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 서울이 만날 때, 루이 비통 2023 프리폴 컬렉션
서울에서 패션쇼가 열린다면, 쇼장으로는 어디가 좋을까요?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이화여대를 선택했고, 2015년 서울을 방문한 샤넬과 칼 라거펠트는 DDP를 선택했습니다. 지난 29일, 브랜드 최초의 피지컬 프리폴 쇼를 선보인 루이 비통과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선택은 잠수교였죠. 루이 비통과 서울의 만남을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습니다.
잠수교
‘서울 패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DDP, 한국적 정취를 잔뜩 머금고 있는 서울의 고궁을 놔두고 제스키에르는 왜 하필 잠수교를 선택했을까요? 제스키에르는 사실 한강에 특별한 애착이 있습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한강을 배경으로 한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기 때문이죠. 그는 또한 강남과 강북을 이어주는 다리이자 밤에는 화려한 조명과 함께 ‘분수 쇼’가 벌어지고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는 공간인 잠수교의 변화무쌍함에 매료된 것으로 보였는데요. 컬렉션의 쇼 노트에서 여행용 트렁크 브랜드로 시작한 루이 비통 역시 잠수교처럼 주위 환경에 맞춰 변화를 거듭하고, 조화를 이뤄왔음을 강조했죠. 그의 설명처럼 ‘비가 올 때면 모습을 잠시 감췄다가, 비가 잦아들면 모습을 다시 드러내는 신비로운 장소’인 잠수교는 루이 비통의 쇼를 선보이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한국, 그리고 서울
루이 비통 최초의 프리폴 쇼이자 하우스가 한국에서 선보이는 최초의 쇼였던 만큼, 제스키에르는 지금의 한국을 대표하는 연출가이자 <오징어 게임>을 만든 황동혁 감독에게 쇼 기획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황동혁 감독은 한국적인 요소를 쇼 곳곳에 현명하게 녹여냈죠. 런웨이 베뉴로 변한 잠수교를 뒤덮은 것은 태극기를 연상시키는 파란빛의 조명이었고, 쇼 시작을 알린 것은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힘찬 가락이었습니다. 쇼 오프닝을 담당한 정호연은 산울림의 ‘아니 벌써’에 맞춰 발걸음을 이어갔고, 이후로도 펄 시스터즈의 ‘첫사랑’,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가 배경음악으로 흘렀습니다.
본업으로 돌아가 런웨이에 선 정호연을 제외하고도, 이날의 잠수교는 연말 시상식을 방불케 했는데요.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절친’으로 알려진 배두나, 루이 비통 앰배서더인 뉴진스의 혜인, 태연, 르세라핌의 멤버 전원, 세븐틴의 민규 등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들이 모두 루이 비통의 쇼를 두 눈으로 담기 위해 한강의 강풍을 기꺼이 감내했습니다.
끝나지 않은 ‘프렌치 스타일’에 대한 탐구
불과 몇 달 전 열린 2023 F/W 컬렉션에서 “프렌치 스타일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 제스키에르. 파리에서 9,000km 가까이 떨어진 서울로 무대를 옮겼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파리에 머물러 있는 듯했습니다. 2013년 11월, 마크 제이콥스의 뒤를 이어 루이 비통의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된 이래 그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은 과장된 실루엣, 가죽 제품의 변주를 변함없이 선보였기 때문이죠. 그가 소개한 룩들이 매우 ‘파리지엔’스러웠음은 물론입니다. 쇼 노트에서 루이 비통 하우스의 근간이 ‘여행’에 있음을 분명히 밝힌 만큼, ‘서울을 방문한 프랑스 여인’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은 어쩌면 그에게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몇몇 룩은 제스키에르가 루이 비통을 이끌던 초창기 컬렉션을 연상시키기도 했는데요. 이번 컬렉션에서 볼 수 있었던 허리춤에 얇은 벨트를 두르는 스타일링, 밝은 컬러의 레더 재킷과 스커트, 그리고 슬림한 실루엣의 보디수트 모두 그가 루이 비통에서 선보인 첫 세 번의 컬렉션에도 등장한 바 있죠. 2016년 그가 탄생시킨 ‘아틀란티스 백’ 역시 조금은 새로운 모습으로 런웨이에 등장했습니다.
정부가 ‘한국 방문의 해’로 선포한 2023년과 2024년. 루이 비통은 그 부름에 응답했고, 이번 달 16일에는 경복궁을 배경으로 구찌가 2024 크루즈 컬렉션을 선보입니다. 루이 비통과 구찌의 뒤를 이을 브랜드는 어디일지, 기대감을 갖고 지켜봐도 좋겠네요.
- 사진
- Courtesy of Louis Vui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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