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산에 의한, 산을 위한 시계.

가벼운 등산 정도는 좋아하지만 히말라야에 오르는 상상은 해본 적도 없다. 산은 크고 웅장할수록 멀리서 바라보는 게 더 멋지기도 하고, 솔직히 말해 엄두가 나지 않는다. 폴란드 산악인 보이테크 쿠르티카(Voytek Kurtyka)는 등산을 ‘인내의 예술’이라 표현했다. 산악인에 대한 막연한 존경심과 판타지가 점점 커진다. 몽블랑 역시 같은 마음인 걸까. 유명한 산봉우리에서 딴 이름과 엠블럼에서 느껴지듯 산은 메종의 중심이자 모험, 도전, 강인함, 정신적 고양의 강력한 상징이다. ‘워치스 앤 원더스 제네바 2023’ 몽블랑 부스 중앙에서 아주 천천히 산을 그리는 대형 만년필은 올해 역시 산과 관련된 신작이 발표될 것을 알렸다.

총 네 가지 모델로 구성된 ‘1858 제로 옥시젠 8000’ 캡슐 컬렉션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14개 봉우리를 조명한다. 모두 해발 8,000m가 넘는 산으로, 산소가 충분하지 않아 등반이 까다롭고 위험하다. 소수의 산악인만 완등했고, 산소 보조 장치 없이 등반한 사람은 그보다 훨씬 적다. 2019년 몽블랑 마크 메이커 님스다이 푸르자(Nimsdai Purja)가 단 6개월 6일 만에 14개 봉우리를 등반하며, 그 과정에서 여섯 개 기록을 경신했다. 이번 캡슐은 케이스를 무산소 상태로 조립하는 ‘제로 옥시젠’ 시리즈에 합류하며 열악한 환경의 탐험가에게 여러 이점을 제공한다. 고도에 따라 급격하게 변화하는 온도로 인해 발생하는 김 서림을 없앨 뿐 아니라 산화작용까지 방지한다. 모든 구성품이 오래 유지되고 시간이 흘러도 안정적인 정밀도를 제공하는 것. 그중 하나가 월드 타임 컴플리케이션 기능을 갖춘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MB 29.27로 작동하는 ‘1858 지오스피어 크로노그래프 제로 옥시젠 8000’이다. 무산소 상태로 조립한 지름 44mm 티타늄 케이스에 자리한 스푸마토 다크 그레이 글래시어 패턴 다이얼은 바위와 얼음의 색을 재현했다. 두 개의 3D 회전 지구본은 낮∙밤 인디케이터로 둘러싸여 있으며, 월드 타임 기능을 쉽게 설정할 수 있도록 오렌지 컬러로 그리니치 자오선을 표시했다. 오렌지 도트로 14개 봉우리 위치를 나타낸 북반구 지구본, 님스다이의 기록을 3D 컬러 레이저 인그레이빙으로 새긴 케이스 뒷면 등 시계의 영감이 된 산에 대한 몽블랑의 집요함이 재미와 특별함을 더한다.

몽블랑의 하이엔드 워치메이킹 기술력을 과시할 수 있는 리미티드 에디션도 있다. 디스트레스드 스틸 버전의 ‘1858 언베일드 시크릿 미네르바 모노푸셔 크로노그래프’다. 1927년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얻은 화이트 골드 소재 플루티드 베젤을 장착하고, 검은색 누벅 악어가죽 스트랩을 조합했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것은 무브먼트를 뒤집어 시계 정면에서 모든 기계식 작동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무브먼트를 뒤집으면서 핸즈도 반전시켜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하다. 메종은 유서 깊은 핸드 와인딩 방식의 MB M16.29 무브먼트에 부품 21개를 추가해 미학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완벽한 타임피스를 완성해냈다. 이 정교한 기계식 시계에도 산의 정기를 불어넣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블랙 코팅한 스틸 케이스를 손으로 세척한 후 몽블랑산의 규암, V자 모양의 라 콩브 그레드(La Combe Grède)산의 석회암으로 브러싱 처리했다. 산과 계곡이 하나가 된 시계다.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