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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자, 윤성빈

2023.03.30

지배자, 윤성빈

사력을 다한 뒤 씽긋 웃는다. 윤성빈이 그렇게 공기의 흐름을 지배한다.

셔츠와 팬츠는 르메르(Lemaire).

윤성빈은 항상 주인공으로 거듭난다. 자신보다 일찍 가능성을 감지한 스승의 부름으로 스켈레톤에 입문한 지 5년여 만에 세계 랭킹 1위에 올랐고, 오랜 영웅이었던 아이언맨의 헬멧을 쓰고,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썰매 종목에서 나온 아시아 최초의 금메달이었다. 소감을 밝히며 윤성빈은 지금 보면 의미심장한 복선처럼 느껴지는 말도 했다. “스켈레톤이란 종목은 끝이 아닌 시작이고, 앞으로 더 잘해나가겠습니다.” 그 후 “후회 없이 즐기겠다”는 각오의 말과 함께 출전한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그가 거둔 성적은 12위. 아쉬워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는 묵묵히 자기만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윤성빈의 개인 유튜브 채널 ‘아이언빈 윤성빈’이 개설됐다. 스포츠에 대한 순수한 애정으로 승리보다는 도전을 겨냥한 그는 홀가분해 보였다. 웬일인지 강력해 보이기도 했다. 순간을 즐기는 히어로에게 두려운 건 없었다. ‘한마디로 괴물’ ‘노력으로 잡을 수 없는 사람’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넷플릭스 시리즈<피지컬: 100> 첫 화, 온갖 감탄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출연자 100명 중 마지막으로 나타난 윤성빈은 새로운 무대를 맘껏 활보했다. 물론 그는 쇼의 우승자가 되지는 못했다.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마지막 화까지 얼굴을 비쳤으니 만족합니다. 100kg의 돌을 끝까지 나르기 위해 의지와 승부욕을 불태우지 않았다는 사실도 개인적으로 만족스럽고요.” 주인공은 패배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진정으로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 결국 주인공이 된다.


카디건은 자노네 바이 슬로웨어(Zanone by Slowear), 팬츠는 인코텍스 바이 슬로웨어(Incotex by Slowear).

요즘 정말 바쁠 텐데 화보 촬영으로 마주하니 새롭군요. 평소 어떤 마음과 기준으로 움직이나요?

모든 걸 재미와 흥미로 결정해요. 취향을 자극하는 기회에 움직입니다. 안 해본 거, 새로운 거 좋아하고요. <보그> 화보 촬영 기회는 사진 찍는 게 서툴고 어렵긴 하지만 계속 피할 수도 없고, ‘하다 보면 잘하겠지’라는 심정으로 수락했어요. 가만 보니 평범하지 않아야 잘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다른 관점으로 임해야죠.

넷플릭스 오리지널 <피지컬: 100>이 한국 예능 프로그램 최초로 넷플릭스 글로벌 TV 쇼(비영어) 부문 1위에 오르는 등 너른 사랑을 받았습니다. 뜨거운 반응을 실감하나요?

제 유튜브 영상 댓글에 외국어가 늘긴 했어요. 물론 큰 변화는 없습니다. 밖에도 훌훌 잘 나가고요. 관심과 인기 때문에 변한다는 게 솔직히 이상한 말처럼 들리기도 해요. 유명세는 순간이니까요. 좋은 반응은 즐겁게 받아들이되 거기에 취하지 않으려 하죠.

이 쇼의 어떤 점에 이끌려 출연을 결심했나요?

사실 처음엔 출연을 고사했어요. 보통 결정을 할 때 뭘 얻을 수 있는지 명확하게 따져보는 편이거든요. <피지컬: 100>에 나간다고 해서 득 될 건 딱히 없겠더라고요(웃음). 제작진 말을 한번 들어보니 남녀 구분 없이 모두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한다는데, 그 점이 흥미롭게 들리기는 했어요. ‘그게 될까?’ 처음엔 미심쩍었죠. 아무리 생각해도 신체적인 측면에서, 특히 남녀가 동등한 조건에서 겨루기는 어렵다고 보거든요. 하도 호언장담을 하니 속는 셈 치고 출연했죠. 어차피 우승은 못할 거라고 보고, 그냥 운동 좋아하는 사람들과 재미있게 놀다 오자는 단순한 마음이었어요.

돌아보니 그래도 얻었다 싶은 건요?

일이죠. 출연하고 나서 아무래도 일이 많아졌으니까요.

재킷과 팬츠는 르917 옴므(Le17Septembre Homme), 슬리브리스 톱은 톰 포드(Tom Ford), 스니커즈는 반스(Vans).

모든 미션에 한결같이 여유롭고 침착하게 임하는 당신의 ‘강철 멘탈’에 감탄한 사람이 많아요.

워낙 단순하고 현실적이에요. 환경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고민이 생겨도 오래 담아두지 않아요. 주변에 조언을 구할 때도 정말 가까운 사람들 몇 명에게만 물어봐요. 의견이 너무 많아도 안 좋더라고요.

<피지컬: 100>은 ‘완벽한 피지컬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서 탄생했죠. 다양한 형태의 ‘몸’과 겨루며 내린 나름의 결론이 있나요?

‘확실한 건 나는 아니다(웃음).’ 필요 이상으로 운동하고, 절제된 식단으로 매일매일 살아가는데 그게 사실 몸을 망가뜨리거든요. 운동선수들이 왜 몸이 자주 아프겠어요. 과하게 사용하니까 그렇죠. 완벽한 피지컬을 원한다면 밥 잘 먹고, 산책 하루 1시간 정도 하고, 컨디션 괜찮은 날엔 30분 정도 천천히 뛰면 충분합니다.

지난해 여름 개설한 개인 유튜브 채널 ‘아이언빈 윤성빈’의 구독자가 어느덧 47만(3월 기준)을 넘었어요.

약하죠, 그 정도면(웃음). 목표가 1,000만이라고 말한 적도 있는 걸요. 올림픽 끝나고 한동안 잠잠해졌다가 유튜브를 시작하니 조금씩 다시 알아봐주시더라고요. 이번에 <피지컬: 100> 출연하면서 또 유입이 좀 됐고요.

어쩌다 유튜브 채널을 열게 된 건가요?

운동 자체를 아주 좋아해서 다양한 종목을 접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항상 있었어요. 유튜브는 정말 낯선 영역이었는데 주변에 유튜브 채널 운영하는 지인이 많아 흥미가 바로 생겼죠. 친구들의 도움으로 시작했고, 요즘은 하루하루 재미있게 촬영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겠다 싶어 도전했지만 의외로 까다롭게 느껴지는 점도 있나요?

구독자 수나 댓글로 결과가 투명하게 드러나잖아요. 사람들 반응에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운동만 하는 게 아니라 브이로그도 찍고 Q&A도 하고, 도전해달라는 운동도 발레, 필라테스, 폴 댄스 말고는 지금까지 다 수용했어요. 원래 다큐멘터리 만들던 PD랑도 처음엔 편집 방향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나눴죠. 제가 잔소리를 많이 했어요(웃음). 이제는 제 취향이 뭔지,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확실히 알더라고요. 앞으로도 ‘민심’에 열심히 귀 기울일 생각입니다.

재킷은 르메르(Lemaire), 스윔 팬츠는 인코텍스 바이 슬로웨어(Incotex by Slowear).

미식축구, 씨름, 클라이밍, 경륜, 역도 등 도전 종목을 선정할 때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아무래도 비인기 종목 출신이다 보니 비인기 종목 선수들의 마음을 잘 알아요. 사람들이 아직 잘 모르는 스포츠의 매력을 전파하고 싶다는 개인적 바람이 있어요. 촬영할 때는 모든 운동에 대한 ‘리스펙’을 갖고 임하고, 선수들을 최대한 배려해요.

도전이 거듭될수록 놀라운 운동신경과 습득력이 주목받을 뿐입니다. 실제로 웬만하면 다 잘해내는 스스로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드나요?

좀 하는구나(웃음). 가끔은 콘텐츠를 너무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도 해요. 설렁설렁 넘어가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열심히 배우는데, 몸 쓰는 일이니 어쨌든 저도 힘들거든요. 그래도 봐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제대로 만들어야죠. 대충 하면 바로 티가 나요.

‘쉽게 얻으면 쉽게 잃는다’ ‘과거의 영광은 그저 좋은 기억일 뿐’ 등 엄청난 명언이 매 화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웃음).

제가 너무 진지한 사람이라 그런가 봐요. 그냥 제 생각을 말하는 건데 운동에 워낙 진심이다 보니 운동 관련해서는 명확한 철학과 신념이 자연스럽게 새어 나오는 거죠. 물론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잔소리로 들릴 수도 있을 거예요. 받아들이기 나름이죠.

데님 셔츠와 팬츠는 마르니(Marni).

당신의 ‘피지컬’에 대해 가장 신뢰하는 부분은?

두루두루 다 잘한다는 점? 스포츠인으로서 제가 추구하는 방향도 그런 거예요. 힘이 100인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순발력, 지구력, 유연성 등 두루두루 70 정도인 사람이 되는 걸 추구해요. 균형감을 중시하죠.

남다른 신체 능력을 타고났다는 건 언제 처음 깨달았나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스켈레톤을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느꼈죠. 기대 이상의 성취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서요. 그 전까지는 그냥 친구들이랑 농구 하고 축구 하면서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선수가 돼야겠다거나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어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당신에게도 정말 강해지고 싶은 때가 있었다면요?

그냥 <피지컬: 100> 첫 번째 퀘스트였던 ‘공 뺏기’ 게임에서 공 하나에 미친 듯이 집중했을 때처럼 눈앞의 일에만 충실해 살아왔어요. 먼 미래는 잘 안 보죠. 어린 선수들이나 후배들에게 말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눈앞에 놓인 걸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도달하게 될 거라는 말을 항상 해요. 저도 그랬거든요. 맨 처음 스켈레톤을 시작할 때도 올림픽 금메달이니 뭐니 그런 건 아예 잊고 살았어요. 눈앞에 보이는 저 경쟁자 한 명을 이기자, 늘 그게 전부였죠.

스웨트셔츠와 팬츠는 이자벨 마랑 옴므(Isabel Marant Homme).

당신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때맞춰 나타난 훌륭한 멘토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인복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일단 이런 신체를 물려준 부모님께 감사하고, 스켈레톤에 입문하도록 도와주신 고등학교 체육 선생님도 잊을 수 없죠. 선수 생활 하면서 만난 크리스티안 브롬리 코치님은 스켈레톤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 많은 배움을 주신 고마운 분이고요. 운동 함께 하는 형들을 비롯해 앞으로도 좋은 인연이 많이 생길 거라 믿어요.

올림픽에서는 메달과 신기록이라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잖아요. 그게 없어진 삶에는 바로 적응했나요?

힘들었죠. 그 후에도 계속 선수 생활 방식에 맞춰 살다가 문득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택에 후회 안 할 자신 있는지, 계속 버텼을 때 내가 얻는 게 무엇인지,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가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맞는 건지 자문한 끝에 스켈레톤을 내려놨죠. 그런 다음엔 뒤도 안 돌아봤어요. 한 번도 후회한 적 없고요.

결국 다시 운동입니다. 여전히 치열하게 땀 흘리는 삶을 살고 있어요. 운동은 뭐가 그리 즐거운가요?

스포츠 자체를 좋아해요. 선수로 활동할 때는 결과를 내야 하고,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몸을 갈았지만 이젠 그렇게까지 승부욕을 갖고 임할 이유가 없죠. 부담이 없어지니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 하고 골프 칠 때 충분히 행복하고요.

이제 30대죠. ‘나이 듦’은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몸이 아프고, 후유증이 예상보다 오래갈 때 살짝 서글프긴 하지만 그렇다고 스트레스 받진 않아요. 항상 오늘을 삽니다. 나이가 들면 또 그때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서 재미있게 하면 되죠.

셔츠와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강한 남자 윤성빈이 가장 약해지는 때는 언제인가요?

드라마 볼 때? 최근에는 <일타 스캔들>도 보고, 틈틈이 영화와 드라마 열심히 봐요. 감수성이 은근 풍부하거든요.

반려견 ‘지니’도 당신을 약하게 만드는 존재죠. 지니와 함께 살아가며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뭔가요?

집 안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졌어요. 어느덧 지니의 세 번째 생일에 함께했는데 그 조그만 놈 하나로 인해서 가족 전체가 화목해진다는 게 참 신기합니다.

영화 <미쓰백>을 보고 학대 피해 아동을 위해 기부를 하기 시작해 꾸준히 마음을 전하고 있죠.

처음 기부를 하고 그다음 해가 되자 그맘때쯤 또 생각이 나더라고요. 하기 싫은 일도 아니고, 가능하면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뭐든 꾸준한 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당신처럼 강해지고 싶은 아이에게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요?

단순히 힘이 세다고 해서 ‘강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심신을 단련하는 게 중요하죠. 그럼 몸도 덩달아 강해지거든요. 정신력이 강한 사람에게 ‘작심삼일’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아요.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는 거죠. 그런 정신력을 키웠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아들이 생기면 운동을 시키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하더군요.

제 피를 타고난다면 운동하면 좋겠죠. 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잘 자라주면 되고요. 꿈꾸는 가정에 대해서는 아내의 의견도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말은 안 하겠습니다(웃음).

인생에서 운동 말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인간관계요. 오랫동안 꾸준히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사람과 친해져요. 낯을 좀 가려서 가볍게 여길 관계 같으면 아예 시작을 안 하는 편이고요. ‘밥이나 한번 먹자’ 같은 빈말도 잘 안 해요. 지금 주로 어울리는 사람들도 한 4년 정도 꾸준히 인연을 이어온 사람들이죠.

제 헬스 트레이너의 증언에 따르면 <피지컬: 100> 이후 확실히 헬스장에 사람이 많아졌대요. 어떤 관점으로 운동을 즐기면 좋을까요?

헬스를 예로 들면, 보통 사람들은 몸을 엄청 키우는 걸 목표로 삼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주의예요. 운동선수는 아니지만 운동하는 이유와 목표에 대해 한 번쯤 제대로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지 않는 목표를 설정하면 절대 지속할 수 없거든요. 직장인이 저처럼 하루 종일 운동만 하는 사람들의 기준과 생활에 스스로를 욱여넣으면 힘들죠. 각자 적정선을 찾아 오래오래 즐겁게 운동했으면 좋겠어요.

항상 자신만의 중심이 확고해 보입니다. 요즘은 어떤 몸과 마음을 추구하나요?

한창 선수 생활할 때의 몸 상태와 기능적인 부분까지 낱낱이 유지하지는 못하더라도 몸과 마음 모두 그때와 최대한 비슷한 상태로 유지하려 해요. 은퇴했다고 해서 갑자기 나태해지는 건 싫거든요. 그러다 보면 새로운 기회가 또 찾아오겠죠. 몸을 계속 잘 쓰고 싶어요. 저는 여전히 체육인입니다, 체육인.

체육인? 유튜버? 전 스켈레톤 선수? 앞으로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

그냥 입에 붙는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프리랜서니까요. 요즘은 그냥 ‘윤성빈입니다’라고 말하고 다녀요.

그거면 충분하죠. (VK)

슬리브리스 톱은 프라다(Prada), 데님 팬츠는 에잇 바이 육스(8 By Yoox).
포토그래퍼
김참
컨트리뷰팅 패션 에디터
오충환
헤어 & 메이크업
이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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