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100’ 말고 나의 피지컬
소중했던 내 몸아, 이젠 뜨거운 안녕.
넷플릭스의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피지컬: 100>은 육체파 ‘오징어 게임’ 같다. 나이, 성별, 체급 상관없이 ‘피지컬’에 자신 있는 100인이 모여 경쟁한다. 첫 화는 근육 넘치는 자신의 상체를 본뜬 토르소와 함께 참가자들이 등장했다. 보디빌더, 운동 유튜버, 격투기 선수, 올림픽 국가 대표, 교도관, 군인, 팔씨름 대회 우승자, 모델, 안무가까지. 이들은 오래 매달리기, 공 뺏기 등 매회 몸으로 경기를 치르며, 탈락자는 자신의 토르소를 망치로 부수고 떠난다. 이 프로그램이 반가운 첫 번째 이유는 ‘피지컬’을 겨룬다는 점이다. 50년 역사의 <장학퀴즈>부터 추리 예능 프로그램까지 누가 머리를 잘 쓰는지 겨루는 판은 많았지만 피지컬을 두고 겨루는 방식은 신선하다. 물론 이 프로그램에서도 어떤 방식으로 몸을 쓰고 경기를 치를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바탕은 힘과 운동 능력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근육을 보는 재미가 있다. 저 근육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인내의 시간, 고통이 있었을까. “근육통이 없으면 그날 훈련을 덜한 것이 아닐까 자책한다”는 선수들을 진심으로 존경해왔다. 보디 프로필을 찍기 위해 열심히 몸을 만들고 촬영 후 일주일 만에 무너질지라도, 한순간을 위해 노력한 그들을 충분히 인정한다. 하지만 몇몇 참가자가 약물로 근육을 키웠다는 소문이 돌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나도 피트니스에 집착한 적 있다. 1년 동안 주 3회 개인 트레이닝을 받고, 나머지 요일에도 헬스클럽에서 운동했다. 살을 빼고 싶어 시작했는데, 어깨 결림과 두통이 없어지는 것에 중독되더니, 배에 세로선이 생기자 완전히 빠져버렸다. 주량도 세졌다. 평일 퇴근 후 술자리도 피곤하지 않은 나를 보면서 ‘강해졌다’고 느꼈다. (근육에 치명적이지만 술은 안 끊었다.)
자신감이 충만해져 여러 운동을 배우러 다녔다. 셀프 디펜스(자기방어)의 일환으로 크라브 마가를 기웃거렸고, 주말에는 파쿠르를 배우려고 버스를 타고 홍대 놀이터에 갔다. 파쿠르는 도심에서 여러 장애물을 활용하는 훈련이니만큼 시소를 뛰어넘고 놀이터 담을 타면서 무릎도 꽤 깨졌다. 달리기 꼴찌, 체력 5급(알다시피 제일 낮은 등급)이어서 체육 시간이 가장 싫었는데 그간 나를 몰라본 것 같았다. 자꾸 안된다 안된다 하니까 안됐던 거구나. 나는 더 이색적인 격투기 형태의 운동을 찾았다. 그러다 건강검진 후 급하게 수술했다. 몸속 장기 하나가 무너진 상태였다. 몸에 배신당한 것 같았다. 내가 얼마나 애썼는데 어떻게 이러니? 준 사랑을 되돌려받지 못한 기분. 그건 집착이었는데 말이다.
요즘처럼 몸에 대해 많이 말하는 시기가 있었나? 우리는 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걱정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돈을 쓴다. 학계에선 신체적 전환(Bodily Turn)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요즘 중요한 것은 정신이 아니라 몸이라는 것이다. 플라톤이 “몸은 정신의 감옥”이라 말했듯이 철학에서는 오래도록 몸을 폄하하고 이성을 중시했다. 몸이란 욕구로 가득 차 있어서 정신을 어지럽히기에 철학자들은 몸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찾길 바랐다. 20세기 들어 철학은 경멸의 대상이던 몸을 조금씩 복귀시킨다. 꼭 철학계를 꺼내지 않아도 우리 일상은 몸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초점이 조금씩 바뀔 뿐이다. 근래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몸을 긍정하기) 캠페인도 결국 몸에 관한 이야기다.
몸이란 무엇이고, 좋은 피지컬이란 뭘까? 몸문화연구소의 김종갑 교수는 공저 <몸의 철학>에서 “몸에 대한 지식은 어느 때보다 풍부해졌지만, 정작 몸이란 무엇인가란 철학적 질문에 답은 없다. 이 질문이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윤리적 질문, 나는 무엇인가를 묻는 정체성의 문제와도 직결된다”고 말한다. 몸을 정의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삶의 스타일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도 생각해봤다. 나한테 몸은 어떤 의미지? 10대, 20대에는 몸은 외적 아름다움이었다. 말랐다는 소리를 들었어도 더 빼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이어트 관련 양약, 한약, 침, 레이저 등 당시 유행하면 거의 했다. 30대에는 체력이 조금씩 저하되고 나이가 느껴지면서 몸은 건강이었다. 처음엔 육체에 집중돼 여러 운동을 했고, 요가를 만나면서 정신 세계까지 포함시켰다. ‘Health(건강)’란 단어는 ‘Whole(전체)’에서 나왔으니까.
마흔 넘은 지금, 내게 몸이란 무엇일까? ‘나마스테’를 말하면서 나는 원하는 피지컬, 그러니까 심신의 균형을 향해 가고 있는가? 물론 크게 도움이 된다. 머리 서기가 존재의 뿌리를 하늘로 역전시키는 자세라는 것에 감명받고 ‘균형’을 생각했다. 생전 처음 생각해본 주제였다. 요가 하면서 왼발 넷째 발가락이 기형임을 알았다. 40년 동안 몰라봐서 미안해. 요가는 나를 하나씩 뜯어보고, 아사나에 통증을 느끼면서 불균형인 내 몸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과정이다. 요가를 7년여 해오면서 내 심신은 전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피지컬이 좋은 것인가? 내게 몸이란 무엇인지 명확히는 정리되지 않았다.
오래 섭식 장애를 앓던 친구가 있다. 그는 몸 이야기를 거부한다. 몸과 오래 싸워온 그는 섭식 장애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다른 영역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자신을 비롯해 특정 개인의 몸 상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멈추기로 했다고. “우리가 한 번이라도 몸에 대해 닥친 적 있었니?” 몸에 대해 좋다, 나쁘다, 부럽다, 해방되자, 여러 말을 얹으면 누구에게도 도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난주에 나는 종합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했다. 조직 검사 디데이까지 매일 유튜브에서 그 병을 검색했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려 했지만 침대에 누우면 두려워졌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때 스트레스 받지 말걸, 그거 먹지 말걸. 지난 일을 떠올리면서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았다.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병에 좋다는 식재료 몇 개 주문한 것뿐이었다. 조직 검사일, 생각보다 아파서 눈물이 났다. 간호사는 출혈이 있으니 30분 동안 검사 부위를 손으로 누른 뒤 귀가하라고 했다. 가운 형태의 분홍색 환자복을 입고 가슴을 누른 채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 여자도 같은 조직 검사를 받은 듯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30분이 됐는지 여자는 옷을 갈아입으려 탈의실로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각또각 소리가 났다. 은색으로 반짝이는 킬 힐을 신고 여자가 지나갔다. 허리를 조인 플레어 형태의 벨벳 코트도 만화처럼 찰랑거렸다. 조직 검사를 마친 상태였기에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도 굽 소리가 너무도 경쾌했다. 세상이 가하려는 위해에 굴하지 않고, 나답게 사는 여성의 상징 같았다. 놀랍게도 나도 해방되고 싶어졌다. 병을 걱정하고, 나를 탓한 죄책감에서. 몸은 아플 수도 있다!
너무 확대 해석해 감응한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평생 몸 걱정하고 관리하고 집착하던 내가 좀 지친 건 아닐까. 이제는 받아들이고 싶었나 보다. 섭식 장애인 친구가 했던 말처럼, 나도 내 몸에 그만 입 닫을 때가 아닌가 싶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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