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 벗고 우아해지기
하의 없이 속옷만 입으라니! 그간 염두에도 두지 않았던 팬츠리스(Pantsless), 일명 하의 실종 트렌드. 페라가모의 컬렉션을 보니 굳건하던 마음이 흔들립니다. 어떤 팬츠보다 우아했거든요.
지난 시즌 런웨이에서는 팬츠를 구경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한차례 신드롬을 일으킨 보테가 베네타의 룩부터 프라다, 생 로랑, 미우미우, 코페르니 등 굵직한 브랜드가 언더웨어를 과감히 드러내며 노 팬츠를 외쳤지요.
하우스의 새로운 면모를 마주할 수 있었던 맥시밀리언 데이비스의 페라가모 컬렉션도 마찬가지였습니다(페라가모가 이토록 관능적일 줄이야!). 일출과 일몰을 닮은 나른하고 강렬한 레드로 뒤덮인 런웨이에서 단연 눈에 띈 건 언더웨어가 비치는 시스루 셔츠 드레스와 단독으로 착용한 보디수트였지요. 2월 25일 데이비스는 2023 F/W 컬렉션을 통해 지난 시즌 ‘은근슬쩍’ 선보인 이 팬츠리스 실루엣을 좀 더 본격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이제 막 날개를 펼친 신인 디자이너가 9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굵직한 브랜드에서 이토록 대담한 스타일을 반복해서 선보인다? 한 번쯤 더 유심히 들여다보고 싶어졌죠.
F/W 컬렉션이어서일까요? 데이비스는 맨다리를 온전히 드러내는 대신 블랙 타이츠로 다리를 꽁꽁 감쌌습니다. 불투명 소재라 피부와 언더웨어가 전혀 비치지 않았죠. 보디수트나 언더웨어 스타일의 쇼츠로 스타일링해 애초에 그럴 걱정도 없었지만요. 무엇보다 하의 실종 실루엣이 이토록 고상해 보일 줄은 몰랐습니다.
우아함은 ‘핏’에서 나온다고 했던가요? 헐렁한 핏 대신 허리선을 강조하고 정교한 테일러링이 가미된 룩을 연달아 선보인 데이비스! 하의 실종 룩마저 우아했는데요. 단아하고 짧은 길이의 블레이저 재킷에 스타킹을 신은 모습을 보세요. ‘파격적’이라는 말보다는 ‘기품 있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핵심은 팬츠리스 패션의 짝꿍과도 같은 오버사이즈 블레이저나 롱 코트 대신 타이트한 핏의 재킷을 입을 것!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가리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이 훨씬 더 쿨하고 멋스럽죠.
번외로 하의를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브리프 스타일의 울트라 쇼츠로 대체해보세요. 셋업 스타일로 소화한다면 비즈니스 룩으로도 오케이입니다.
지난 시즌에 비하면 레드 컬러를 애써 자제(?)한 듯한 데이비스. 그래서인지 레드 룩이 되레 시선을 잡아끌었는데요. 처진 어깨선, 손목을 한참 넘는 조르개, 넉넉한 소매로 아늑한 기운을 발하는 스웨터와 다리 라인을 그대로 뽐낸 짱짱한 타이츠, 반짝이는 힐과 담백한 포인트가 되어준 화이트 백까지. 고급스러움과 도발적인 분위기가 동시에 느껴집니다.
외출 룩으로 시도해보고픈 스타일링! 그간 쟁여두기만 했던 화려하고 볼드한 액세서리를 세상에 자랑하기에도 좋은 기회고요. 오프숄더 톱과 타이츠로 뭐 하나 쉬운 아이템이 없지만 올 블랙 패션으로 소화하니 시크하기만 합니다.
하의 실종 패션도 충분히 웨어러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페라가모의 컬렉션! ‘헉’ 소리부터 절로 나오던 파격적인 패션이 아니라 더 시도해보고 싶어집니다. 장점도 꽤 많습니다. 상하의 매치 고민은 줄고, 다리는 집에 있을 때보다 편안할 테죠. 그러니 올해는 배를 꽉 조이던 바지를 하루쯤은 벗어 던져봅시다. 자유롭다 느낄 때까지 자유로워보자고요, 적어도 패션에서만큼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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