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알라르의 은밀한 방문
동시대 최고의 인테리어 사진가 프랑수아 알라르는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동경하며, 프랑스 아를에서 ‘예술’이 넘치는 삶을 영위한다. 4월 6일부터 피크닉에서 열리는 사진전 〈비지트 프리베〉를 앞두고 그의 고풍스러운 맨션을 방문해 사랑하는 사람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프랑수아 알라르(François Halard)를 어떤 사진가라고 소개해야 할까? 그를 처음 소개한 지인은 책을 빌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집을 찍는 사람인데, 그냥 집 사진은 아니야. 어딘지 달라.” 그 책은 팬데믹 직전인 2019년 가을 리졸리 출판사에서 발간한 것으로, 조르지오 모란디의 정물 사진이 표지에 실린 굉장히 두껍고 큰 사진집이었다. 안목과 취향이 남다른 유명인과 컬렉터, 예술가의 개인적인 공간을 섬세하게 다룬 책으로, 단 몇 페이지만 넘겨 봐도 그 안에 굉장한 세계가 펼쳐진다는 걸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멕시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의 강렬한 핑크빛 건축 뒤에 루이즈 부르주아의 뉴욕 스튜디오가 적나라한 고독을 드러냈고, 드리스 반 노튼이 열정적으로 가꾼 화원의 흐드러지는 정취 뒤에는 라파엘로의 천장 벽화로 채워진 바티칸 회랑의 엄숙한 아름다움이 뒤따랐다. 어떤 사진은 매우 정형적인 반면에, 어떤 사진은 초점이 하나도 맞지 않아 잘못 찍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알라르의 사진은 두 가지 측면에서 내게 놀라움과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우선은 그가 찍은 피사체가 대부분 몹시 특별하고 사적인 장소였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릭 오웬스나 레니 크라비츠의 가장 은밀한 공간에까지 카메라 렌즈를 들이댈 수 있는 권위와 특권은 도대체 어떻게 부여된 것일까? 또 한 가지, 그의 사진은 왜 잘 찍은 인테리어 사진이 주는 객관적인 정보 대신, 그때그때 달라지는 작가 자신의 주관적인 인상과 감정을 전달하는 듯한 느낌을 줄까? 그를 ‘인테리어 사진가’라 부르는 건, 어쩌면 틀린 정의가 아닐까?
프로방스의 작은 도시 아를을 찾은 것은 아직은 쌀쌀한 2월 말, 관광객이 거의 없는 비수기였다. 초인종을 누르자 녹색 대문이 열렸고, 더없이 선량하게 생긴 60대 남자가 한달음에 내려와 우리를 반겼다. 처음 만난 사람을 집 안에 들이는 건 프랑스에선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던데, 그는 인사를 나누자마자 아이처럼 들뜬 목소리로 “자, 그럼 집 투어를 시작해볼까요?”라며 안내에 나섰다. 그의 사진에 종종 등장하는 장면이 이내 집 안 여기저기서 포착되었다. 아프리카의 목각 마스크, 대리석 묘비, 꽃과 레몬, 앤티크 도자기, 마리 앙투아네트의 것처럼 보이는 분홍색 침대와 캐노피, 사이 톰블리가 그린 그림까지. “아, 이게 바로 그 ‘로만 노트(사이 톰블리의 1970년대 작품)’군요!” 내가 아는 체를 했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적 요소를 작품의 소재로 삼은 미국 화가 사이 톰블리는 알라르의 오랜 우상이다. 수십 년 전 사진을 찍어서 생긴 첫 목돈으로 주저 없이 이 ‘로만 노트’ 연작을 구매했다고 한다. 300년 전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맨션은 그 외에도 온갖 책과 수집품으로 발 디딜 틈이 없어 거의 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문득 아름다운 물건에 대한 그의 이 지극한 사랑은 언제부터 비롯됐는지 궁금했다. 그것은 이미 날 때부터 운명 지어진 것이었다.
“태어날 때 내 몸무게는 900g에 불과했어요. 몸의 반쪽은 죽어 있는 상태였죠.” 반신마비라는 심각한 장애를 안고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의 성장 과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치료와 훈련을 통해 난독증과 언어장애를 서서히 극복해갈 때까지, 그는 밖에서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 머물러야 했다. 집 안의 그림, 책, 가구, 갖가지 장식품을 친구 삼아, 거기에 여러 가지 상상한 이야기를 덧붙여가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진귀한 물건이 아주 많았다는 것이 그의 ‘감각 수업’에는 행운으로 작용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파리에서 잘 알려진 실내장식가였고, 열정적인 컬렉터이기도 했어요.” 그뿐 아니라 그의 어머니는 잡지 에디터로도 활동했다. 아름다운 집은 종종 화보를 위한 세트장으로 활용되었고, 헬무트 뉴튼 같은 사진가가 모델을 데리고 오는 날이면 그는 학교 수업을 빼먹고 촬영 현장을 흥미롭게 지켜보곤 했다. 알라르는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에 푹 빠졌다. 사진은 말과 글을 대신해 그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촬영 현장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용돈을 모아 입문자용 니콘 카메라를 장만한 소년 프랑수아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프로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미술대학에 조기 입학했지만, 촬영 일이 많아지자 학교는 곧 그만두고 말았다.
알렉산더 리버만은 그의 커리어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한 인물이다. “어느 날 미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어요. ‘프랑수아, 뉴욕에 와서 나를 위해 일해보겠소?’ 나는 ‘그러고 싶지만 이미 다른 일정이 있어요’라고 답했어요.” 얼마 후 리버만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프랑수아, 우리가 보통 <보그 US>의 꾸뛰르 촬영을 위해 사진가를 부르면 누구도 시간이 안 된다고 말하지는 않소. 그러니 확인하고 다시 전화해요.” 뛰어난 조각가이자 사진가였으며 패션 잡지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편집자이자 미술 디렉터였던 리버만과의 인연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1980년대 슈퍼모델의 전성기에 리버만이 활짝 열어준 기회를 따라 뉴욕과 파리를 바삐 오가며 그는 패션의 세계에서 화려하고도 비현실적인 삶을 살았다. 신디 크로포드의 첫 <보그> 촬영을 그가 했고, 데이비드 호크니와 함께 성 소수자 파티에 갔으며, 작가 브루스 채트윈과는 그리스의 섬을 여행하곤 했다. 비현실적인 경험의 정점은 1980년대 중반 소련 정부의 초청을 받은 이브 생로랑을 따라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의 러시아 여행을 다녀온 일이었다. “밤마다 발레 공연이나 파티, 만찬이 있었어요. 거의 국빈급 예우를 받았죠. 우리끼리 보드카를 마실 때면 ‘혹시 여기 도청 장치 있는 거 아냐?’ 하고 농담으로 속삭이곤 했어요.” 그때 그의 나이는 20대 중반에 불과했다.
그가 현란한 패션 세계와는 동떨어진, 상당히 명상적인 집중을 요하는 개인 작업을 세상에 처음 선보인 건 2003년의 일이었다. “첫 개인전은 쿠르치오 말라파르테의 집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말라파르테는 제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였어요.” 한때 파시즘의 열렬한 신봉자였으나, 무솔리니 정권으로부터 당원권을 박탈당하고 유배와 투옥 생활을 거듭해야 했던 문제적 인물 쿠르치오 말라파르테. 그가 카프리섬에서 가택 연금을 당했을 때 완성한 ‘말라파르테 주택’은 20세기 건축사의 명작이자 미스터리다. 명망 있는 건축가 아달베르토 리베라의 설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카프리의 석공 한 명을 불러다 말라파르테 자신이 직접 지은 절벽 위의 빌라는 해수면으로부터 계단을 통해 끝없이 올라가야 마침내 만나는 공간이다. 실내에는 자연 그대로의 바위가 깎이지 않은 채 불쑥 솟아 있고, 창밖으로는 몇 개의 무인도가 보이는 이 독창적인 주택은 브리짓 바르도가 주연한 장 뤽 고다르의 영화 <사랑과 경멸>의 무대이기도 했다. “말라파르테에 다다르는 건 저의 오랜 꿈이었어요. 마침내 그 꿈을 이루기까지 무려 15년이 걸렸죠.”
문학, 건축, 미술, 디자인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첫 전시 이후 그는 ‘비지트 프리베(Visite Privée, 사적인 방문 또는 은밀한 방문을 뜻하는 프랑스어)’라는 타이틀로 수차례 전시회를 가졌다. 말라파르테 주택처럼, 알라르가 오랫동안 꿈꿔온 예술가와 명망가의 공개된 적 없는 집을 은밀히 방문해 찍은 사진을 대중에게 소개했다. 여성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 아일린 그레이, 이탈리아 산업 디자이너 카를로 몰리노, 영화감독이자 화가 줄리안 슈나벨, 샤넬과 스키아파렐리 그리고 사이 톰블리는 그가 찍은 4,000여 곳의 집과 아틀리에 중 대표적인 몇몇 작품에 불과하다. 그가 찍는 것은 실내 풍경과 물건이지만, 그것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그 공간의 주인이 지닌 숨은 예술혼이다.
‘세상의 모든 사진은 자화상’이라는 말이 있다. 사진에 찍힌 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풍경이든, 거기엔 사진 찍는 사람의 세계관이 반영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대상이 ‘타인의 집’이라면, 그것은 일정 부분 ‘타인의 초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를의 자택을 찍는 일은 순수한 자아를 투영할 유일한 기회라는 점에서 알라르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식이다. 그는 프랑스 정부가 자가 격리를 강제한 2020년 3월 16일부터 5월 10일까지 <뉴욕 타임스>의 의뢰를 받아 매일 집 안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발견을 56장의 폴라로이드로 기록했고, 그것을 <아를에서의 56일>이란 작은 책으로 엮었다. 나는 이 책이 프랑스 혁명 시대에 가택 연금 경험을 기록한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의 책 <내 방 여행하는 법>의 시각적 오마주 같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알라르는 자기 방을 여행하는 데 세상 누구보다 통달한 사람이다. “어릴 때 아버지의 카메라로 처음 찍은 것이 바로 제 방 사진이었어요. 아를의 집을 찍으면서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한 부분을 되찾는 기분을 느꼈죠.” 아, 그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기억이란 상큼한 레몬처럼, 한 다발 라일락처럼, 우리 모두에게 위안을 주는 향기롭고 안온한 작은 세계였던 것일까. (VK)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글
- 조유리
- 사진
- François Hal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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