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진이 웃고, 춤추고, 말하는 법
무대에서 그토록 자유분방하면서도 스스로를 설명하는 일은 어렵다는 류진. 그런 그가 뜨겁고 솔직하게 웃고, 춤추고, 말했다.
마이크와 키보드, 카세트 플레이어와 바이닐 앨범까지, 음악으로 둘러싸인 세계로 류진을 초대한 날, 익숙한 세상을 마음껏 활보해달라는 주문에 있지의 센터(이자 메인 래퍼, 서브 보컬, 리드 댄서인) 류진은 의외로 수줍어했다. “멤버들과 함께라면 떨지 않을 텐데 혼자라 긴장돼요. 아무래도 에너지를 더 끌어올려야겠어요.” 이윽고 류진은 의상과 소품, 조명과 음악에 따라 미묘하게 힘과 온도를 조절하며 낯선 세계에 흠뻑 스며들었다. 타고난 절제미와 찰나의 순간까지 꼿꼿한 디테일. 첫 단독 화보 촬영 내내 보여준 류진의 ‘무브’는 대중이 추앙하는 퍼포머 류진의 미덕과도 정확하게 일치했다.
지난해 8월부터 이어지는 있지의 첫 번째 월드 투어 ‘CHECKMATE’에서 개인 무대의 첫 주자로 등장하는 류진은 풍성한 보라색 재킷을 입고, 도자 캣의 ‘Boss B*tch’에 맞춰 날카로운 랩과 펑키한 춤을 선보이고 있다. “첫 솔로 퍼포먼스이기도 하고, 멤버들과 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싶어 선곡을 깊이 고민했어요. 랩과 춤 모두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곡이 좋겠다 싶었죠.” 누군가에게 류진의 매력을 가장 빠르게 납득시키려면 류진의 춤을 보여주면 된다. 2017년 연습생 신분으로 오디션 프로그램 <믹스나인>에 등장해 수수한 차림과 반전되는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일 때부터 춤은 류진의 가장 믿음직한 무기였으니까. “연습생 때는 솔직히 제가 ‘짱’이라고 생각했어요. 춤을 잘 춘다는 자신감, 춤출 때 스스로 멋있다는 확신이 있었죠. 그러다 보니 늘 춤추는 게 행복했고요. 당시 제 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곡이 ‘Uptown Funk’였는데 지금도 그 음악을 들으면 그때의 마음이 밀려들어 금세 신이 나요.” 그렇다면 지금 류진에게 춤이란? “일에 가깝죠(웃음). 잘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지만 잘해내는 게 더 중요해요. 힙합과 보이 그룹 댄스를 즐겨 추던 제가 걸 그룹 안무에 집중하고, 군무를 중시하게 되면서 스타일도 많이 바뀌었어요. 다섯 명이 함께 무대에 설 땐 튀어나오는 개성을 누르고, 조화를 이루는 데 신경을 쏟죠.” 안무 연습과 댄스 커버 영상, 댄스 챌린지와 틱톡 콘텐츠 등 온갖 형태의 무대를 바삐 누비는 류진에게 춤이 권태로웠던 적은 한 번도 없을까. “그럴 때는 춤을 배우러 가요. 일처럼 춤을 소화하다 보면 동작 하나하나에 예민해지는데 새로운 안무를 배우면 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더라고요. 특히 리더인 예지 언니가 아주 훌륭한 파트너랍니다. 요즘은 손가락을 잘 써야 하는 터팅 댄스처럼 포인트를 살리는 춤에 관심이 가요.”
나른한 평일 오후, 몽글몽글하면서도 또렷한 류진의 음성이 느긋하게 이어졌다. 팬들과의 라이브 방송에서 자주 보이는 칭찬처럼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춤 이야기를 한바탕 나눈 후, 어느 인터뷰에서 ‘WANNABE’를 녹음하며 처음으로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던 류진이 이제는 보컬에도 훨씬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는지 물었다. “확실히 그래요. 월드 투어 중 발매한 여섯 번째 미니 앨범 때는 녹음할 때 톤을 여러 개 준비해 갔죠.” 그루브가 돋보이는 새 타이틀곡 ‘Cheshire’에서 류진은 카랑카랑한 래핑과 묵직한 저음을 오가며 다채로운 목소리를 뽐낸다. 물론 데뷔곡 ‘달라달라’에서부터 꾸준히 이어온 있지의 메시지는 그대로 유지한 채. “자신의 감정과 취향에 확신을 갖고, 자기답게 살라고 노래하면서 저도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는지 아직도 헷갈리지만 적어도 그걸 찾기 위해 스스로에게 몰두하죠.” 타고난 춤 실력 외에 내가 류진에 관해 알고 있었던 점은 다음과 같다.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고, 물욕이 없다는 것(경제관념이 확실하다는 것). 가끔 일기를 쓰고, 혼자만의 산책을 즐기며, 배려가 익숙한 사람이라는 것. 홍콩과 태국으로 이어지는 공연을 위해 출국 직전 마주한 류진은 가장 편안한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어제는 새벽까지 웹툰 <똑 닮은 딸>을 봤어요. 모녀 스릴러인데 흡인력이 대단하더라고요.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동백꽃 필 무렵> <우리들의 블루스>는 한결같이 좋아하는 작품이죠.” 또 물욕은 없는 편이지만 ‘맛있는 한 끼’는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돈이 적든 많든 ‘아까워하자’는 나름의 신념을 갖고 있어요. 그렇더라도 써야 할 땐 확실히 쓰자는 주의예요(최근 류진은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진 복구 작업을 위해 성금 5,000만원을 전달했다).” 류진은 스스로에겐 엄격하고, 타인에겐 한없이 관대한 사람처럼 보였다. 팀워크를 위해 남몰래 노력하는 것이 있는지 묻자 그가 말했다. “멤버들은 아마 알고 있을 거예요. 표현에 서툰 제가 칭찬과 응원의 말을 많이 해주려고 정말 많이 노력한다는 거. 그러면서 점점 더 말의 힘을 실감하게 돼요. ‘미안해’ ‘고마워’라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못을 흔쾌히 인정하는 건 힘들지만 가치 있는 태도라는 것을 알게 됐죠.” 팬덤 ‘믿지’와의 대화에서도 류진은 따뜻한 말을 곧잘 건넨다. “타인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닌데 팬들에게는 밥 먹었는지 자주 물어요. 다들 항상 밥 든든히 먹고 우리를 보러 왔으면 좋겠거든요.”
있지로 살아가며 류진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변화하는 중이다. 최근 류진은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있지로 지낸) 4년이라는 시간이 조급하게 느껴지기도,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라고 고백했다. 아티스트로서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기대감, 한결같이 옆을 지키는 멤버와 팬들에 대한 믿음이 한데 뭉쳐 있는 표현이었다. “콘서트가 다 끝나고 난 뒤, 멤버들과 다 함께 무대 위에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누워 있어요. 한참의 침묵 끝에 ‘우리 지금 무슨 청춘 영화 찍냐’라고 말하며 웃지만 내심 그때가 참 좋더라고요. 우리 좀 멋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월드 투어를 시작하기 전, 류진은 멤버 한 명으로도 무대가 꽉 차 보였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안고 새로운 여정을 기대했다. 그리고 계획된 투어 일정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류진의 자신감은 부쩍 높아진 상태다. “제가 옷을 빨리 갈아입는 편이라 멤버들 개인 무대를 꽤 집중해서 보는데요. ‘저렇게도 퍼포먼스를 할 수 있구나’ ‘혼자서도 무대가 꽉 차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멤버들이 정말 자랑스럽더라고요. 먼 미래지만 언젠가 솔로 아티스트로 출격하게 된다면 다들 엄청난 무대를 보여줄 것 같아요. 저 역시 팬들이 좋아하는 강렬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과 놀라운 변신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한 다음 치밀하게 준비해서 무대에 서겠죠?” 류진에게 모든 순간은 시작도, 끝도 아니다. <보그> 디지털 콘텐츠를 촬영하며 고민 끝에 스스로를 ‘갈팡질팡하는 사람’으로 요약한 류진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안고 그저 한 발을 더할 뿐이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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