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밀리언 데이비스, 페라가모의 약속
트리니다드에 뿌리를 둔 영국 맨체스터 출신의 맥시밀리언 데이비스는 페라가모의 약속과 같다. 이 하우스는 그를 가족으로서 환영했다.
1995년생 맥시밀리언 데이비스(Maximilian Davis)는 팬데믹 기간 동안 가장 많이 언급된 이름 중 하나였다. 혼돈의 한복판에서 창의성만이 팬데믹 이후의 상황을 상상하게 하는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 연구하고, 디자인하고, 만들어냈다. 2022년 1월 새로운 CEO 마르코 고베티(Marco Gobbetti) 영입을 시작으로 하우스를 재건하던 페라가모 팀의 눈에 띌 정도로 말이다. 그로부터 몇 달 뒤인 9월, 데이비스의 페라가모 데뷔 컬렉션은 복원된 포트레이트 밀라노(Portrait Milano)의 안뜰에서 공개됐다. 밀라노 도심에 있는 이곳은 과거 대주교 신학교였다가 현재는 호텔, 레스토랑, 상점이 들어선 열린 공간이다.
페라가모 합류 이전은 어땠나요?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2년간의 팬데믹은 제 미적, 직업적 진로를 명확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웨일스 보너의 스타일 사무실에서 주니어 디자이너로, 그 후에는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록다운 직전에는 제 이름으로 작은 컬렉션을 만들었어요. 친구인 사진가 라파엘 파바로티(Rafael Pavarotti)와 스타일리스트 이브 카마라(Ib Kamara)와 함께 컬렉션 사진 작업을 하기로 했는데, 팬데믹 때문에 갑자기 둘 다 고국으로 돌아가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팬데믹 기간은 계속 의상 작업을 하고 그것을 세상에 선보이기 전에 더 세련되고 완벽하게 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의상에 대해 연구하며 진정한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 후 장학금과 전시 공간을 제공하고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켜 신인 디자이너를 지원하는 영국 플랫폼 패션 이스트(Fashion East)에 지원했습니다. 설립자 룰루 케네디(Lulu Kennedy)에게 연락하긴 했지만, 그녀가 제 지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 예상과 달리 열정 가득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이런 작품은 본 적이 없다는 얘기였죠.
언제 페라가모가 당신에게 딱 맞는 곳이라고 느꼈습니까?
어릴 때부터 항상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습니다. 페라가모에서 제안했을 때 깜짝 놀랐어요. ‘너무 이른 건 아닐까?’라고 고민한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여기기로 했죠. 꿈에 헌신하고자 마음먹고 제안을 받아들인 그 순간부터 데뷔 쇼를 선보이기까지 비로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과 이 모험을 믿도록 힘을 준 사람은 마르코 고베티였습니다. 오래된 옛 광고 캠페인과 룩북, 패션쇼를 전부 살펴보면서 페라가모라는 브랜드를 연구하는 데 2주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뭘 발견했나요?
이 브랜드가 생각보다 더 저를 닮았다는 것. 아카이브에서 현재 트렌드와 맞고 제 작업과도 연결 고리가 있는 의상과 액세서리를 발견했습니다. 브랜드의 새로운 방향에 조금이라도 자신을 담아보자는 아이디어가 아주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카이브에서 특별히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다면?
아카이브에 슈즈가 1만4,000켤레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전부 다 살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든 모델이었거든요. 지금 신어도 완벽합니다. 어머니와 누나의 영향도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신발에 늘 진심이었고, 패션을 공부했거든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누나가 행사나 일을 위해 외출 준비를 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신었던 모든 신발도 봐왔죠. 할리우드와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연결 고리 또한 흥미로웠습니다. 제 브랜드는 비록 인지도가 낮았지만 리한나, 두아 리파 같은 스타들이 제 옷을 입고 싶어 했죠. 페라가모도 새로워진 정체성을 대표할 수 있는 배우, 뮤지션과의 협업을 통해 그 유대감을 재발견하고, 브랜드를 현재화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가족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연결되는 것 같군요.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페라가모 역시 각 구성원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던 가족의 역사로 이루어졌죠.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물려주신 열정이 없었다면 저는 여기에 없었을 것입니다. 테일러링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수트를 40벌 이상 가지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의 이런 취향은 브랜드 작업을 시작할 때 참고할 만한 포인트가 됐어요. 덕분에 디자인, 비율, 소재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죠.
그럼 당신의 작업을 서포트하는 패션계 안팎의 사람들,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가령, 나오미 캠벨은 당신의 데뷔 쇼 프런트 로에 앉았죠.
많은 후원을 받으며 커뮤니티가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몇몇은 학교 친구로, 패션계에서 함께 일하며 이 여정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죠.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떨어져 지낼 때도 그들은 편안한 집 같은 존재로 느껴집니다.
이탈리아에서 일하는 것은 어떤가요?
밀라노를 비롯한 이탈리아에서는 패션이 좀 더 여유로워집니다.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타고난 우아함이 있어요. 런던, 밀라노, 피렌체를 오가던 처음 몇 주 동안 피렌체에서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피렌체는 느리고 아름답지만, 자극이 되는 도시입니다. 가톨릭 학교에 다녔는데, 그 모든 가톨릭 예술에 둘러싸인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당황할 뻔했습니다. 제가 몰랐던 방식으로 영감을 얻은 거죠. 피렌체에서 재료나 직물이 제가 상상하던 제품으로 달라지는 길을 발견했습니다. 일종의 특권을 누린 겁니다. 저는 자신이 매일 하는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팀과 함께 일합니다. 그것은 놀라운 협업이며, 팀원들 역시 가족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가장 만족스러웠던 작품은 무엇입니까?
2023 S/S 시즌, 첫 번째 컬렉션에서 선보인 90×90cm 풀라드(Foulard, 실크 스카프)로 만든 드레스입니다. 표범 프린트는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것이죠. 물방울처럼 보이는 투명한 유리 비즈로 장식한 마지막 드레스도 있습니다.
첫 컬렉션이 전 세계 매장에 출시됩니다.
눈물 날 것 같아요, 어떤 마음인지 아시죠? (웃음) 사실 그 이면에는 아주 많은 작업이 수반됩니다. 저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모든 이들이 ‘꿈’을 이룬 거죠. 이 컬렉션은 우리가 함께 낳은 첫아이 같아요. 팀워크가 저를 기분 좋게 만듭니다. 우리가 위대한 여행을 시작하고 있다고 느끼죠.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좋습니다. (VK)
- 글
- Federica Sal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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