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가모 왕국의 여성들을 위하여, 완다 백 #아이코닉백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구두를 처음 만든 건 그가 아홉 살 때였습니다. 동네 구둣방에서 빌린 도구로 누나를 위해 흰색 구두 한 켤레를 밤새 만들었죠. 그렇게 구두는 그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 후 나폴리의 작은 신발 가게에서 일하던 그는 1915년 열일곱의 나이에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손 기술뿐 아니라 장사 수완도 좋았던 페라가모는 마릴린 먼로, 주디 갈랜드, 오드리 헵번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신발을 만드는 데 다다랐어요. 할리우드의 첫 황금기 1920년대를 함께한 거죠.
그의 아내 완다 페라가모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인물이었습니다. 그 덕에 기본 소양은 나무랄 데 없었지만, 패션 하우스에 필요한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어요. 하지만 실전만 한 교육도 없죠? 남편 곁에서 사업 경영을 배우며 실전 감각을 익힌 완다는 1960년 페라가모가 사망한 후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하루아침에 가장이 되면서 페라가모 대표라는 역할까지 떠안은 완다. 그는 당시 열아홉이던 장녀 피암마를 수석 디자이너로 앉히는 과감한 결정을 해요. 딸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본 완다 덕에 페라가모는 제2의 전성기를 맞습니다. 윈저 공작 부인, 배우 진저 로저스, 캐롤 베이커 등은 새로운 페라가모의 팬임을 자처했고요. 완다는 페라가모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신발에서 나아가 가방과 스카프, 의류에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죠.
“5분이면 충분해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확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 말이에요”라는 완다의 말에선 자신감이 엿보이죠. 페라가모를 작은 가족 사업에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로 일궈낸 주인공이니 그럴 만도 해요.
페라가모의 심벌 중 하나인 ‘간치니’는 모녀가 하우스를 재건하던 그 시기 태어났어요. 1970년대 후반, 피암마가 어머니를 위해 말굽 모양의 걸쇠가 달린 핸드백을 만들어 선물한 겁니다. 이탈리아어로 작은 금속 고리를 뜻하는 간치니는 언뜻 보면 그리스의 알파벳 ‘오메가’를 닮기도 했어요. 사실 이 모양새는 페라가모 본사가 자리한 피렌체의 중세 건물 팔라초 스피니 페로니(Palazzo Spini Feroni) 문에 연결해 말을 묶는 데 사용한 철제 걸쇠에서 비롯된 거였죠.
그리고 1988년 가을, 페라가모는 네모난 톱 핸들에 간치니를 양쪽에 장식한 가방을 공개합니다. 이번 ‘#아이코닉백’의 주인공인 완다 백이 처음 등장한 거예요. 하우스를 현재의 모습으로 일궈낸 여성의 이름을 딴 가방. 이 가방을 만든 게 살바토레와 완다의 자녀들이라는 사실도 특별함을 더해요. 부모를 향한 자녀들의 헌사처럼 여겨진달까요.
2022년 3월,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하우스를 이끌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맥시밀리언 데이비스를 임명했습니다. 영국 맨체스터 출신으로 런던 칼리지 오브 패션을 졸업한 데이비스는 2020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론칭한 후, 우아함과 세련된 관능미로 리한나와 킴 카다시안 같은 스타일 아이콘들을 사로잡은 인물이에요.
27세의 맥시밀리언 데이비스가 2023년 봄 첫 컬렉션을 위해 아카이브에서 꺼내 든 키워드는 ‘할리우드’. 브랜드의 창립자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1959년 먼로를 위해 만든 체리 레드 색상의 비즈 장식 펌프스는 그 출발점입니다. 스타들의 슈메이커로 일한 창립자의 초창기를 상징하는 이 아이템은 컬렉션 전체를 붉은 색조로 물들였죠.
“할리우드에서 꽃피운 살바토레를 향한 제 방식의 찬사예요. 동시에 저는 새로운 할리우드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일몰이나 일출처럼 편안하면서도 관능적인 순간. 저만의 비전을 페라가모 렌즈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페라가모에서의 첫 컬렉션을 두고 맥시밀리언 데이비스는 이렇게 말했어요.
완다 백은 이 기념비적 컬렉션의 키 액세서리입니다. 클래식 백의 리바이벌 트렌드에 맞춰 시의적절하게 컴백한 완다 백은 데이비스의 재해석을 거쳐 다시 태어난 모습이에요. 낯선 비율, 반짝이는 표면의 블랙과 옹브레 컬러는 간치니 장식의 완다 백에 미니멀하면서도 신선한 매력을 불어넣죠.
간치니 장식은 또 다른 키 액세서리인 엘리나 샌들에서도 멋진 활약상을 보여줍니다. 부드러운 나파 가죽 아웃솔을 매트 골드 또는 래커 처리한 간치니 모양 구두 굽 위에 매단 것인데, 아웃솔과 굽의 곡선 때문에 신은 모습을 보면 얼핏 공중을 걷는 것처럼 보여요.
데이비스는 쇼 노트에 이렇게 전합니다. “제가 임명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이라면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들여다보고, 현재와 연결 고리를 찾는 거였어요. 거기서부터 재창조가 시작될 수 있다고 여겼죠. 저는 각각의 작품이 장난스러우면서도 오브제로서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를 원합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말이죠.”
우리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는 탄생 스토리부터 색상과 소재, 비율의 변주로 만든 익숙한 듯 낯선 매력까지. 새로운 시대의 상징으로 자리 잡기에 완다 백은 모자람이 없어 보입니다.
- 포토
- GettyImagesKorea, Courtesy Photos, Lee Whitt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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