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에서 주목해야 할 아티스트 15인
전 세계 79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라는 주제 아래 4월 7일 광주에서 개막했습니다. 7월 9일까지 이어지는 올해 비엔날레는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국립광주박물관,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무각사, 예술공간 집 등 총 5개 전시 공간에서 펼쳐지는데요. 방대한 예술 현장에서 더 현명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영국 테이트 모던 국제 미술 수석 큐레이터이자 이번 비엔날레를 총괄 기획한 이숙경 예술감독이 추천하는 아티스트 15인을 살펴볼까요?
엄정순
광주비엔날레가 올해 처음 제정한 박서보 예술상의 첫 수상자인 엄정순 작가는 약 600년 전 인도네시아,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처음으로 들어온 코끼리가 전라도 끝 장도로 유배되면서 거쳐간 여정을 따라가는 작업을 하면서, 그 경로의 도시에 사는 시각장애인 학생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습니다. 1996년부터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중심에 두고 전시, 미술교육, 출판 활동을 하는 사단법인 ‘우리들의 눈’ 설립자이자 디렉터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데요. 지상에서 가장 큰 동물 코끼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선보이는 작업의 연장인 ‘코 없는 코끼리’는 전형성에 가려지거나 배제되었던 존재를 드러내며 결핍에 대한 작가의 관점을 보여줍니다.
파라 알 카시미
작가이자 음악가 파라 알 카시미는 일상과 관련된 침해와 감시 체계의 지도를 그리는 데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온 작가입니다. 자신의 관심을 작품에 담기 위해 아랍에미리트 등 아랍 문화권의 집 안팎 풍경과 그 안의 사람들에게 주목하며 사적이고 공적인 공간을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입니다. 전시장 벽면을 가로지르는 ‘특별한 날들을 위한 편지’와 사진은 아랍 문화, 양식, 취향, 실내 공간에 관한 대안적 서사를 만들고 기록하고자 하는 작가의 관심을 보여주는데요. 2021년 초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한 뒤 격리 중일 때, 서구로 이주한 기록을 담은 오래된 가족 앨범을 참조해 자신이 가족과 함께 사는 집 실내와 주변을 사진에 담은 결과입니다. 이런 작가의 사진과 거대하게 확대한 이미지는 사적이고 내밀한 렌즈를 통해 여러 문화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겪는 문화적 혼종성, 가족의 역사와 관련된 노동과 생산수단을 둘러싼 생각을 탐구합니다.
타렉 아투이
사운드 퍼포머, 음악가이자 작곡가로 활동하는 타렉 아투이는 복잡하고 독창적인 악기를 제작하며, 콘서트, 퍼포먼스,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작가인데요. 주로 악기에 대한 지속적인 고찰을 중심으로 다층적이고 개방적이며 역동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진 퍼포먼스를 선보입니다. 그는 2019년 9월 광주를 방문한 뒤 현지의 악기장, 예술가, 공예가에게 한국의 전통 타악기, 옹기, 청자, 한지 제작을 재해석하는 개념의 작업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결과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지난 4년 동안의 협업과 연구를 토대로 한 작품 ‘엘레멘탈 세트’를 선보입니다.
아서 자파
아서 자파는 영화, 사진, 설치 작업을 아우르는 작품 활동을 통해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살아가는 현실을 사유하는 작가입니다. 그의 영상 작업은 대중문화, 대중매체, 유튜브에서 발견한 장면과 직접 촬영한 영상을 한데 모아 병치함으로써 동시대 미국에서 흑인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층위를 서정적이면서도 강렬하게 전달합니다. 올해 광주비엔날레에서 그가 선보이는 ‘LOML’이라는 작업은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공동 작업자 중 한 명이자 작가 겸 음악가였던 故 그레그 테이트에게 바치는 오마주인데요. 폭력이나 환희같이 공통의 경험을 공유하는 흑인 신체의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준 초기 작업과 달리, 이번 영상은 동시에 재생되는 2개의 개별 음향을 배경으로 빛과 그림자를 포착하는 추상적이고 명상적인 이미지의 흐름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김민정
한지와 먹물을 사용해 전통 한국화의 미학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는 김민정 작가는 먹물의 농담을 조절해 풍경을 연상시키는 추상적 형상과 패턴을 만들기도 하고, 한지를 태워 작은 조각으로 만든 후 큰 종이에 부착해 3차원적 콜라주를 제작하기도 합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작업을 통해 한국화 전통의 맥이 광주에서 지속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김민정은 진행 중인 연작에 속하는 네 점의 신작 ‘타임리스’, ‘페이징’, ‘마운틴’, ‘히스토리’를 발표하는데요. 먹물이나 태운 한지로 만든 선, 곡선, 원 등 작품 속 기본 형태는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되어 화면에 깊이를 만들어내며, 일상의 시간 경험에 변화를 주는 명상적 공간을 제공합니다.
이승애
감정, 빛, 소리 같은 비물질적 요소를 포착하고 드로잉, 애니메이션, 설치로 풀어내는 이승애 작가는 일상적 사물과 공간을 추상적 패턴 및 형상과 결합해 실재와 허구 사이를 맴도는 초현실적 작품을 구축합니다. 지우기와 그리기를 반복해 완성한 드로잉을 사진으로 촬영하고, 그 사진을 연결해 만든 애니메이션은 작가의 상상적 영역을 시각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데요.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이승애가 선보이는 벽화와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는 한국의 민간신앙에서 망자의 비탄과 슬픔을 씻어내기 위해 치르는 씻김굿에서 착안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씻김굿 장면을 그대로 묘사하기보다 나무나 돌, 흙 등 일상적인 물질을 종이에 문질러 얻은 추상적인 조각으로 오려낸 후, 벽면에 그린 드로잉과 연결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구현합니다.
타우스 마카체바
타우스 마카체바는 조각, 퍼포먼스, 영상 작업을 통해 전통과 근대성의 충돌뿐 아니라 자신의 문화적 배경인 다게스탄 공화국이 러시아에 합병됨에 따라 발생한 일련의 문제를 조명하는 작가입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 그가 선보이는 ‘독수리 평원’은 작고한 작가의 할아버지이자 소련의 유명 시인이었던 라술 감자토브에 대한 작가의 기억과 대중의 추모를 중첩시키는 무대입니다. 작가가 이 영상에서 만나는 미술품 설치 전문가, 승합차 운전사, 경찰관을 포함한 여러 목소리는 저마다 감자토브에 대한 자기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요. 이들의 증언은 곧 생존하지 않는 자에 관한 기억을 사실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합니다.
노에 마르티네스
회화, 조각, 영상, 설치 작업을 하는 노에 마르티네스는 자신의 고향인 멕시코의 식민지 역사의 중요성과 사라져가는 선주민 문화에 주목합니다. 마르티네스는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이 아프리카인을 노예화한 역사와 아즈텍 민족의 후손으로서 자신이 경험한 일상을 떠올리며, 멕시코 사람들이 겪은 집단적 트라우마를 조명하고, 서구적 세계관이 형성한 역사를 바라보는 대안적 해석을 제안합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만날 수 있는, 중앙에 매달린 ‘송이 3’과 11개의 도예 조각으로 이루어진 설치 작품은 16세기에 유럽인에 의해 노예로 팔려간 아즈텍 선조의 역사를 환기하며 당사자의 동의 없이 거래의 대상이 되어버린 몸을 은유합니다.
알리자 니센바움
특색 있는 공동체와 다양한 차원에서 협업하며 자원과 기술,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재현을 공유하는 알리자 니센바움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2년이 지난 다음 설립된 놀이패 신명과 협업해 완성한 작품을 선보입니다. 니센바움은 5·18 당시 목숨을 잃은 사람들과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가족을 잃은 슬픔을 위로하고 일상 회복을 도우려는 〈언젠가 봄날에〉라는 마당극을 소개하며, 배우 개인과 그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향한 공감과 격정에 집중합니다.
오석근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인천을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사와 얽힌 개인의 기억을 사진으로 재현하고 기록하는 오석근 작가는 개인과 국가 트라우마의 관계를 고찰하고 한국 사회에 남겨진 기억, 상처와 이념, 이를 유발한 권력 구조를 탐구해왔습니다. 한편으로는 지난 10여 년간 ‘적산가옥(敵産家屋)’으로 불리는 일본식 가옥 내외부의 변화상을 전쟁과 식민지, 근대화, 산업화가 만들어낸 결과물로 간주하고 그 시간과 기억의 층위를 렌즈에 담았습니다. 올해 광주비엔날레에서는 작가가 광주 도심 곳곳에 존재하는 적산가옥 또는 광범위한 식민 역사의 흔적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을 시작으로 인천, 부산 등 타 도시와의 연결점을 찾아 맥락을 확장해온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벨 로드리게즈
아벨 로드리게즈는 세밀한 드로잉을 통해 자신이 기억하는 아마존 우림을 기록하는 작가입니다. 콜롬비아 남부의 노누야 민족의 후손인 작가는 지역의 지식인이었던 삼촌에게 현지의 동물 생태를 배웠는데, 밀림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폭력 사태를 피해 보고타로 이주해야 했을 때부터 자신이 선조에게 물려받은 지식을 보존하고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로드리게즈의 작품은 식민 지배주의적 관점에 맞서 자연 세계를 기록하는 대안적 수단을 보여줍니다. 로드리게즈가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이는 작품 역시 아마존 우림에 대한 개인적 기억을 심층적으로 탐구한 작품입니다.
막가보 헬렌 세비디
남아프리카 프리토리아 북쪽 시골인 마라피아네에서 전통 벽화가였던 할머니와 함께 성장한 막가보 헬렌 세비디는 1989년에 흑인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스탠다드은행 청년 작가상을 수상하고, 2004년에는 타보 음베키 대통령이 수여하는 이카망가 은 훈장을 받기도 했는데요. 주로 파스텔과 아크릴물감, 유화물감을 사용해 특징적인 짧은 필법으로 작업하는 세비디의 회화와 드로잉에는 추상화된 인간과 동물 형상이 생동감 있는 색채로 등장합니다. 작가가 그리는 대상은 아프리카 신화와 전통적 가치 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남아프리카의 흑인 여성으로서 시골 마을과 도시에서 살아온 경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서 겪었던 삶을 반영합니다.
불레베즈웨 시와니
불레베즈웨 시와니는 죽은 자의 세계와 산 자의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영적 치유자 ‘상고마’ 전수자로, 조상의 의례, 기독교와 아프리카 정신성의 관계를 주제로 작업합니다. 시와니는 2021년 스탠다드은행 청년 작가상 조형예술상을 수상했고 이와 연계된 순회 전시에서 물, 동굴, 평야, 산, 숲에 깃든 영을 상상하는 영상 설치 작업 ‘영혼 강림’을 제작했습니다.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시와니는 ‘영혼 강림’과 더불어 작가가 전통적인 치유자로서 훈련받으며 얻은 개인적 기억과 경험을 보여주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하는 새로운 장소 특정적 설치 작업을 함께 선보입니다.
산티아고 야오아르카니
회화 작품을 통해 콜롬비아 남부와 페루에 거주하는 위토토 민족의 지식 체계를 보존하고자 하며, 강제 이주, 식민화, 집단 학살을 겪은 선주민의 삶에서 지속되는 트라우마를 묘사하는 산티아고 야오아르카니. 그의 작업은 페루 아마존 회사가 수천 명의 선주민을 노예로 삼고 학살하며, 아마존 우림에서 고무를 채취하게 한 푸투마요 집단 학살 생존자의 후손으로서 경험한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합니다. 올해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무화과나무 내피로 제작한 여러 장의 양피지를 이어 천연 염료로 채색한 회화 ‘위토토 세계관’을 선보입니다.
로버트 자오 런휘
로버트 자오 런휘의 복합 매체 작업은 작가가 ‘동물학적 응시’라 칭하는, 인간이 자연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다양한 방식에 집중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다큐멘터리, 저널리즘, 과학 실험 등 자연 세계를 다루는 방법을 통해 수 세기 동안 인간 문명의 바탕이 된 자연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 사이 이원론적 구별을 해체하고, 관객이 그런 패러다임 아래 구성된 역사와 환경을 재고하도록 유도합니다.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작가는 4채널 영상과 사운드, 일련의 오브제로 구성된 설치 작업 ‘강을 기억하고자 함’을 선보이는데요. 해당 작품은 20세기 초에 콘크리트 배수관으로 바뀐 고대 싱가포르의 이름 없는 강의 지류가 품은 삶과 역사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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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비엔날레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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