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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 칼: 빈티지 시장을 지배할 칼 라거펠트의 끌로에

2023.04.06

by 안건호

    카이저 칼: 빈티지 시장을 지배할 칼 라거펠트의 끌로에

    2023년 멧 갈라의 테마는 ‘칼 라거펠트: 라인 오브 뷰티(Karl Lagerfeld: A Line of Beauty)’입니다. 패션 역사상 최고의 디자이너로 칭송받는 그를 추억하기 위함이죠. 칼은 60년 넘도록 패션계의 왕으로 군림했지만, 오직 5개 브랜드만을 위해 디자인을 했는데요. 장 파투, 끌로에, 펜디, 샤넬 그리고 동명의 브랜드 칼 라거펠트가 바로 그것입니다. 패션계의 카이저, 칼을 그리워하며 그가 각 브랜드에 남긴 유산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 브랜드는 끌로에입니다.

    Getty Images

    칼 라거펠트와 끌로에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1964년입니다. 1957년부터 장 파투의 아트 디렉터를 담당하던 그를 눈여겨보던 끌로에의 가비 아기옹이 그를 스카우트한 거죠. 그 후 2년이 지난 1966년 칼은 능력을 인정받아 크리에이티브 리드직에 발탁됩니다. 그리고 1983년까지 무려 17년간 끌로에를 이끕니다. 잠시 브랜드를 떠나기도 했으나 1992년부터 1997년까지 다시 끌로에로 돌아왔을 만큼 그에게 남다른 브랜드죠. 20여 년을 끌로에와 함께했으니까요. 하지만 펜디와 샤넬에서의 존재감이 워낙 강렬했기에 칼이 끌로에에 재직했다는 사실 자체가 종종 잊히곤 합니다.

    다행인 건 칼이 끌로에 하우스에 남긴 유산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그의 뒤를 이은 마틴 싯봉(Martine Sitbon), 스텔라 맥카트니, 피비 파일로, 파울로 멜림 앤더슨(Paulo Melim Andersson), 한나 맥기본, 클레어 웨이트 켈러, 나타샤 램지 레비, 현재 끌로에의 수장 가브리엘라 허스트까지 그의 영향 아래 놓여 있죠. 칼 라거펠트는 끌로에에서도 본인의 시그니처인 여성스러우면서도 강인함이 느껴지는 룩을 선보였습니다. 1960년대 후반, 라이벌이었던 이브 생 로랑이 ‘르 스모킹’을 통해 최초의 여성용 바지를 선보이자, 칼 역시 1969년 여성용 실크 바지를 탄생시켰죠. 당시에는 남성의 전유물이던 케이프를 실크, 캐시미어 같은 유려한 소재로 제작하며 페미닌하게 풀어냈습니다.

    보헤미안 무드를 끌로에의 상징으로 만든 것 역시 칼입니다. 러시아의 전설적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에게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1973 S/S 컬렉션에서는 모델들의 머리에 스카프를 두건처럼 둘러 자유분방한 여성을 표현했고, 그 후로도 플로럴 프린트를 반복적으로 선보이며 끌로에 하우스만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갔죠.

    칼 라거펠트의 끌로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하우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가 끌로에에서 선보인 디자인이 펜디와 샤넬이라는 거대 하우스의 그늘에 가려 있기 때문에, 빈티지 시장에서 칼이 디자인한 끌로에 피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구할 수 있거든요. 빈티지 혹은 세컨드 핸드 아이템을 ‘잘 고르는’ 방법 중 하나는 투자 가치가 높은 아이템을 구매하는 겁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여전하고, 가격이 떨어질 걱정이 없는 피스를 쇼핑해야 한다는 뜻이죠. 칼의 끌로에는 이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합니다. 마침 멧 뮤지엄에서 칼이 펜디, 끌로에, 샤넬 등을 거치며 생전에 남긴 15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하기 때문에 추후 ‘재평가’받을 가능성 역시 충분하죠.

    그가 디자인한 옷 중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트롱프뢰유피스입니다. 1983 F/W 컬렉션의 샤워 드레스와 1984 S/S 컬렉션에 등장한 바이올린 드레스는 지금도 칼 라거펠트를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남아 있죠. 특히 웨이스트 라인의 컷아웃 디테일을 재치 있게 풀어낸 ‘바이올린 드레스’는 끌로에가 2013년 브랜드 론칭 60주년을 맞이하며 60피스만 재출시하기도 했고요.

    이번 멧 갈라에서는 어떤 패션 아이콘이 칼의 끌로에를 입고 나타나 패션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길지, 벌써부터 기대되지 않나요? 빈티지 끌로에의 가격이 오를 것이 너무나 자명하니 서두르는 편이 좋겠군요!

    사진
    Getty Images,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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