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 융비르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오스트리아의 80대 여성 작가, 마르타 융비르트에게 캔버스는 일상에서 마주친 영감과 자신만의 시선으로 해석한 세상을 표현해내는 일기장과 같다. 그녀의 생생한 자아가 고스란히 투영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마르타 융비르트의 국내 첫 개인전 <염소 눈 마주하기>가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6월 10일까지 열린다.
<염소 눈 마주하기>의 주요 작품은 고야의 19세기 초 작품 ‘정어리의 매장(The Burial of the Sardine)’을 기반으로 합니다. 고야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시기와 계기가 궁금합니다. 지난 2021년 10월에 스위스 바젤의 파운데이션 바이엘러(Fondation Beyeler)에서 열린 고야의 대규모 전시회 카탈로그를 보고 고야를 분석하기 시작했어요. 고야는 전쟁과 그로 인한 아픔과 한을 주로 그렸는데, 그것이 현시대에 우리가 겪는 정치적 상황이나 팬데믹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비슷한 문제가 똑같이 반복되는 것에도 흥미를 느꼈고요. 그래서 고야의 작품 ‘옷을 벗은 마야’와 ‘옷을 입은 마야’부터 분석해나갔습니다.
이번 전시 제목을 듣고 포털 사이트에 ‘염소 눈’을 검색해봤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눈의 형태가 아니라, 검은 눈동자가 일직선으로 된 형태가 조금 기괴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일단 염소라는 소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야의 작품 속에 염소, 특히 염소의 배가 악한 것에 대한 은유로 등장하기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언젠가 라디오 다큐멘터리에서 염소는 독특한 눈 모양으로 인해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요. 저 또한 그림을 그릴 때 실제 그대로 그리지 않고 늘 다른 시각으로 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저와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님의 회화에는 뚜렷한 자아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작가님은 “나의 예술은 일기나 지진계와 같다. 이것이 내가 작업하는 방식이다. 나는 전적으로 나 자신과 관련이 있다. 드로잉과 회화는 나를 관통하는 움직임”이라고 말한 적도 있죠. 같은 것을 보거나 경험해도 마주하는 그날그날의 감정이나 느낌이 다 달라요. 그것들이 그림으로 차곡차곡 기록되기 때문에 일기와 같다고 표현했어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림을 통해서 관람객이 제 삶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거죠. 일상에서 접하는 사적 만남, 여행, 정치적 사건뿐 아니라 그리스 신화에 영감을 받은 경우도 있고, 최근에는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이번 전시에서 고야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품을 다룬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여행을 영감으로 활용하는 것과 관련해, 작가님은 ‘Malfluchten(그림으로 도피)’을 떠나 세계를 누비며 수채화 작품을 작업한다고 들었습니다. ‘Malfluchten’이라는 단어는 직접 만든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오래전에 남편과 함께 여행을 아주 자주 다녔는데요. 1990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그 슬픔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림으로 도피’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점부터 저의 여행 기록이나 감정을 수채화로 작업하는 횟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여백 또한 작가님의 작품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느 작품이나 여백이 자리하지만, 그 여백의 비중은 작품마다 각기 다른 것 같습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요? 저에게 여백은 무척 중요합니다. 제 작업의 핵심은 ‘이 그림을 통해 내가 쏟은 에너지를 관람객이 읽어낼 수 있는가’에 있어요. 그래서 관람객이 제 에너지를 읽어낼 수 있는 한에서 작업을 멈추기 때문에 작품마다 여백의 비중에 차이가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에너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서의 제 운동성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예요. 또한 제가 작품을 지진계에 비유하는 이유도, 그려나갈 때의 에너지가 얼마만큼 어디에 있었는가를 작품을 통해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죠.
작가님의 작품에는 손가락 자국이나 긁힌 자국, 신발 자국 등 신체를 이용한 획이 얼룩처럼 자리하는데요. 일단 얼룩은 치밀하게 계획해서 그리는 게 아니에요. 제가 작품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하며 일부러 멋지게 고치거나 하지 않고 생겨난 그대로 내버려둡니다. 저는 우연을 중시하기 때문에, 당연히 모티브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긴 하지만 그 과정까지 계산하지는 않아요.
작가님의 팔레트에는 붉은 컬러와 그를 변주한 컬러가 주를 이루는데요. 2021년 파리에서 연 개인전 인터뷰에서 팔레트를 확장하려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에 전시한 작업에서도 그런 시도가 이어졌을까요? 이번 전시에서는 노란색으로 확장을 시도했습니다. 익숙하고 선호하는 것을 계속하다 보면 사람은 어느새 그 반대를 원하게 되죠. 어느 순간 빨간색과 대조되는 다른 컬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후 팔레트를 지속적으로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내 그림은 나 자신에게, 순간에, 유연한 손, 예리한 눈, 훌륭한 발놀림, 통제되지 않는 부유에, 시간과 먹는 것의 단위에, 행복의 순간에 속한다. 이는 구속력이 있는 언어가 아니고, 트로글로디테(즉 동굴에 살던 사람)가 도로에 나왔을 때 충돌이 없도록 하기 위한 교통신호도, 기호도 아니다.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으며, 그 이면에 찾아볼 수 있는 관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반사신경으로 인해, 팔다리의 익숙한 움직임이 적절한 순간에 정지했다. 자주 하던 관행이 진정되고, 우연한 사건을 유도하며, 지체 없이 이를 감지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요소로 사용한다. – 내 안의 유인원
1988년에 쓴 선언문 <내 안의 유인원(Der Affe in mir)>은 어떤 계기로 쓰게 됐나요? 영국의 동물 행동학자이자 초현실주의 화가 데즈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가 원숭이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한 실험에서 영감을 받아 쓰게 됐어요. 원숭이가 어떤 깊은 사고나 계산 없이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렸을 때 나온 작품이 무척 흥미로웠거든요. 인간이 분발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웃음).
요즘 최대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계속 그리는 것.
60여 년 동안 꾸준히 예술을 이어가신 원동력이 있을까요? 편안하고 즐겁게 작업하고 전시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여러 갤러리 덕분에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는 것 같아요. 한국의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는 이 순간에도 엄청난 기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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