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브랜드의 디렉터를 맡게 될 알레산드로 미켈레?
작년 11월, 구찌를 떠난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곧 돌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럭셔리 하우스의 수장으로서가 아니라, 완전히 잊혔던 브랜드를 되살릴 ‘의사’로서 말이죠.
발망과 발렌티노의 회장인 라시드 모하메드 라시드(Rachid Mohamed Rachid)의 투자사, 비다야트(Bidayat)가 최근 ‘월터 알비니(Walter Albini)’의 부활을 공식적으로 알렸습니다. 그들의 발표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월터 알비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직을 맡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죠.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월터 알비니다’라고 밝힌 바 있거든요. 아직까지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비다야트 측 모두 관련 질문에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월터 알비니, 무척 생소한 이름입니다. 하지만 그가 활동했던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그는 분명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습니다. 크리지아(Krizia)를 포함한 다양한 패션 하우스의 디자이너를 거친 후 1973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창립한 알비니를 당시 <WWD>가 이브 생 로랑에 비유할 정도였으니까요. 1983년, 42세였던 그가 에이즈로 사망한 뒤 월터 알비니라는 이름은 서서히 잊혔지만, 그는 패션계에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겼습니다.
밀라노가 파리에 버금가는 ‘패션 수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알비니의 덕택입니다. 이탈리아 최초의 패션쇼는 1951년, 피렌체 피티 궁전의 ‘하얀 방’에서 열렸는데요. 그 후로도 대부분의 디자이너들과 꾸뛰리에들이 피렌체에서 쇼를 선보이며, 피렌체는 이탈리아 최고의 패션 도시로 거듭납니다. 1971년, 알비니의 주도하에 미쏘니, 크리지아 그리고 켄 스콧(Ken Scott)이 밀라노에서 쇼를 선보이기 전까지는 말이죠.
알비니가 1971년 밀라노에서 선보인 쇼는 이탈리아 최초의 ‘프레타 포르테’ 쇼이기도 했는데요. 드레스, 셔츠, 코트는 물론 주얼리까지 선보인 그는 제품 디자인은 전부 자신이 직접 담당하되, 제작은 전문성을 지닌 여러 업체와 공장에 맡겼습니다. 2013년, 그를 기억하기 위해 밀라노에서 전시를 기획한 보노토(Bonotto) 재단이 그에게 ‘아틀리에를 떠나 공장으로 들어간 디자이너’라는 수식을 붙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쇼가 끝난 뒤, 리테일러들은 그의 쇼에 등장한 제품들을 구매한 뒤 이를 ‘컬렉션’으로서 판매했습니다. 지금은 브랜드와 소비자 모두 익숙한, ‘브랜드는 패션쇼를 통해 컬렉션을 선보이고 소비자는 리테일러를 통해 컬렉션 제품을 구매한다’는 프레타 포르테(기성복) 컬렉션의 틀을 처음으로 제시한 거죠. 디자인 작업에만 관여한다는 점에서, 전설적인 패션 저널리스트 안나 피아지(Anna Piaggi)는 그를 위해 ‘스타일리스트’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알비니 역시 사망 직전 “패션은 죽었고,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타일링이다”라는 말을 남겼고요.
어떤 면에서는 디스코 트렌드를 선도한 미국의 홀스턴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짧지만 강렬한 전성기를 누렸고, 화려한 ‘나이트라이프’를 즐겼으며 40대에 에이즈로 사망했다는 점까지, 알비니와 홀스턴이 그린 삶의 궤적은 꽤 비슷하죠. 디자인적 측면에서도 둘의 유사성은 이어집니다. 알비니는 푸아레와 가브리엘 샤넬, 그리고 1920년대의 화려한 할리우드에서 영감을 받았고, 홀스턴 역시 1920년대와 1930년대의 미니멀리즘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완성했기 때문이죠. 홀스턴이 넷플릭스 시리즈 <Halston>을 통해 기억되고 있듯, 알비니의 유산 역시 ‘월터 알비니’의 부활로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겠죠.
땅속 깊이 묻혀 잠들어 있던 브랜드들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은 꾸준히 시도되어왔습니다. 1968년, 브랜드 전개가 중단된 발렌시아가는 29년이 지난 1997년에서야 니콜라 제스키에르를 선임하며 완벽히 부활할 수 있었고, 최근에는 스키아파렐리 역시 다니엘 로즈베리의 주도하에 메이저 패션 하우스로 거듭났습니다. 다만 2015년, 신세계가 폴 푸아레를 인수하며 영입한 디자이너 이칭 인(Yiqing Yin)은 두 번의 컬렉션만 선보인 뒤 떠나갔고, 소니아 리키엘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 역시 계속해서 무산되는 등 ‘죽은 하우스 되살리기’의 실패 사례 또한 분명 존재합니다. 돌아온 월터 알비니가 발렌시아가의 길을 따를지, 소니아 리키엘의 길을 따를지 아무도 모르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모두가 월터 알비니와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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