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좋아하세요?
뚜벅이 도시 산책자인 나는 어느 볕 좋은 날 문득 고개를 들었다가 구름과 만났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떠 있는 한없이 새하얗고 깨끗한 뭉게구름 서너 조각. 나는 그대로 구름에 매료됐다. 그때부터 종종 구름 사진을 찍는다. 구름 보기의 가장 큰 매력은 단 한번도, 단 한순간도 같은 구름을 볼 수 없다는 데 있다. 구름은 끊임없이 변하고 끝없이 흐른다. 지금, 이 순간에 본 저 구름은 오직 지금 이 순간의 나와만 만나는 것이다. 그뿐인가. 나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에 눈으로 보면 구름이 한없이 천천히 느릿하게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은 강력한 흐름과 에너지를 갖고 치열하게 움직인다. 자연 속에서 느림과 역동이 하나일 수 있다는 걸 육안으로 확인하는 드문 순간이다. 여러 상태와 형태의 구름을 보고 있자면, 때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다. 나를 감싸고도는 구름에 젖을 때면 이렇게 홀로 배회하다 구름과 만난 ‘나’라는 존재를 강렬하게 느끼는 것이다. 반대로 구름을 보는 데 정신이 팔려 그야말로 ‘멍을 때릴 때’면 ‘나’라는 존재를 까무룩 잊어버리기도 한다.
구름에 빠진 건 나만이 아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추종자들에 맞서 구름 추적자들이 있고 2005년에는 ‘구름감상협회’가 생겨나 120개국 5만3,000명 이상의 회원을 두었다. 이 협회를 만든 개빈 프레터피니가 쓰고 회원들이 찍은 사진과 구름에 관한 미술사, 문학사 이야기를 함께 담은 <날마다 구름 한 점>(김영사, 2021)은 구름 애호가들에게 볼거리가 가득한 아카이브다. ‘자신이 하늘 속에서 살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우린 하늘 아래 사는 것이 아니다. 하늘 속에 살고 있다. 우리의 대기는 하나의 거대한 바다이고, 우리는 그 안에 살고 있다. 이 바다는 액체 상태의 물 대신 기체 상태의 공기로 이루어져 있지만 대서양이나 태평양과 마찬가지로 엄연한 바다다.’(p.7) 그런 만큼 하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건 온당하다. 구름을 알아가는 건 하늘을 이해하는 방법, 하늘과 관계를 맺는 새롭고 흥미로운 길이 돼줄 것이다. 구름을 추적하고, 구름을 보는 건 목적 없는 즐거움이다.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되고, 뭔가를 하지 않을 때야말로 더욱 자유로이 구름을 보며 상상할 수 있다. 구름은 시시각각 변하고 이미 저만치 흘러가버렸으니 계획을 잡고 구름을 추적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구름을 보겠다는 마음가짐만 준비하면 충분하다.
이 책은 365개의 구름을 보며 그 순간의 구름과 만나는 즐거움만큼이나 구름이 등장하는 예술 작품을 통해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철학을 읽어보는 재미를 준다. 우리의 기분이 구름에 영향을 받는다는 걸 생각한다면 화가들이 풍경화에 구름을 그려 넣은 것이 충분히 납득된다. 그림에 사실적인 구름이 처음 등장한 건 12세기 중국 미술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 증거로 미우인의 ‘구름 낀 산’이 등장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표현된, 하늘을 가득 채운 소용돌이를 두고 생레미드프로방스에 상당 기간 지속되는 사나운 미스트랄일 가능성을 언급하며 또 하나의 가능성도 덧붙인다.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후지산 36경’ 시리즈 가운데 틈새고적운이 흘러가는 후지산 풍경을 ‘청명한 아침의 시원한 바람’이라 제목 붙인 데 대해 ‘좀 부적절한 제목’이라고 평한다. 구름 애호가다운 지적이다. 호쿠사이의 판화 ‘가이 지방의 미시마 산길’도 엄청난 크기의 편백나무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후지산의 깃발구름을 완전히 놓쳤다며 “이런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나!”라고 귀여운 일침을 가한다.
꽤 두툼한 책 마지막 페이지의 핵심은 ‘그저 고개를 들어 구름을 보자’일 것이다. 이 책에 실린 흥미로운 구름을 보고 혹여 특별하고 드라마틱한 형태의 구름만 추적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구름 추적의 핵심을 놓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일상적인 공간과 순간에서 얼마든지 색다르고 이국적이며 미묘한 구름과 만날 수 있다. 그 순간의 당신에게만 모습을 드러내는 구름이라는 점만 기억한다면. 날마다 새로이 만나는 구름 한 점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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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xels,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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