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이야기, 고요한 향
순백의 고요와 청결.
논픽션이 그 안에 담은 숭고한 이야기.
젊은 세대의 취향에 꼭 들어맞는 감각적인 향, 유려한 식물과 소품으로 꾸민 쇼룸. 그것 말고도 논픽션을 대표하는 정체성은 또 있다. 아티스트와의 긴밀한 협업이다. 흙과 종이, 세라믹, 유리, 나무 등 만물로 개성 강한 오브제를 만들어내는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그들의 시선은 확고하고 탁월하다. 지난해 ‘센티드 솝’과 합작으로 선보인 오브제 ‘솝 디쉬’를 제작한 세라미스트 3인부터, 직접 선정한 국내 젊은 작가 10인의 작품 전시와 함께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한 팝업 스토어까지. <보그>는 그 향긋하고 예술적인 순간마다 함께했다. 제품을 직접적으로 내세우는 마케팅이 아니라 그것만의 이야기와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논픽션은 이번에는 더 소박하고 순수한 미학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그 주인공은 단아한 백자 속의 향초, ‘센티드 캔들’이다.
‘테이블 게스트(Table Guest)’ ‘피스 토크(Peace Talk)’ ‘랍상 송(Lapsang Song)’. 우리의 일상 공간에 휴식과 활력을 주는 세 가지 향의 룸 스프레이와 캔들로 지난해 말, 논픽션은 ‘홈 프래그런스’ 컬렉션까지 라인업을 확장했다. 그 가운데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센티드 캔들’은 향을 담은 곱디고운 백자가 무엇보다 눈에 띈다. 허술하거나 날카로운 면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담백한 색의 우아한 곡면은 기품마저 느껴진다. 비결은 도자기 명장의 섬세한 수작업으로 탄생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논픽션이 조우한 아티스트는 이천의 도자기 명장, 녹원요 유용철 대표다. 출시일에 맞춰 빠르고 효율적인 속도로,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찍어내는 기성품이 아니라 장인의 손길을 통해 만든 작품이기에 그 길고 정성스러운 과정 자체가 소중할 수밖에 없다. 무려 6개월이 넘는 동안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비로소 완벽에 가까운 백자가 탄생했다. 느린 호흡이지만 여러 차례 수작업을 거치며 점차 단단하게 변모하는 서사가 순백의 향초에 깃든 것이다.
“백자는 순백, 태초의 매력을 지닌 도자기입니다. 색을 섞으면 섞을수록 검은색에 가까워지는 데 반해, 순백은 어떤 요소나 색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고유의 순수한 빛깔이죠.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결점도 허용치 않는 까다로움과 섬세함을 동반합니다. 작업 과정에서도 머리카락이나 속눈썹은 물론, 떠도는 먼지 한 톨조차 실수로 섞이지 않도록 관리해야 해요. 힘들지만 그만큼 더없이 아름다운 결과물이 탄생하죠.” 유용철 대표의 말이다. 특히 이번 협업의 관건은 보드라운 천을 두른 듯한 향초의 우윳빛 겉면이다. 섭씨 1,250도에 이르는 가마 온도가 2~3도만 차이 나도 도자기의 빛깔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그리하여 매우 엄격한 소성 절차를 거치게 된다. 동일한 가마조차 천장과 바닥의 온도가 미세하게 다르므로 전부 동일한 결과물을 약속할 수 없어 모든 순간에 장인의 전문성이 닿을 수밖에 없다. 오롯이 ‘색’에만 집중하다 보면 표면의 고운 결을 놓치기 쉬운 것이 함정. 대부분의 도자기는 뜨거운 불길 속에서 자연스레 생기는 흠을 매끈하게 덮는 유약 작업을 하는데, ‘센티드 캔들’은 별도의 코팅 없이 본연의 빛을 강조하는 것에 집중했다. 초벌 후 안쪽 면을 유약으로 매끄럽게 정돈하고, 또 한 번의 재벌 소성을 마친 뒤, 유용철 대표는 스크래치가 없도록 하나하나 사람의 손길로 향초의 곡면을 다듬었다. 이토록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생김새의 향초 뒤에는 수많은 노고와 진중한 장인 정신이 존재한다.
마침내 탄생한 백자 용기에 들어가는 세 가지 향기. 공간의 품위를 높이는 캔들은 향의 건축적 구조에 탐닉하는 프랑스 조향사, 도미틸 미샬롱 베르티에(Domitille Michalon-Bertier)의 코끝에서 탄생했다. 그녀는 복합적인 향의 층위를 안정적으로 지탱해주는 견고한 골조를 만들고, 공간 하나하나의 구체적 디자인을 완성해나가듯 향기를 배치했다. 캔들의 원료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LMR(Laboratoire Monique Remy, 모니크 레미 연구소)’로 표기된 향료. 향기의 요람, 그라스 지역에 위치한 천연 향료 연구소를 뜻하며 이곳에서는 자연이 지닌 복합적인 특성을 고스란히 추출해 특유의 진하고 본질적인 향취의 원료를 공급한다. 캐릭터가 명확한 LMR만의 향료로 논픽션과 미샬롱 베르티에는 공간의 분위기를 구체화했다. 촛불을 켜서 발향이 되고, 꺼진 뒤의 잔향까지 내내 머릿속에 어떤 순간과 기분을 상상하게 만들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컬렉션 가운데 가장 자연을 닮은 ‘테이블 게스트’. 블랙커런트의 상큼한 과실 향과 파촐리의 싱그럽고 시원한 풀 향기가 어우러진다. 그런가 하면 ‘피스 토크’는 고요하고 사색적인 공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카다멈, 샌들우드가 조화를 이룬 부드러운 우디 향조는 폭신한 이불, 부드러운 캐시미어 담요에 파묻힌 듯한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풍미 짙은 훈연 차를 한 모금 들이켜는 순간을 모티브로 한 ‘랍상 송’. 정적인 에너지를 채우는 느긋한 티타임을 닮은 향기는 카다멈과 바닐라 빈, 파촐리를 조합해 완성했다.
수분을 가득 충전한 흙이 석고 틀과 뜨거운 불길, 장인의 손을 거쳐 견고한 백자가 되기까지, 농밀한 향료를 조합해 그 안에 담기까지. 여러 전문가들의 성심과 미학이 반영된 결과물 ‘센티드 캔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고아한 생김새로 어떤 공간과도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고요하고 은은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우리의 공간에 필요한 오브제란 바로 이런 것이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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