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 하디드의 스프레이 드레스, 지속 가능의 두 얼굴
2023 S/S 파리 패션 위크 최고의 순간으로 꼽히는 벨라 하디드의 스프레이 온 패브릭 드레스.
퍼포먼스 그 이상의 가치를 보여줬지만, 패션이 지속 가능성에 여전히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재확인시켰다.
스프레이 온 드레스가 이번 시즌 파리 패션 위크에서 관심을 독차지했다. 그렇지만 코페르니 런웨이에서 벨라 하디드가 착용한 스프레이 온 드레스가 지속 가능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을까? 짧게 답하자면 ‘아니요’다.
2003년 이 스프레이 온 소재를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패브리칸(Fabrican)을 설립한 마넬 토레스(Manel Torres)에 따르면 이 소재는 세탁해 다시 입을 수 있고, 캔에 다시 넣어 나중에 다시 분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사용이 가능하더라도 캔에서 패브릭을 분사하는 것 자체가 더 많은 에너지와 화학물질을 사용할 수 있으며, 옷에 쓰이는 다른 패브릭에 비해 사실상 더 많은 폐기물을 배출할 수 있다. 그리고 당장 런웨이에서는 멋져 보였지만, 재포장과 재사용은 고사하고 집에서 직접 옷 모양으로 분사하는 것은 상상조차 쉽지 않다(코페르니의 런웨이 공간을 자욱하게 채운 패브리칸의 연기만으로도 당신을 단념시키기에 충분할지 모른다).
“그들은 가장 비효율적이고, 가장 문제적인 전달 장치인 에어로졸(Aerosol)을 기존에 쓰이지 않던 산업에 도입하고 있습니다.” 투자 회사 세이퍼 메이드(Safer Made)의 창립 멤버이자 화학자 마틴 멀비힐(Martin Mulvihill)이 말했다. 금속 캔이라 해도 에어로졸 캔은 일반적으로 재활용할 수 없다. 가압 상태인 이 캔은 너무 위험해 재활용 센터에서 수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그리고 멀비힐에 따르면 패브리칸이 기술 개발에서 지속 가능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에어로졸 제품이 주로 사용하는 가장 우려되는 화학물질 중 일부를 피하고 있지만, 이는 패션계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이 기술이 파리 런웨이에서 데뷔한 후, 패션계는 이를 지속 가능성의 성과보다 혁신으로서 더 많이 다뤘다. 토레스도 가정에서는 실용적이지 않고(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등 부분에 분사해줘야 한다) 산업 환경에 더 적합해 보인다고 인정했다. 따라서 수거와 리필을 위한 인프라 구축은 패션 산업의 몫이 될 것이며, 이는 폴리에스테르, 코튼 같은 일반 섬유조차 달성하기 어려운 과업이다. 또한 이 기술은 패션이 이미 사용하는 특정 옷감을 대체하기보다, 활용할 또 하나의 소재를 패션계에 제공한다고 말했다.
코페르니의 공동 설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세바스티앙 메예르(Sébastien Meyer)가 쇼에 앞서 가진 <보그> 인터뷰에서 혁신적 잠재성에 대해 얼핏 언급했지만, 파리에서 패브리칸이 사용된 것은 지속 가능성에 관한 공공연한 메시지를 피력하기보다 이목을 집중시키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가능한 미래를 보여주는 것은 우리 같은 디자이너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수익을 얻진 않겠죠. 그렇지만 그런 감성을 이끌어내는 경험, 즉 아름다운 순간이 됩니다.” 그가 인터뷰에서 말했다(그러나 이 기사에 대한 코멘트 요청에는 응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패브리칸이 20년 전 개발된 이래, 패션계는 지속 가능한 소재 측면에서 텍스타일 리사이클링과 저수 염색 시스템 같은 기술 혁신에서부터 소비자와 고객 간 사고방식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진보를 이뤘다. 패브리칸이 출시된 2003년, 지속 가능성에 주목하는 패션 기업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현재는 자사 웹사이트에 지속 가능성 전략을 공표하지 않은 기업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이 드레스가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건 잊힌 기회다. 런웨이에서 야단스럽고 대담하게 지속 가능성을 요구하거나 표현하는 일이 대체적으로 없었던 패션 위크에서 이 스프레이 온 드레스는 많은 럭셔리 브랜드가 실험하는 실질적 대안 소재와 기타 지속 가능성에 관한 이니셔티브보다 소재 혁신뿐 아니라 패션계의 우선 사항을 다루는 대화의 장을 더 많이 열었다. 대형 브랜드가 중요한 지속 가능성 관련 전략 혹은 기후 관련 목표를 마련했음에도 대체적으로 이 사안은 런웨이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은 그것이 패션계에서 얼마나 시급한 우선 사항인지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코페르니 스프레이 온 드레스가 패션 기사를 넘어, 일시적이기는 해도 세계적 현상이 되었습니다. 패션 무대는 이 정도의 성과를 달성하지는 못하죠.” 지속 가능성에 집중하는 인플루언서 도이나 치오바누(Doina Ciobanu)가 말했다. “그것은 지속 가능성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획기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이야기를 전할 제품이 최고의 성과를 거두게 될 것임을 재확인시킵니다. 소통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주류 청중을 사로잡는 법을 배울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를 마련하죠.”
패션계가 공급 체인망의 단순 관행 정도를 넘어 지속 가능성을 우선 사항으로 이끌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요구가 UN, 일부 옹호자들과 인플루언서로부터 점점 빗발치고 있다. 파리 패션 위크에서 등장한 이 드레스는 패션 산업이 실제로 그 잠재력을 수용하지 않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런 자세에 따른 결과 중 하나는 지속 가능성을 우선 사항으로 꼽지만, 브랜드에서 당장 바람직한 선택을 하도록 돕지 않기에 제품 구매에서는 그런 면을 꼭 보여주지는 못하는 고객의 실행 단절을 영구화하는 것이다.
“고객 입장에서 패션, 특히 럭셔리 패션은 꿈, 창의성, 혁신, 아름다움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개념이 지속 가능성과 관련된 사안이 되기 전까지, 고객이 지속 가능성에 연관성을 느끼고 솔직한 관심을 보여주긴 힘들 겁니다.” 밀라노 소재 하이드라 컨설턴시(Hydra Consultancy)의 설립자이자 매니징 파트너 막시밀리아노 니콜렐리(Maximiliano Nicolelli)가 말했다. “각 브랜드가 고객과의 접점이라 할 수 있는 매장, 제품, 광고 캠페인, 디지털 등을 고객과 유의미하게 연결하기 위해 그들의 지속 가능성 관행과 관련한 충분한 타당성과 흥미를 확실히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패션 비즈니스가 이룩한 모든 진보에서, 진정한 지속 가능성이 패션 산업 전반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는 이해가 여전히 부족하다. 레드 카펫 그린 드레스(Red Carpet Green Dress)의 CEO 사마타 패틴슨(Samata Pattinson)에 따르면 이것은 결국 패션 브랜드에 대한 한 가지 질문으로 귀착된다. “당신이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이유가 뭔가요? 패션이 혁신과 흥미를 갈망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지속 가능성이 우리 산업과 지구의 생존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가요? 사실 두 가지 다 맞기 때문에 그것을 추구하는 거죠.” 이를테면 탄소 배출량 감소와 같은 정말 중요한 일이 거의 벌거벗은 벨라 하디드에게 분사해 만든 드레스처럼 대서특필을 만들어내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매력적이고 흥미롭게 만드는 방법을 패션계가 책임지고 찾아내야 한다.
“환경 측면에서 이룬 성과에 걸맞은 수준의 참여와 관심을 끌어내지 못하다니 정말 실망스럽죠. 하지만 코페르니의 잘못은 아닙니다. 오히려 환경친화와 지속 가능성의 실천 능력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해온 브랜드에 잘못이 있을 것입니다. 그 용어를 남용함으로써 지속 가능성 관련 성과의 영향력을 무색하게 만들어온 브랜드가 넘쳐나니까요.” 치오바누가 말했다. “지속 가능성 관련 콘텐츠의 기저에는 패션 애호가들이 애초에 추구하는 패션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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