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구름 좋아하세요?

2023.03.04

구름 좋아하세요?

Pexels

뚜벅이 도시 산책자인 나는 어느 볕 좋은 날 문득 고개를 들었다가 구름과 만났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떠 있는 한없이 새하얗고 깨끗한 뭉게구름 서너 조각. 나는 그대로 구름에 매료됐다. 그때부터 종종 구름 사진을 찍는다. 구름 보기의 가장 큰 매력은 단 한번도, 단 한순간도 같은 구름을 볼 수 없다는 데 있다. 구름은 끊임없이 변하고 끝없이 흐른다. 지금, 이 순간에 본 저 구름은 오직 지금 이 순간의 나와만 만나는 것이다. 그뿐인가. 나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에 눈으로 보면 구름이 한없이 천천히 느릿하게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은 강력한 흐름과 에너지를 갖고 치열하게 움직인다. 자연 속에서 느림과 역동이 하나일 수 있다는 걸 육안으로 확인하는 드문 순간이다. 여러 상태와 형태의 구름을 보고 있자면, 때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다. 나를 감싸고도는 구름에 젖을 때면 이렇게 홀로 배회하다 구름과 만난 ‘나’라는 존재를 강렬하게 느끼는 것이다. 반대로 구름을 보는 데 정신이 팔려 그야말로 ‘멍을 때릴 때’면 ‘나’라는 존재를 까무룩 잊어버리기도 한다.

개빈 프레터피니 <날마다 구름 한 점>(김영사, 2021)

구름에 빠진 건 나만이 아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추종자들에 맞서 구름 추적자들이 있고 2005년에는 ‘구름감상협회’가 생겨나 120개국 5만3,000명 이상의 회원을 두었다. 이 협회를 만든 개빈 프레터피니가 쓰고 회원들이 찍은 사진과 구름에 관한 미술사, 문학사 이야기를 함께 담은 <날마다 구름 한 점>(김영사, 2021)은 구름 애호가들에게 볼거리가 가득한 아카이브다. ‘자신이 하늘 속에서 살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우린 하늘 아래 사는 것이 아니다. 하늘 속에 살고 있다. 우리의 대기는 하나의 거대한 바다이고, 우리는 그 안에 살고 있다. 이 바다는 액체 상태의 물 대신 기체 상태의 공기로 이루어져 있지만 대서양이나 태평양과 마찬가지로 엄연한 바다다.’(p.7) 그런 만큼 하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건 온당하다. 구름을 알아가는 건 하늘을 이해하는 방법, 하늘과 관계를 맺는 새롭고 흥미로운 길이 돼줄 것이다. 구름을 추적하고, 구름을 보는 건 목적 없는 즐거움이다.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되고, 뭔가를 하지 않을 때야말로 더욱 자유로이 구름을 보며 상상할 수 있다. 구름은 시시각각 변하고 이미 저만치 흘러가버렸으니 계획을 잡고 구름을 추적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구름을 보겠다는 마음가짐만 준비하면 충분하다.

이 책은 365개의 구름을 보며 그 순간의 구름과 만나는 즐거움만큼이나 구름이 등장하는 예술 작품을 통해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철학을 읽어보는 재미를 준다. 우리의 기분이 구름에 영향을 받는다는 걸 생각한다면 화가들이 풍경화에 구름을 그려 넣은 것이 충분히 납득된다. 그림에 사실적인 구름이 처음 등장한 건 12세기 중국 미술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 증거로 미우인의 ‘구름 낀 산’이 등장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표현된, 하늘을 가득 채운 소용돌이를 두고 생레미드프로방스에 상당 기간 지속되는 사나운 미스트랄일 가능성을 언급하며 또 하나의 가능성도 덧붙인다.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후지산 36경’ 시리즈 가운데 틈새고적운이 흘러가는 후지산 풍경을 ‘청명한 아침의 시원한 바람’이라 제목 붙인 데 대해 ‘좀 부적절한 제목’이라고 평한다. 구름 애호가다운 지적이다. 호쿠사이의 판화 ‘가이 지방의 미시마 산길’도 엄청난 크기의 편백나무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후지산의 깃발구름을 완전히 놓쳤다며 “이런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나!”라고 귀여운 일침을 가한다.

Pexels

꽤 두툼한 책 마지막 페이지의 핵심은 ‘그저 고개를 들어 구름을 보자’일 것이다. 이 책에 실린 흥미로운 구름을 보고 혹여 특별하고 드라마틱한 형태의 구름만 추적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구름 추적의 핵심을 놓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일상적인 공간과 순간에서 얼마든지 색다르고 이국적이며 미묘한 구름과 만날 수 있다. 그 순간의 당신에게만 모습을 드러내는 구름이라는 점만 기억한다면. 날마다 새로이 만나는 구름 한 점임을.

포토
Pexels, 김영사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