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YKYK: 제레미 O. 해리스
21세기 들어 모든 아티스트가 공통적으로 가진 것이 있다면, 인스타그램이 아닐까요. 비단 젊은 세대 아티스트뿐 아니라 알렉스 카츠(Alex Katz), 박서보 같은 노장까지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대중과 호흡하죠. 지난 몇 년간 패션계에서 자주 ‘태그’되는 아티스트가 있습니다. 바로 극작가 제레미 O. 해리스(Jeremy O. Harris)입니다.
미국 출신으로 1989년생인 그의 본업은 작가입니다. 예일대학교에서 극작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대표작은 <Daddy>와 <Slave Play>. 예일대학교 재학 당시 집필한 <Slave Play>는 인종과 섹스, 권력, 트라우마를 다룹니다. 2018년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에 데뷔, 제74회 토니상에서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크게 주목을 받았죠. 2020년에는 A24를 통해 배급된 화제의 영화 <Zola>의 시나리오를 공동으로 집필했으며, 샘 레빈슨과 함께 HBO 드라마 <Euphoria> 시즌 2의 공동 제작자로도 활약했습니다.
이처럼 제레미는 극작가 커리어만 해도 정말 탄탄합니다. 요즘에는 직업이 뭔지 알쏭달쏭한 자칭 타칭 인플루언서가 시즌마다 이름을 갈아치우는 세상이죠. 제레미처럼 오랫동안 극작가라는 커리어를 유지한 채 하이브리드처럼 여러 곳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 귀할 수밖에요. 여기에 밈과 틱톡 비디오를 자신의 작업과 엮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유머,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을 입고 쿨하게 소화해내는 애티튜드, 모델로도 손색없는 큰 키, 틱톡은 물론 인스타그램에서 누구보다 활발하게 활동하며 패션, 아트, 영화, 음악을 아우르는 전 세계 인플루언서들과 소통하는 모습. 이토록 다재다능한 젊은 아티스트를 패션계가 가만히 놔둘 리가 없습니다. 그에 대해 기사를 쓰는 걸 넘어, 아예 에디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모델로 활동하길 제안했죠.
2020년 <보그 이탈리아>는 그와 포토그래퍼 타일러 미첼(Tyler Mitchell)에게 화보 기획을 맡겼습니다. 흑인 모델, 포토그래퍼와 함께한 14페이지의 화보에는 현시대에 흑인 아티스트가 겪는 차별에 대한 목소리도 담겼습니다. 한편 <지큐 US>는 2021년 래퍼 릴 나스 엑스의 커버 스토리 인터뷰를 제레미에게 넘겼습니다. 게이로 퀴어 커뮤니티를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는 제레미 O. 해리스와 Z세대를 대표하는 래퍼이자 퀴어 아이콘 릴 나스 엑스의 만남은 다채로운 콘텐츠로 탄생했습니다. 게이 데이팅 앱에서 서로 만났다고 설정한 유머러스한 틱톡 영상, 깊이 있는 지면 인터뷰를 대중에게 전했습니다.
2018년 <지큐 US>는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구찌와 함께 캠페인 비디오를 제작한 적도 있습니다. 베를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패션 필름에 제레미는 단순히 모델로 등장하는 게 아니라 내레이션부터 시나리오까지 담당해 한 편의 단편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와 구찌의 인연은 꽤 깊습니다. 그 후 제레미는 구찌의 패션쇼에 참석하는가 하면 해리 스타일스와 구찌의 캡슐 컬렉션을 입고 매거진 모델로 선 적도 있으며, 극작가나 인플루언서로 공식 석상에 등장할 땐 구찌 옷을 즐겨 입었죠.
그뿐인가요. 넷플릭스 화제작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즌 2에는 패션 디자이너 그레고리 엘리엇 뒤프레(Grégory Elliott Duprée)로 등장했습니다. 에밀리가 생트로페 호텔에서 화려하게 치장한 그레고리를 만난 후 같이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난리가 난 2화 에피소드 기억하시나요? 제레미는 능청스러운 표정 연기와 프랑스어 대사까지 구사하며 맡은 배역을 완벽하게 해냈죠.
이처럼 여러 패션 브랜드와 문화계가 제레미에게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는 뭘까요. 그를 모델로 세운 <뉴욕 타임스>의 <T 매거진> 커버 라인이 그 이유를 간명하게 보여줍니다. “Young, Queer, Gifted & Black.” 젊고, 퀴어이며, 재능 있는, 흑인. 제레미 O. 해리스야말로 시대가 원하는 아티스트죠. 자신의 정체성에 당당하고,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미래 세대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니까요. 최근 그는 후진 극작가 양성을 위해 ‘예일 드라마 시리즈 프라이즈’ 심사 위원으로 나섰습니다. 당대 가장 창의적인 영화를 가리는 선댄스영화제의 2023년 심사 위원도 맡았고요. 올해도 제레미 O. 해리스의 해가 될 것이 자명해 보이는군요!
‘If you know you know’는 많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패션계에서 유의미한 영향력을 끼치는, ‘알 사람은 아는’ 인물에 대해 탐구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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