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가 걷는 고독의 여정
서울시립미술관과 뉴욕 휘트니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전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가 열린다. 20세기 미국 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 에드워드 호퍼. 고독한 그의 세계는 여전히 우리에게 중첩된다.
미국 사실주의를 대표한다고 평가받는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 그의 작업은 건조하게 느껴질 정도로 차분하게 담아낸 일상의 모습으로 특징짓는다. 그러나 성실한 관찰과 재현으로만 완성된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그의 작품에는 신비로운 여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드문드문 공란이 보이는 글 같다. 표정을 읽기 어려운 인물들, 매끈하게 정제된 공간의 표현은 집과 같은 개인 공간뿐 아니라 상점, 식당과 카페도 고립된 것처럼 보인다.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만나고 머무는 도시, 그곳에 자리한 건물의 안팎은 진공상태처럼 고요하다. 역동성과 소음이 사라진 도시의 정적은 일상을 낯설게 만든다. 시간도 잠시 멈춘 듯하다. 어떤 상황인지 명확하지 않기에 호기심과 상상력이 발동된다. 그러나 현실에 두 발을 디딘 채 현실을 살짝 벗어난 것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계속 미끄러진다.
호퍼의 작품은 현대화된 당시 미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인 고독과 소외, 불안을 담아낸다. 풍요롭고 매혹적인 도시의 즐거운 사람들이 아니라 도시에 묻혀 존재감을 상실해가는 사람들이다. 호퍼가 활동하던 20세기 초·중반은 급속한 산업화와 기계화로 물질적 풍요와 번영을 얻은 시기다. 그러나 물질 만능주의, 소비 지향, 빈부 격차, 자연과의 단절, 기계 부속품처럼 관리되는 인간에 대한 회의가 밀려온 때이기도 하다. 경제 대공황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 역시 위기감과 허무주의로 이어졌다. 모더니즘 시대에 이룬 진보의 이면에서 일어난 심리적 불안과 고립, 관계의 소멸로 인해 사람들은 스스로에게조차 이방인이 되었다. 그런데 속이 텅 빈 것처럼 무기력해 보이는 무표정의 사람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와 오버랩되고, 호퍼의 작품은 시간을 초월한 보편성을 획득한다. 현재로 오면서 과학기술과 산업은 더 발전했고 사회는 점점 더 거대해졌다. 그만큼 편익을 누리는 것도 사실이나 부작용도 심화되었다. 언제든 서로를 연결해주는 전화와 인터넷, 매스미디어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에도 고독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그렇다면 호퍼의 삶은 어땠을까?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호퍼는 평생 큰 굴곡 없는 삶을 살았다고 알려진다. 호퍼는 몇 번의 유럽 여행과 멕시코 여행 등을 제외하면 평생 미국을 떠나지 않았다. 1908년에는 뉴욕에 완전히 정착했고 여름이면 매사추세츠주 코드곶(Cape Cod)의 사우스 트루로(South Truro)에 머물렀다. 화가였던 아내 조세핀 호퍼(Josephine Hopper)는 호퍼의 작품 속 여성상의 모델이 되어주었으며 남편에게 도움을 아끼지 않는 평생의 조력자였다. 뉴욕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생계를 위해 삽화를 그리던 호퍼는 점점 회화 작업에 집중했는데 양식의 급변 없이 꾸준한 전개를 보였다. 그의 예술적 변화는 연속성과 지속성으로 수렴된다. 한 인간이자 작가로서 그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한결같다는 단어가 떠오른다.
영화를 좋아하던 호퍼는 극장을 자주 찾았고 작업 소재나 구성을 위한 영감을 받기도 했다. 게일 레빈(Gail Levin)의 책 <에드워드 호퍼 전기(Edward Hopper: An Intimate Biography)>에는 호퍼의 작업과 영화의 관계가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호퍼는 ‘서클 극장(The Circle Theatre)’(1936), ‘셰리던 극장(Sheridan Theatre)’(1937), ‘뉴욕 영화(New York Movie)’(1939) 등에서 영화관 안과 밖의 정경을 담았다. 영화관은 그 자체로 도시에 아주 잘 어울리는 장소다. 호퍼의 작품에 등장하는, 창을 통해 대상을 엿보는 듯한 상황도 관객이 스크린의 이미지를 보는 것과 닮았다. 이런 특징은 창밖, 정확하게는 건물 안에서 마주 보이는 건물의 내부를 몰래 들여다보는 것 같은 ’밤의 창문(Night Windows)’(1928)이나 ’뉴욕의 방(Room in New York)’(1932)에 잘 나타난다. 실내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개인적 공간이 누군가의 시선에 침범당했음을 알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이창>(1954)이 떠오르는 작품 앞에서 관객은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인상을 받으며 긴장감을 느낀다. 그러나 외부에서 엿보는 주체이기에 시선의 대상인 그림 속 인물과 화면이 암시하는 관찰자, 창문의 안과 밖은 분리된다. 그 둘은 결코 한 공간을 공유하거나 소통하지 못한다.
호퍼의 작품과 관련 있다고 거론되는 영화도 많다. 호퍼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닌 ‘밤샘하는 사람들(Nighthawks)’(1942)을 이야기할 때면 필름 누아르가 등장하고, 히치콕의 <싸이코>(1960)에서부터 빔 벤더스, 데이비드 린치 등의 영화 장면에서도 호퍼의 작품이 언급된다. 최근 자주 거론되는 영화는 구스타프 도이치의 <셜리에 관한 모든 것>(2013)인데, 호퍼의 작품 13점을 기반으로 주인공 셜리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 화제가 되었다.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호퍼의 작품은 미국 도시를 그린 것이다. 그러나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한 풍경화도 다수 존재한다. 특히 초창기 풍경화에서는 색의 사용이나 명암법, 단순화된 표현 등에서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같은 유럽 미술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메인주에 있는 오건킷의 바닷가를 그린 ‘작은 배들, 오건킷(The Dories, Ogunquit)’(1914)과 파리 여행의 기억을 토대로 한 ‘비스트로 또는 와인 가게(Le Bistro or The Wine Shop)’(1909)에서는 빛과 그림자, 색채가 이루는 균형과 대비가 두드러진다. 호퍼는 1906년, 1909년, 1910년, 총 세 번에 걸쳐 프랑스에 머물렀으며 이때 영국, 네덜란드, 독일, 스페인 등을 여행했는데 여행지에서도 화려한 볼거리보다 자연스러운 그곳의 일상을 포착했다. 여행자에게는 낯선 장소이고 새로운 모습이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하루다. 반면에 여행지의 방문객은 어떻게 해도 생소한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벗어날 수 없기에 둘 사이의 사라질 수 없는 거리감은 호퍼의 풍경화에 고스란히 담긴다. ‘비스트로 또는 와인 가게’에서는 또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을 찾을 수 있는데 인물과 건축보다 빈 공간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음료를 앞에 둔 채 대화를 나누는 여성들은 그림 속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기보다 화면 구성을 위한 조형 요소처럼 보인다. 이런 모습은 빛과 그림자 그리고 공간 자체가 주인공인 ‘바다 옆의 방(Rooms by the Sea)’(1951), ‘빈방의 빛(Sun in an Empty Room)’(1963)을 예견하는 듯하다.
한편 호퍼는 인물이 사라진 자연이나 도시, 건축물이 있는 풍경을 자주 그렸는데 ‘약국(Drug Store)’(1927), ‘이른 일요일 아침(Early Sunday Morning)’(1930), ‘오전 7시(Seven A.M.)’(1948)처럼 사람이 붐빌 것 같은 상점 주변조차 텅 비어 있다. 투명한 창으로 진열장과 내부가 들여다보이는데 상점 안에도 사람은 없어 보인다. 한 커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사라진 상황을 그려낸 영화 <보케>(2017)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호퍼의 풍경화는 침묵한다. ‘오전 7시’의 경우 하얗고 단정한 건물과 짙은 초록빛 숲의 선명한 분리가 인간 문명과 자연의 경계의 대비를 보여준다고 해석되는데, 이는 호퍼의 풍경화에서 자주 발견되는 특징이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같은 공간을 점유하며 공존하는 두 세계는 모두 인간이 머무는 곳이다. 그러나 블라인드 때문에 안을 온전히 볼 수 없는 문명의 공간과 깊은 그늘 때문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숲 어디에서도 인간을 찾을 수 없다. 두 세계에 모두 다가가지 못하는 인간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림은 어떨까? 초기 작품인 ‘푸른 저녁(Soir Bleu)’(1914)에서부터 이미 ‘밤샘하는 사람들’과 유사한 분위기가 흐른다. 화폭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공간에 머문다. 어디에서도 소통의 행위를 감지할 수 없고 그들의 기분이나 감정 또한 읽기 어렵다. 화폭의 왼쪽, 담배를 물고 있는 남성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보이는 것 같지만 그의 맞은편에는 아무도 없다. 그들의 복장이 다른 만큼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보인다. 특히 중앙에 앉아 있는 광대 분장을 한 인물은 고립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군중 속에 있어도 외로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림 속 대상만 소외의 감정에 젖어드는 것은 아니다.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도 그림 속 세상에 일정 거리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그래서 역으로 작품의 정서에 공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어난다.
현대인, 아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독을 경험할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세상에 태어나 언젠가 홀로 떠나야 하는 인간은 선천적으로 고독을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운명이었을지, 우연이었을지 알 수 없는 나의 시작은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의 출발점이 된다. 따라서 호퍼의 인물들은 특정 시대를 상징한다고 한정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타인과의 차이를 강조하고 내가 아닌 존재와 거리를 유지한다. 정체성은 분리에서부터 시작한다. 동시에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모습을 만들어간다. 사람들을 만나며 치유받고 삶의 원동력을 찾지만, 사람들 때문에 삶의 의욕을 잃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호퍼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창문은 모순 속에 놓인 인간의 이중적 상황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그것은 소통하고 싶은 마음과 고독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을 다 대변한다. 창문은 공간을 분리한다. 그러나 투명한 창문 혹은 열린 창문은 안과 밖을 연결해준다. 나아가 창문은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심리적 통로의 상징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기의 내면뿐 아니라 타인의 내면도 알고 싶어 한다.
‘햇빛 속의 여인(A Woman in the Sun)’(1961)에서 방에 홀로 있는 여성은 옷을 벗은 채 손에 담배를 들고 생각에 빠져 있다. 펄럭이는 커튼의 끝자락을 보니 창밖 풍경을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하다. 사각의 빛 안에 들어선 여인과 그녀 뒤로 생긴 그림자는 그녀가 독백을 준비하는 무대 위의 배우처럼 보이게 한다. 호퍼의 빛은 형상을 드러내고 공간을 나누며 분위기를 결정해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호퍼는 빛이 세계를 설명하는 탁월한 힘을 갖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한편 옷은 사회적 정체성의 상징과 같기에 그녀가 나체 상태라는 것은 통념과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운 순간임을 은유한다. 그녀는 잠시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자발적 고독이 필요할 수도 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녀가 무엇을 할지 상상해본다. 옷을 입고 구두를 신고 햇빛을 맞으며 밖으로 나갈지 아니면 해가 질 때까지 방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지, 그것은 감상자의 선택에 달렸다. 그녀를 비추는 빛은 어느 쪽이든 우울한 결말이 아님을 암시한다.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통용되는 빛의 의미는 호퍼의 작품에도 작동한다. 뻔한 답일 수 있으나 사람들 속에 있어도 고독할 수 있다. 혼자인 시간도 돌아올 것이다. 또 인간은 관계를 벗어날 수 없고 벗어나서도 안 되니 영원히 혼자일 수 없다.
덤덤하게 그려낸 것 같은 일상의 풍경이 많은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일상은 인간의 모든 것을 간직한다. 호퍼의 예술 세계의 근원인 일상은 사실 우리 삶의 근원이었다. 오늘도 평범하지만 특별한 하루다. (VK)
- 글
- 이문정(미술 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 참고 문헌
- 게일 레빈 저, 최일성 역, '에드워드 호퍼: 빛을 그린 사실주의 화가', 을유문화사, 2012. 롤프 귄터 레너 저, 정재곤 역, '에드워드 호퍼', 마로니에북스, 2022. 마크 스트랜드 저, 박상미 역, '빈방의 빛: 시인이 말하는 호퍼', 한길사, 2022. 실비아 보르게시 저, 최병진 역, '호퍼: 고독한 현대인의 자화상', 마로니에북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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