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 패션 디렉터의 아주 특별한 앤티크 워치
투명한 창으로 들여다보이는 완전한 작은 세계. 작지만 세상 어느 곳보다 과학적이고 혁신적이며 창의적인 공간. 복잡한 마이크로 부품이 쉴 새 없이 작동하는 시계 속보다 신비한 게 또 있을까? 시계보다 ‘금은보화’에 더 관심이 많던 내가 기계식 시계에 관심이 생긴 건 지난해 ‘워치스 앤 원더스’를 취재한 뒤부터다. 컴플리케이션, GMT, 미닛 리피터, 뚜르비옹 등 낯설고 어려운 시계 용어는 시계를 고를 때 디자인만 보던 내 관점을 180도 바꿔놓았다. 이와 함께 그동안 잊고 있던 나의 바쉐론 콘스탄틴 스켈레톤 시계가 떠올랐다. 20년 전에 구입해 한동안 착용하다가 디자인이 평범하다거나, 당시 캐주얼하던 유행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핑계로 보석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둔 시계였다. ‘워치스 앤 원더스’ 이후의 시각으로 다시 들여다보니, 2.5cm의 다이얼에 마이크로 옐로 골드 부품이 정교하고 아름답게 장착된 이 시계는 태엽을 감아 작동하는 스켈레톤 무브먼트(기계가 들여다보이는 시계의 동력 장치)가 일품이었다. 디자인이나 유행 따위와 상관없이 내 마음이 다시 가기 시작했다. 15년 이상 작동이 멈췄던 시계태엽을 조심스럽게 감기 시작하자, 우려와 달리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게 기쁘기라도 한 듯 무브먼트가 활기차게 작동했다! 다만 연식이 오래돼(1996~1997년경 출시됐을 것으로 추정) 규격에 딱 맞는 스트랩을 찾느라 애를 먹긴 했다. 덕분에 요즘 내가 가장 자주 차는 시계로 등극했다. 고가의 무브먼트는 장착되지 않았지만 꽤 좋은 시계를 소유하고 있다는 건 자기만족 이상의 기쁨을 준다. 때로 시계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듣는 칭찬도 뿌듯하지만, 나에게 다소 부족한 여성스러움을 더하는 동시에 ‘나는 스타일에 구력 좀 있는 여자’라는 프로페셔널한 자신감마저 준다고나 할까? 남편은 그건 자신감이 아니라 순전히 나의 허기 때문이라고 핀잔을 주곤 하지만(그런 생각 자체가 평범한 사람에게선 나올 수 없다며 농담을 한다!) 난 크게 상관없다. 출근 무렵 태엽을 감으며 오늘 하루도 일분일초를 밀도 높게 보내겠다고 다짐하게 되니 말이다. 시계 착용자를 더 근면 성실하고 계획적인 사람으로 투영하는 것. 이것만으로도 내 바쉐론 콘스탄틴은 충분하다. (VK)
- 포토그래퍼
- 강혜원
- 에디터
- 손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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