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M. 윌리엄스가 지방시에 숨겨놓은 은밀한 코드
매튜 M. 윌리엄스는 본능과 호기심을 충족하며 지방시 세계를 새롭게 한다.
LA에서 캘리포니아 해안을 따라 북쪽을 향하다 보면, 피스모 비치(Pismo Beach)라는 작은 마을을 만나게 된다. 몇 년 전 샌타바버라에서 샌프란시스코를 향하다가 점심 식사를 위해 들른 그곳은 평화로웠다. 해변을 바라보는 부둣가 식당에서 마주친 동네 사람들은 친근하고 밝아 보였다. “그 부둣가 바로 뒤쪽이 제가 자란 곳입니다.” 서울 성수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지방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매튜 M. 윌리엄스(Matthew M. Williams)가 자신의 고향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아주 조용한 곳입니다. 패션과는 거리가 멀죠.” 해변가에서 스케이트보드를 즐겨 타던 소년은 파리 꾸뛰르 하우스의 수장이 되어 서울을 찾았다. “그곳에서 자랄 땐 패션이 하나의 직업이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윌리엄스가 지방시에 합류한 것은 2020년 6월이었다. 양팔과 가슴, 배까지 이어지는 타투가 그대로 드러나도록 상의를 탈의하고 찍은 사진이 그의 입성을 알리는 첫 번째 이미지였다. 그의 전임자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우아한 드레스의 시대는 가고, 젊고 강렬한 지방시가 시작되었음을 알리기에 그보다 효과적인 이미지는 없었다. “일반적인 입사는 아니었습니다.” 자가 격리와 팬데믹의 시대에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쉬운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 경험의 모든 것이 그에게는 감사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지방시에는 훌륭한 아틀리에가 있습니다. 장인들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내는 컨셉과 디자인을 최고 수준으로 완성할 수 있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난 3년 가까운 시간을 그는 학습의 시간이라고 정의했다. “모든 건 배움의 과정이죠. 계속 배우고 진화해갑니다.”
배움에 대한 열망은 캘리포니아 키드를 패션 수도로 이끄는 에너지가 되었다. “샌타바버라에서 대학에 다닐 때 우연히 LA에 있는 한 디자이너를 알게 되었어요. 어느새 그의 인턴으로 패턴 공장과 제작 공장을 돌아다니며 일하고 있었습니다.” 조각을 배우던 미대생은 패션에 숨은 비밀을 깨달으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옷감을 통해 완성하는 조각이라는 생각으로 패션에 접근하는 것이 좋았어요. 무엇보다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점이 저를 몰두하게 했습니다. 문제를 풀어나가는 느낌이었죠.” 수천 번 넘어지며 스케이트보드 기술을 배웠던 윌리엄스에게 서서히 깨우쳐가는 패션의 매력이 새롭고도 익숙했다. “이미 늦게 찾아오는 만족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티셔츠와 청바지 만드는 법을 배우고, 가죽과 니트를 다루는 법을 일깨우고, 드레스와 주얼리의 중요성을 깨닫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또 다른 길을 발견했다. 10대 시절 샌프란시스코의 전설적인 레코드 가게 아메바 뮤직에서 시간을 보내던 소년에게 LA에 가득한 뮤지션과의 만남은 새로운 충격이었다. 우연히 뮤지션의 스타일리스트들이 그에게 의상 제작을 부탁했고, 그는 또 새로운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어느새 그는 레이디 가가의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며 카니예 웨스트와 버질 아블로의 크리에이티브 그룹 ‘돈다(Donda)’의 일원으로 알려졌다.
“뮤지션들과 함께하면서 제 이름이 알려졌지만, 그 작업이 저를 반영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윌리엄스는 곧 자신만의 브랜드 ‘1017 알릭스 9SM’을 시작했다. “순수하고, 정직하고, 개인적인 제 아이디어를 담는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아닌 것으로 알려지는 것에 숨이 막혀왔거든요.” 자신의 브랜드에서 그는 좀 더 정제된 아이디어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 속에는 워크 웨어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디자인과 이탈리아 장인의 테일러링이 함께했다. 곧 추종자가 생겨났다. 그중엔 디올 맨의 킴 존스도 있었다. 디올 데뷔를 준비하던 존스는 윌리엄스에게 하드웨어 액세서리 디자인을 부탁했다. 현대적이고 남성적인 아이디어의 버클 장식은 디올 하우스에도 새로운 이미지를 선물했다. 자연스럽게 하이패션계가 매튜 M. 윌리엄스를 주목했다.
반면 지방시 하우스는 새로운 주인을 찾고 있었다. 1952년 위베르 드 지방시가 시작한 이 브랜드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며 새로운 삶을 살았다. 설립자는 오드리 헵번으로 대변되는 전통적이고 우아한 스타일을 완성했다. 1995년 그가 은퇴한 후 지방시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런던의 악동인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맥퀸, 줄리앙 맥도날드가 차례대로 통과의례처럼 브랜드를 거쳐갔다. 리카르도 티시가 10년 동안 농염한 아이디어와 파격적인 스트리트 웨어의 믹스로 지방시를 업그레이드시켰지만, 클레어 웨이트 켈러는 또다시 여성적인 우아함의 미학을 추구했다. 그 와중에 브랜드의 이미지는 흔들렸다. 그렇게 해서 윌리엄스에게는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다. 하우스를 새롭게 만들면서도 뿌리를 다질 것.
“전 캘리포니아 사람입니다. 조금 ‘인포멀(Informal)’하죠. 부디 제가 허물없고 편안한 분위기를 하우스에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타투 가득한 디자이너의 이미지만큼 윌리엄스의 지방시는 조금 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자물쇠에서 영감을 얻은 하드웨어 장식이나 3D 작업을 바탕으로 한 스니커즈가 그 증거다. “저에게 주어진 과제는 지금의 옷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이미 존재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디자이너의 의무는 앞을 바라보는 와중에 사람들이 아직 스스로 원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지금 제가 느끼는 것과 하우스의 유산과 DNA, 코드와 프랑스적 아이디어를 믹스해야 합니다.”
팬데믹과 함께 새 직장을 찾은 윌리엄스에게 이런 도전이 쉽지만은 않았다. 자가 격리와 재택근무 등 그를 가로막는 장애가 많았다. 패션쇼 대신 영상과 이미지로 자신의 작업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그럴수록 그는 하우스의 아카이브로 향했다. “지방시 하우스에는 아주 은밀하고 숨겨진 코드가 많습니다. 계속 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죠.” 그는 스스로 찾아낸 그 비밀의 코드를 지금에 어울리도록 변형한다. “다른 소재와 형태를 하우스의 코드에 적용합니다. 즐거운 일이죠. 이미 존재하던 것을 새로운 맥락에 놓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가 바라보는 브랜드의 이상은 오드리 헵번처럼 한 명으로 정의할 수 없다. “더 이상 하나의 이상향이 지방시 우먼을 대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정의하면 수많은 여성을 배제하게 됩니다. 전 이 하우스의 포용성이 좋습니다. 두 딸부터 꾸뛰르 드레스를 즐기는 제 주변의 여성까지 모두 지방시의 세계에 있습니다.” 그는 말을 흐렸지만, 우리는 그가 지난 3년간 선보인 컬렉션에서 일정한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감 넘치지만 우아한 태도를 지닌 여성, 가죽과 날카로운 테일러링을 즐기면서 보디라인이 드러나는 새틴 드레스를 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 자연스럽게 Y2K 유행과 조용한 럭셔리를 추구하는 여성들 사이를 오갔다. 그 이상향을 향해가는 건 디자이너의 본능이다. “우리는 작가에 대한 정보와 작품의 가치를 몰라도, 예술사에 정통하지 않아도 위대한 예술 작품을 보면 가슴에 무언가를 느끼죠. 훌륭한 패션 디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떤 맥락 없이도 매장에서 바라보는 순간 가슴이 뛰어야 합니다.”
윌리엄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건 패션뿐만이 아니다. 서울에 오기 직전 그는 열세 살이 된 아들과 함께 일주일을 보냈다. 그와 함께 사무실에 출근하고 그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영감을 얻었다. 때로는 두 딸과 주말 내내 드레스를 만들면서도 열정을 재확인한다. “물론 사무실에서 팀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영감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거나, 푹 자고 일어나거나,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는 시간. 즉 ‘인 비트윈(In Between)’의 시간에도 영감은 찾아옵니다. 그걸 갈고닦고 작업에 녹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외에도 파리 아파트의 정원을 가꾸고, 친구들을 위해 요리를 하고, 음악을 만드는 것도 모두 그를 자극한다.
우리의 대화는 곧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키스 자렛의 이름이 등장했고, 그가 ‘알릭스’ 라벨을 위해 만들고 있는 음반, 패션계에서 AI의 역할과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아프리카 케냐에 그가 지은 학교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었다. 양팔의 타투가 그대로 보이는 검정 티셔츠를 입고 방금 면도한 듯이 짧은 머리의 디자이너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 속에는 자신만의 통찰이 있었다. 허투루 하는 이야기는 없었다. 거대한 럭셔리 그룹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자신의 지위를 잘 깨닫고 있는 듯했다. 가장 자랑스러운 작업에 대해 묻자, 자랑스럽다는 단어 대신 만족한다는 단어로 바꾸자고 웃으며 제안했다. 이제까지 지방시에서의 경험에 대해서는 “아름다운 배움의 연속”이라고 답했다.
“모든 것을 제가 컨트롤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 3년간 배움을 거듭해왔다면, 이제 윌리엄스만의 족적을 남길 시간이다. 팬데믹이 끝나가면서 윌리엄스도 리듬을 되찾고 있다. 하지만 거대한 목표를 세우진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고자 한다.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아름다운 컬렉션을 선보이고, 과정을 즐기는 것뿐입니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아니냐는 말에 그가 웃으면서 답했다. “누굴 이기려고 일하는 게 아닙니다. 현재를 살고,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VK)
- 에디터
- 손기호
- 포토그래퍼
- 장덕화
- 모델
- 조안 박, 오권호
- 헤어
- 이현우
- 메이크업
- 유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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