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주얼리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주얼리

2023.05.06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주얼리

행운을 부르는 부적과 아름답고 쓸모 있는 장신구에서 바라만 봐도 좋은 예술품이 되기까지, 바라는 대로 향유할 수 있는 주얼리다목적 세계.

Octopus Ring, 2022, Silver 925, 32×27mm.

극적인 빛과 그림자가 드리워진 세상에 홀연히 존재하는 반짝이는 은빛 얼굴들. 주얼리 형태로 구속된 신화와 종교 속 인물들이 어우러진 이정현 작가의 영성 세계가 갤러리 스페이스55를 빛내고 있었다(이정현의 개인전 <The Art of Grasping(영혼을 붙잡는 기술)>은 4월 30일까지 열린다). 신화와 종교에 대한 개인적 상념을 담아 완성한 주얼리 오브제 17점을 구비된 돋보기를 통해 가만히 들여다보자 일상에서 쉽게 쥐여지지 않던 평화와 감수성이 밀려든다. 실제로 착용할 수 있는 장신구지만 내가 차고 있는 목걸이, 팔찌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먼 과거의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나를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겠다. 액세서리로 얼버무려 칭하기도 하는 주얼리는 과거에는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며 손때를 탔을 테니까.

고대의 긴 시간 동안 주얼리는 나쁜 기운을 쫓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주술적 역할을 담당했다. 중세 시대로 넘어오면서는 계급사회를 반영하는 사회적 지표가 되었고,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사람들은 주얼리를 하나의 공예품으로 바라보고 열망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아르누보 시대에 공예품을 예술품으로 격상시키자고 주창하는 미술 공예 운동이 벌어지며 지금의 주얼리 디자이너와 같은 위대한 세공업자들이 하나둘 등장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르네 랄리크(René Lalique)다. 여성의 흉상과 잠자리를 결합한 형상으로, 금, 크리소프레이즈(녹색 칼세도니), 월장석, 에나멜 유리로 만든 그의 대표작 ‘Dragonfly Woman Corsage Ornament’(1897~1898)처럼 랄리크는 식물, 새, 곤충 등과 같은 자연 소재에 신비로운 이야기를 버무려 섬세한 오브제를 탄생시켰다. 보석 세공사와 유리공예가로 활약한 르네 랄리크의 작품은 형형색색 준보석의 매력을 알리며 보석 디자인의 지평을 넓히는 역할을 했다. 아르누보 시대를 지나 패션부터 라이프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일관되게 화려하고 정갈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1920~1930년대의 아르데코 시대에는 르네 랄리크의 작품처럼 기하학 패턴과 강렬한 색채, 이국적인 디자인의 장신구가 더욱 주목받았다.

Skull Ring, 2022, Silver 925, 30×20mm.

사치품이 아니라 철학이나 사연이 깃든 ‘가치품’으로 사랑받을 때 주얼리는 영감을 자극하는 예술품으로 인정받는다. 이때 주얼리 디자이너 역시 기술자에서 작품에 의미를 투영시키는 예술가로 진화한다. 지난해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최상위 경매인 ‘매그니피슨트 주얼스(Magnificent Jewels)’에서 까르띠에, 해리 윈스턴, 반클리프 아펠과 함께 뜨거운 주목을 받은 주얼리는 ‘JAR’이라 불리는 미국 주얼리 디자이너 조엘 아서 로젠탈(Joel Arthur Rosenthal)의 작품이었다. 화가가 되기를 꿈꾸던 로젠탈은 티타늄을 하이 주얼리에 사용한 최초의 디자이너이자 금속을 검게 산화시킨 유색석을 활용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유려한 곡선, 회화적인 색 조합, 과감하고 도전적인 커팅과 세팅이 돋보이는 예술적인 작업으로, 2013년 그는 생존 작가로서는 최초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회고전을 열기도 했다. 주얼리가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인도 출신의 주얼리 아티스트 비렌 바갓(Viren Bhagat) 역시 동시대 주얼리 시장에서 컬렉터들을 매혹하는 또 하나의 이름이다. 그는 16~17세기 이슬람과 힌두 문화가 혼재된 무굴 제국 시대의 건축과 미술에서 영감을 받아 천연 보석으로 디자인한 고풍스러운 주얼리를 선보인다. 홍콩 출신의 월리스 찬(Wallace Chan)은 20년간 미술 조각가로 활동하다 유럽 여행 중 카빙 기술을 배우며 본격적으로 주얼리 공예에 입문했다. 월리스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매그니피상스(Magnifissance)> 인터뷰에서 작업에 대한 다소 영적인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다. “종교적 수행을 하듯 작업에 몰두합니다. 주얼리가 우리를 기쁘게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스톤 하나하나에 애정을 담아 작업하죠. 다양한 감정을 끌어안고 나아가야 합니다. 기쁨과 환희뿐 아니라 고통과 가슴 아픈 체험까지 포용하지 못하면 지혜의 길로 나아갈 수 없으니까요.” 그런 마음 때문일까. 정교하게 세팅된 월리스의 작품을 바라보면 끝없는 생명력이 감돈다. 생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창작 활동에 몰두하던 고흐와 고야, 에곤 실레처럼 오랜 연마와 수련을 통해 완성되는 주얼리 아티스트의 작품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온전한 예술로 사랑받게 된 것이다.

Jesus Pendant, 2020, Silver 925, 53×33mm.

인간의 크고 작은 역할이 기계에 흔쾌히 맡겨지는 세상에서 보석을 고르고, 깎고, 배열하는 지난한 과정을 버티도록 만드는 것은 작가 개인의 이야기다. 결국 그것만이 오래오래 살아남는다. 스페이스55에 자기만의 이야기를 들여놓은 이정현 작가는 오랜 시간 가죽으로 조각과 공예품을 만들어오다가 지금은 ‘에이프 오브젝트(Ape Object)’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통해 밀랍 조각과 정밀 주조 기법을 활용해 만든 금속 주얼리를 선보이고 있다. “신화 속 인물이나 불상의 머리를 형상화한 펜던트의 뒷면은 해골과 뇌, 뼈의 절단면을 생생히 품고 있어요. 상반된 이미지에는 모든 것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모든 상징은 하나의 의미로만 해석되지 않아요. 개인의 삶과 맞닿으며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기도 하죠.” 중요한 것은 이야기다. 그것이 소장 가치를 높인다. “앞으로도 소장하고 감상할 수 있는 주얼리를 만들고 싶어요. 액세서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피부에 올려질 오브제 혹은 작은 조각품이라고 생각하며 작업하죠. 공예와 조각의 경계가 점점 더 희미하게 느껴져요.” 합정동에 자리한 이정현의 작업실은 고행자의 수련 공간으로 봐도 무방했다. 좁은 책상 위에서 그녀가 미세한 바늘로 재료를 고심해서 만지작거리며 수행하는 겹겹의 시간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그렇게 주얼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아트 피스가 되어간다.

“주얼리를 만드는 대표적인 방식은 금속 세공, 왁스 카빙, 3D 제작, 이 세 가지예요. 그중 왁스 카빙은 6400년 전부터 작은 동상이나 사물을 제작하는 데 활용한 정밀 주조(Lost Wax Casting) 기법에서 파생된 조각 기법이죠. 부드러운 왁스로 모형을 만들고 그 위에 액체 석고를 부어 완성하기 때문에 단단한 재료에서 시작하는 금속 세공으로는 도달하기 힘든 섬세한 표현이 가능해요. 훨씬 생동감 있고, 왠지 모르게 ‘따뜻한’ 느낌도 들죠.” 해골이나 뼈의 형상을 한 이정현의 주얼리는 서브컬처에 대한 그녀의 애정과도 맞닿아 있다. “반응이 두렵기도 했어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내가 만든 주얼리를 착용할까?’ 궁금하기도 했죠. 아직까지는 해외 서브컬처를 사랑하는 사람들, 착용보다 관람의 목적으로 구매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이 보내주는 응원의 메시지에서 많은 용기를 얻어요.”

Jesus Pendant, 2020, Silver 925, 53×33mm.

이정현의 말처럼 누군가 착용할 때 새로운 의미와 맥락이 생긴다는 점도 다른 예술품과 다른 주얼리만의 매력이다. 골수암을 극복한 사람이 대퇴골 팔찌를 소장하기 위해, 페미니스트가 메두사 목걸이를 스스로에게 선물하기 위해, 어느 커플이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는 의미로 기묘한 형태의 커플 링을 맞추기 위해 이정현의 주얼리를 찾는다. 그녀 역시 한 해를 마무리할 때마다 두개골 오브제를 만드는 자기만의 의식을 치른다. “오브제 하나를 조각하는 데 보통 한 달 이상이 걸려요. 평생 만들 수 있는 작품의 개수가 한정적이라는 뜻이죠. 매년 작업을 하며 인생의 유한함을 상기하고 있어요.” 이정현은 신기술의 범람 속에서 느릿느릿 완성된 수공예 작품이 사랑받는 것을 볼 때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세밀하게 꿴 동시대 주얼리 아티스트의 바람과 신념은 출근길에 무의식적으로 신체에 주얼리를 착용하는 우리가 다시금 주얼리를 감상하고, 한 번 더 만지작거리게 만든다. 오래전 과거의 사람들이 보석을 쓰다듬으며 소망을 되뇌고, 자그마한 귀고리 한 짝을 예술품으로 감상하고 사랑한 것처럼. (VK)

    김아름
    사진
    Courtesy Of Junghyu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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