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뎀나는 지금의 패션을 둘러싼 상황이 불만스럽다

2023.04.24

뎀나는 지금의 패션을 둘러싼 상황이 불만스럽다

파리는 1년 중 두 번, 가장 강렬하고 매혹적인 빛을 내뿜는다. 매년 3월과 10월, 패션 스쿨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철창을 뛰어넘어서라도 보고 싶어 하는 패션 위크 때문이다. 전 세계의 셀럽, 패션 피플과 인플루언서, 에디터가 운집하고, 인스타그램에는 수십만 명이 찍은 사진과 이야기로 넘쳐흐른다. 그것은 어떤 셀럽이 어떤 쇼에 참석했는지 알리는 ‘속보’일 수도 있다. 아름다운 런웨이의 모습도 있고, 그 지역의 아름다운 호텔이나 풍경도 있다. 때론 방대한 이야기 속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잊히곤 한다.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옷’ 말이다.

지난 3월 5일, 발렌시아가는 파리 루브르 피라미드 아래에 위치한 카루젤 뒤 루브르(Carrousel du Louvre)에서 2023 F/W 컬렉션을 발표했다. 쇼장 가득 눈보라를 일으키거나, 바닥 전체를 진흙투성이로 만드는 등 격정적인 세트 디자인을 선보였던 것과 달리 차분하고 고요한 느낌을 주는 장소였다.

2023 S/S 컬렉션은 카니예 웨스트가 시작을 알렸고 프런트 로에는 카일리 제너가 앉아 있었지만, 이번 컬렉션에서는 극소수의 셀럽에게만 쇼를 볼 기회가 주어졌다. 당연히, 특정 셀럽을 보기 위해 팬들이 쇼장 앞에서 기다리는 일도 없었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태어난 곳인 스페인의 전통 음악 플라멩코를 연상시키는 잔잔한 기타 선율 속에서 54개의 룩을 선보였을 뿐이다.

발렌시아가의 쇼를 본 이들의 반응이 극명히 갈린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패션을 둘러싼 이슈와 부속물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지루하다는 평을 남겼다. 반면 전설적인 패션 저널리스트 팀 블랭크스는 ‘지난 몇 개월간 수많은 논란에 휩싸였던 브랜드가 찾은 최선의 탈출구’라는 평을 남겼고, <보그 런웨이>의 사라 무어 역시 뎀나가 선보인 ‘옷’에만 집중했다.

현시대를 대표하는 크리에이터, 뎀나는 본인과 패션을 둘러싼 모든 소음에 신물이 났다. 그는 단지 옷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보그 코리아>가 그와 이번 컬렉션, 나아가 패션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테일러링에 치중했다. 그래서인지 컬렉션 전체에서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향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컬렉션을 구상하며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하우스의 아카이브도 참고했는지 궁금하다.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분석했다기보다 내 뿌리를 찾아 떠났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디자이너로서 첫발을 내디딜 때 가졌던 초심, 그리고 내가 처음 만든 옷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만의 미학과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미학이 상당 부분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팬츠의 허리 부분을 재킷 밑단으로 사용했다. 기존 것을 해체한 뒤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당신이 발렌시아가의 수장이 된 후 처음 선보인 컬렉션이 떠오르기도 했다. 본인의 과거 작업물에서도 영감을 받았나?

Photo by Vincent Desailly. 팬츠의 허리 부분이 코트 밑단으로 재탄생했다.

정확하다. 내가 발렌시아가에서 만들어냈던 컬렉션들을 되돌아보는 것 역시 ‘내 뿌리를 찾아 떠나는 과정’의 일부였다. 그 과정은 매우 즐겁고 편안했다. 내가 왜 옷을 사랑하게 됐는지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과거를 되돌아보며, 끊임없이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 역시 깨달았다.

이전 컬렉션들과 비교했을 때, 2023 F/W 컬렉션은 훨씬 차분했다. 베뉴, 음악, 옷, 모든 것이. 사람들이 옷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의도했나?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두 가지다. 옷을 만드는 것, 그리고 옷이라는 개념 자체를 진화시키는 것. 패션을 둘러싼 온갖 소음에는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컬렉션 노트에서 ‘패션이 엔터테인먼트의 일종이 되어버렸다’고 했는데, 이 현상에 자신이 끼친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패션이 현재 놓인 상황이 불만스러운가?

패션은 점점 옷보다는 화려한 쇼와 셀럽, 소셜 미디어에 관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디자이너로서 현 상태에 일조했다 생각하느냐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요’다. 나는 항상 ‘디자인만을 위한 디자인’을 해왔다. 물론 나 역시 웅장하고 메시지가 담긴 쇼를 선보이는 데 열중한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발렌시아가의 옷들이 ‘거대한 쇼’라는 이름에 가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이 내가 패션의 ‘엔터테인먼트적 측면’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은 이유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나는 언제나 옷을 진화시키고 실험적인 실루엣과 테크닉을 선보이는 데만 집중해왔다. 그리고 내 앞에는 여전히 ‘드레스메이킹’에 관해 탐구할 시간이 무한히 놓여 있다.

발렌시아가 하우스의 51번째 쿠튀르 쇼 이후, 마지막으로 선보인 51번 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가장 크고 격렬한 감정이 담겨 있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이번 컬렉션에서는 어떤 룩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모델 민투가 입고 등장한 23번 룩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쇼의 마지막을 장식한 등장한 54번 룩. 세세하게 수를 놓아 마치 깃털을 보는 듯한, 라운드 숄더의 아름다운 드레스다. 내가 발렌시아가에서 선보인 첫 컬렉션에도 등장한 모델 리테이(Litay)에게 드레스를 입히고 쇼의 클로징을 맡겼다. 그녀가 지니고 있는 엘레강스한 아름다움, 모종의 유약함이 내가 이번 컬렉션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일련의 메시지와 닮았기 때문이다.

여섯 살 때 부모님과 함께 동네 테일러 숍에서 팬츠를 맞춘 이후, 패션과의 정사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당신과 패션은 아직도 서로를 사랑하는가? 그 끝은 어떤 모습일까? 끝이 있기는 할까?

패션은 모두를 놀라게 해야만 하고, 즐거워야 할 의무가 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패션 안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단지 그것이 누군가의 욕망을 점화시키기만 하면 될 뿐이다.

사진
Vincent Desai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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