같은 뻔뻔하고 능청스러운 매력도 있다. 전도연은 이 역할을 과장 없이, 그러나 리듬감 있게 소화한다. 상대역 정경호는 기존 한국 로코 속 재벌 2~3세 캐릭터를 대신하는 ‘일타 강사’ 역을 섹시하게 소화한다. 동시에 이 드라마가 지향하는 상황 코미디에 최적의 연기를 보여준다. 정경호는 어떤 장르에서건 ‘내가 뭔가 보여주겠다’는 강박이 엿보이지 않아서 좋은 배우다. 그의 여유가 진지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치열과 잘 어울린다.
요즘 한국 드라마는 학벌주의가 낳은 괴물들을 자주 호명한다. <SKY 캐슬> <하이클래스> <그린마더스클럽> 등을 통해 이미 익숙한 ‘학낳괴’ 캐릭터들이 <일타 스캔들>에서는 새롭게 다가온다. 그 역시 뛰어난 연기 덕이다. 경쟁심 높은 딸 앞에서는 그의 안위만 생각하는 순한 엄마인 척하면서 뒤에서는 딸의 성적이 무엇보다 중요해 모사도 마다 않는 위선자 조수희(김선영), 첫아들을 망쳐놓고 둘째에게 같은 실수를 반복 중인 차가운 변호사 장서진(장영남)은 어찌 보면 뻔한 캐릭터다. 그런데 그마저 김선영과 장영남이 연기하니 재미가 있다. 올케어반 학부모 모임에서 장영남에게 그러데이션 분노를 뿜어낼 때, 김선영은 세상 드라마에서 듣도 보도 못한 화술과 제스처를 사용한다. 장영남은 이 드라마에서 혼자 다른 온도를 가진 서진을 전혀 힘들이거나 멋 부리지 않고 심상하게 소화한다. 시청자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 극성 엄마들의 난동이, 이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하는 맛에 오히려 즐겁다. 행선의 친구로 출연하는 이봉련, 행선의 딸 해이 역 노윤서도 재미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극본도 뛰어나지만 가끔 긴장되는 지점이 있다. 그 긴장이 긍정, 부정 어느 쪽으로 결말이 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행선은 치열을 “선 넘는 거 싫다면서 막상 선을 넘어도 밀어내진 않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말마따나 행선은 선을 여러 번 넘었다. 싫다는데 먹이고, 싫다는데 놀자 하고, 싫다는데 연락하고,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딸의 시험 전날 학원 사무실에 마구잡이로 들이닥쳐 오해 살 만한 행동도 한다. 어찌 보면 ‘민폐’ 캐릭터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행선의 동생이 스토커로 오해받아 경찰에 끌려가고 행선이 사과를 하는 장면은 ‘과연 저게 맞나?’라는 의문을 일으킨다. 다행히 훌륭한 연기와 연출, 극본의 다른 장점이 곧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리게 했다. 하지만 연쇄살인이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이 아기자기한 드라마에 조화시키는 건 또 다른 과제가 될 것이다. 작가 양희승은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과 <순풍산부인과>부터 <조선추리활극 정약용>, 청춘 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 장편 가족극 <한 번 다녀왔습니다> 등 다양한 장르와 포맷을 넘나들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고려하면 <일타 스캔들> 안에 재치 있는 코미디, 운동선수 출신 여주인공의 로맨스, 가족 드라마, 그리고 살인 사건이 한데 섞이는 게 납득이 가고, 잘 마무리될 거라는 믿음도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드라마 초반의 매력이 퇴색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건 우리 시청자들이 모처럼 찾은 아늑한 세계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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