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물, Everything Everywhere

2023.04.07

물, Everything Everywhere

일상을 떠나 어딘가를 여행한다는 건 그 자체로 다른 감각과 기분을 불러낸다. 그런 와중에 기대하지 않은 사람, 장소, 물건과 만나는 일은 적당한 긴장감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설레는 기대감을 불러낸다. 낯선 곳, 낯선 길 위에서 그저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마주쳤다는 건 분명 보이지 않는 우연한 힘이 작동한 것이라고 나름의 스토리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두고두고 생각나는 여행, 여행지의 특별한 한순간은 바로 이런 마주침 덕분에 가능하다. 여행지에서 (구매하는 게 아니라) 만난 책 역시 그런 의미에서 각별하다. 여행할 때면 일부러 그 지역의 작은 독립 책방에 들르곤 한다. 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지역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이들의 정서와 시선, 손길을 느끼는 일도 재밌다. 살뜰히 운영해나가는 주인장 덕분에 그곳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면, 한 권의 책이라도 만나 데려오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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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는 제주 함덕에서 만나 성산에서 읽은 이원하의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문학동네, 2020)를 말했다면, 이번에는 성산 근처 수산리의 오래된 책방 무사에 들러 데려온 책 얘기다. 평소 과학 서적을 유심히 보지 않고 편중된 책 읽기를 해온 나로서는 무심코 지나칠 법했는데 ‘물’이라는 단어에 눈이 번쩍 뜨였다. 계간 과학잡지 에피 22호 <물, Everything Everywhere>(출판사 이음, 2022). 제주에 머무는 내내 ‘물’ 생각이었다. 혹시 눈 밝은 독자라면 눈치챘을까. 틈날 때마다 이 지면을 통해 내가 ‘물’에 관한 관심을 드러내왔음을(<우유, 피, 열>, <구름 좋아하세요?>, <리도에 가고 싶다>). 수영 덕후에서 이제 한 발 더 들어가 물 그 자체에 관한 관심이 한껏 커졌다. 물의 매혹이랄까. ‘물이 왜 좋을까?’ 편안, 고요, 시원, 자유로움 등등… 직관적으로 나열한 이 단어 하나하나를 파고들면 저마다 맥락과 진의가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고요한 물’이라고 하면 그 안에는 고요하지 않은 나의 감정과 좋지 않은 몸의 상태가 반영돼 있다. 또 ‘자유로움을 주는 물’이라고 하면 부력과 같은 물의 특징이 영향을 주는 면도 있을 것이고, 역사적·사회적·심리적 맥락도 들어가 있을 것이다. 내가 무심코 말해온 ‘물의 고요, 물의 자유’와 같은 말속에서 감정과 문화의 맥락을 읽어내고 싶은 것이다. 요즘 나는 그렇다. 가능하다면 물을 더 들여다보고 싶고, 물을 탐구하고, 물에 관해 쓰고, 말하고, 물을 겪어보고 싶다. 그런 내 눈앞에 떡하니 ‘물’에 관한 책이 등장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여행 스토리를 만들기에 딱이다.

계간 과학잡지 에피 22호 ‘물, Everything Everywhere'(출판사 이음, 2022)
@eum_books

“물은 어디에나 있는 것 같지만 아무 데나 있지는 않다… 물은 우리 몸 안에도 있고 몸 밖에도 있으며 그 사이를 늘 들락날락한다… 물이 사색의 단초이자 탐구의 대상이 된 것은 물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처지나 직업에 따라 물을 서로 다른 수준과 범위에서 생각한다… 모두 같은 물이지만 또 모두 다른 물이다.”(p. 5~6) 들어가는 글 ‘물은 어디에 있는가’를 시작으로 다섯 명의 과학자가 ‘물의 화학적 성질’, ‘생명의 물, 피 땀 눈물’, ‘바다, 물은 어디서 왔고 물 부족은 왜 생기는가’, ‘물의 순환과 인간 활동’, ‘우주에서 물 찾기’에 관한 글을 풀어낸다. 과학적 접근이 낯선 나와 같은 독자에게 물을 둘러싼 물리적, 화학적 성질과 특성을 이해하는 입문서로 좋을 것 같다. 다른 물질과 달리 수소결합을 하는 물 분자의 특성상 고체가 아닌 액체일 때 더 자유롭고, 표면장력과 높은 비열이 있으며, 다른 물질과 잘 섞인다는 점은 물의 성질과 상태에 흥미를 느끼는 내게 계속 다음 질문을 이어갈 실마리가 돼준다.

과학계의 최신 뉴스, 문화, 이슈에 관한 서평, 에세이, 연구 보고서 등도 다채롭게 실렸다. 캐런 메싱의 <일그러진 몸>(나름북스, 2022)을 소개한 ‘수치심에 맞서 연대하자는 절절한 외침’, 인공위성 등으로 파악되는 거시적 녹지가 아니라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보이는 녹지율을 통해 공공녹지, 사회 경제적 취약층 거주 지역 녹지 확충을 말하는 ‘도심 녹지 형평성을 다시 생각해야’와 같은 글은 특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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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xels, 출판사 이음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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