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도 우리처럼 초라할 때가 많다
집에서 지인과 술을 마실 때 스마트 TV로 유튜브를 본다. 최근 재미있게 본 것, 평소 구독하는 콘텐츠 등을 공유하는데, 요즘은 여러 여행 채널과 뉴진스 뮤직비디오를 주로 보는 편이다. 그런데 얼마 전 집에 온 지인이 “<구라철>에 올라온 게 있는지 보자”고 말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너도 <구라철> 봐? 이 채널은 취향을 좀 타는 것 같아서.” 나는 이렇게 답했다. “당연하죠. 김구라는 정말 수요 없는 재미를 만드는 데 최고인 것 같아요.”
그날 지인과 함께 본 <구라철>의 영상은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의 신년회 풍경이었다. 이용식과 황기순 등 어린 시절 열광했던 추억의 코미디언들은 반가웠지만, 사실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은 그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구라철>에서 다루는 대상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진 연예인들, 관심은 받지만 그다지 호감은 아닌 연예인들,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법칙(예를 들어 연예인 행사비의 진실 같은 이야기). 그런데도 일단 보기 시작하면 빨려 들어가는 이야기들이다. <구라철>이 보여주기 전에는 보수 유튜버로 유명한 개그맨 최국과 진보 유튜버로 활동하는 강성범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당연히 최국과 윤성호가 원래 친했는데 사이가 틀어졌다는 사실도 몰랐고, 윤형빈과 김영민의 10년에 걸친 앙금에 대해서는 더더욱 아는 게 없었으며, 가수 김흥국이 코로나 백신에 대한 설화 이후 어떻게 사는지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유튜브 이용자가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도 <구라철>은 그들의 이야기를 굳이 애써 보여주었다. 이때 ‘수요 없는 재미’가 폭발했다.
<구라철>이 재미를 만드는 방식은 ‘빌드업’과 ‘솔직함’이다. 먼저 관심도가 낮은 인물들에 대한 스토리이기 때문에 그들의 현재를 구성하는 사연을 소개한다. 최국과 강성범은 왜 정치 유튜버가 되었는지, 최국과 윤성호는 과거에 어떤 사이였는지, 이후 그들은 어떻게 서로를 공격했거나 무시했는지에 대한 서사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직접 대면. 서사를 알게 된 사람들은 그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순간부터 긴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첫인사는 어떻게 할까? 본론은 어떻게 꺼낼까? 하지만 그들이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속내를 드러내는 순간 결국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과거의 절친이 지금은 적이 된 사연, 화려한 과거를 자랑하는 연예인이 비호감의 대명사가 된 이유 모두 사실은 어디서부턴가 꼬여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고, 열심히 살려다 보니 무리수를 둔 때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 뭔가 꼬이기 시작했는데, 꼬인 줄 모르고 살다가 이제는 스스로 풀기 어려울 만큼 꼬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보다 보면 평소에는 관심 없던 사람들에게 묘한 ‘짠함’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런데 이때 <구라철>은 ‘짠함’을 강조하거나 꼬인 실타래를 애써 풀려고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윤형빈과 김영민의 마지막 인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그래 뭐 악수라도 하고 헤어지자.” 지상파였다면 10년 동안 쌓인 앙금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마법을 부렸을 것이다. 유튜브 채널이라고 해도 대상이 연예인이니 <구라철>도 그런 연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는다. 어차피 오랜 앙금이 하루 만에 해소되기는 어렵고, 그렇다면 서로를 부둥켜안고 화해하는 것도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2023년 4월 10일 현재, <구라철>의 구독자 수는 31만2,000여 명이다. KBS 예능국이 제작하는 데다, 김구라를 캐스팅해서 운영하는 채널치고는 제작진이 만족할 만한 숫자는 아니다. 셀러브리티들이 기꺼이 출연하는 <문명특급>이나 <피식대학> 같은 채널과 달리 <구라철>은 김구라를 둘러싼 세계관과 그 속에 사는 인물로 대상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초라한 속내를 끌어내는 것도 ‘취향을 탈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래도 <구라철> 팬인 나는 이 채널의 ‘수요 없는 재미’에 더 많이 마음이 기울어 있다. 김구라의 대표 프로그램인 <라디오스타>가 초창기에 보여주던 재미와 비슷한 색깔이라고 할까? 최고의 스타 대신 과거의 스타, 멋이 있는 연예인이 아닌 멋을 부리는 연예인이 나와 존재감을 드러내려 고군분투할 때의 재미. 역시 이런 난장판을 만드는 건 김구라가 독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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