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 위트, 예술을 환영하는 사진가 강혜원의 집
전통적이면서도 예측 불가의 이미지를 구현해온 사진가 강혜원. 그녀의 집은 색과 위트, 예술을 환영한다.
여기 오기 전부터 “외국에 있는 집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림 때문인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벽에 액자 거는 것에 여전히 소극적인데, 외국에선 빈 곳이 보이지 않게 액자를 꽉 채우는 집도 많다. 또 벽지를 사용하지 않고 페인트로 벽을 마감한 것, 가구를 벽 쪽에 붙여서 배치하지 않은 것, 컬러풀한 가구와 소품을 과감하게 쓴 것도 특징이다. 대부분의 아파트는 거실 벽의 전기 배선 때문에 한쪽에는 TV, 맞은편에는 소파를 배치하는데 동선을 위해 소파 뒤를 살짝 띄우기만 해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사진가인데, 벽에 사진보다 그림이 훨씬 많다.
집에서는 사진보다 그림을 보는 것이 편하고 재미있다. 창작자로서 재미를 느끼는 작품은 복도에 걸린 백남준 그림이다. 일종의 콘티 같은 스케치인데, 매너리즘에 빠질 때 보면 좋은 자극이 된다. 시안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구도를 그리고, 좋아하는 그림이나 색감 예쁜 것을 오려 붙이던 시절을 떠올려주기 때문이다. 그 외에 돌아가시기 전 사진으로 아카이빙 작업을 해드리며 알게 된 이성자 선생님의 그림, 거실과 안방에 걸린 홍정희 작가의 그림,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데미안 허스트의 그림과 내가 찍은 사진 한 점, 대학 시절 친구가 찍은 사진, 포스터 등이 다양하게 걸려 있다.
공간에 따라 그림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
특별한 기준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질감이나 색감을 가진 작품에 더 끌리는 것 같다. 가족실에 건 이성자 선생님의 그림은 카메라로 촬영해 필름으로 하드카피를 만들고, 일일이 스캔하면서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직접 했다. 그런 과정에서 작품 대부분을 눈에 익혔는데, 그중 색감이 과감한 작품을 현대화랑을 통해 들였다. 홍정희 작가는 쨍한 핑크와 오렌지 컬러를 주로 쓰고 모래처럼 거친 질감을 살려 그림을 그린다. 그 자체로 기분 좋고 예쁘다. 명도와 채도가 비슷한 컬러는 서로 어울리기 어려운데 핑크와 오렌지의 조합은 예외라 촬영할 때도 자주 적용한다. 비슷한 그림을 그린 적 있는 어빙 펜의 작품도 매우 좋아한다. 대체로 모던하고 색감이 강렬한 그림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림 외에도 집 안의 색채가 다양하다. 컬러풀한 가구나 소품을 좋아하는 편인가?
한 가지 스타일만 고집하진 않는다. 유행하던 북유럽 스타일로 꾸민 적도 있고 에스닉 크래프트에 꽂혀 거친 질감의 가구로 채운 적도 있다. 그러다 집에 그림을 들이고 거기에 어울리는 가구를 매치하면서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다. 특히 데미안 허스트의 ‘Spots’을 거실에 걸면서 가구 배치나 소품 분위기가 확 달라졌고, 이후 홍정희 작가의 작품 등을 더하면서 지금의 컬러풀한 인테리어가 완성됐다.
거의 직접 꾸몄다고 들었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침실, 딸의 방, 긴 복도와 가족실을 지나 거실, 부엌과 다이닝 룸에 이르기까지 집이 가로로 긴 구조인데, 복도 양쪽으로 펼쳐지는 전체적인 뷰가 조화로웠으면 했다. 오랫동안 모아온 사진집과 아트 북도 각 공간에 적절히 배치했다. 책을 분류할 때 작가군으로도 나누고, 사진과 페인팅, 혹은 페인팅 중에서도 스틸라이프, 이런 식으로 나름의 규칙을 적용했다. 혹시 책이 없어지면 바로 알아챌 수 있다(웃음). 여기에 약간 트위스트를 준다. 잔 그루버(Jan Groover)라는 사진가의 작품을 정말 좋아하는데, 큰 오브제 두 개 사이에 비정상적으로 작은 강아지 미니어처가 놓인 사진, 지나가는 자동차나 거리 풍경을 세 컷으로 나누어 찍은 사진 등 원근감을 무시해서 묘한 긴장감을 일으키는 사진이 흥미롭다. 나는 촬영할 때는 물론이고 인테리어에서도 이런 트위스트와 위트를 주려 한다. 이성자 선생님의 그림 아래 우주인 형상의 세라믹 오브제를 놓거나, 동물적인 송치 소재와 크롬 가구를 매치하는 것처럼, ‘예상외의 지점이 한번 나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늘 염두에 둔다.
Tip
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 우리 집이 좁은지, 가로로 긴 구조의 집인지, 가족이 몇 명이고 공유할 공간은 어디인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 생활 패턴을 파악하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인 다음 동선을 정하고 가구를 고르는 식으로 생각을 옮겨가야 한다. 반전의 묘미를 적극 활용할 것. 우리 집 거실에는 화이트 소파와 어울리는 베르너 팬톤의 쉘 펜던트를 달려다가 너무 뻔할 거 같아서 팻보이의 플라스틱 샹들리에를 설치했다. 그 외에도 소파를 창가에 배치하거나, 캐비닛이나 소파 같은 큰 가구를 흔한 뉴트럴이나 블랙보다는 컬러풀하게 시도하는 등 예상을 깨는 스타일링만으로도 재미있는 인테리어를 연출할 수 있다.
레퍼런스로 삼은 공간이 있나? 혹은 집이나 스튜디오 외에 좋아하는 공간은?
아무래도 해외에서 오래 살았고, 해외 촬영이나 여행도 많이 했으니 그런 것들이 레퍼런스가 됐지만 한 군데만 떠올리기는 어렵다. 머릿속에 예측 불가가 너무 많아서(웃음). 지난해 <보그> 커버 걸이었던 진 캠벨을 찍기 위해 빌린 공간도 좋았는데, 집 안에 눈부시게 햇빛이 쏟아지는 선큰이 있고 거친 풀 사이로 흰 의자가 아름답게 놓여 있었다. 한국에서는 도예가 신상호 선생님의 집! 넓은 정원을 사이에 두고 작은 건물을 여러 채 지어서 주거 공간과 작업실, 갤러리 등으로 사용하는데 매우 현대적인 부엌에 화덕이 있고, 게스트 룸 전체를 도자기로 마감했다. 커다란 테이블에는 다양한 형태의 의자를 믹스 매치했다. 내가 바라는 트위스트와 위트가 그렇게까지 집약된 공간을 본 적이 없어서 기억에 오래 남았다.
의외성을 강조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편안한 집이다. 이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여유가 생기면 페치카가 있는 거실 안쪽에 자리 잡는다. 앉아서 TV 보는 가족의 뒷모습을 보면서 다른 할 일을 한다. 우리 가족은 ‘따로 또 같이’라고 얘기한다. 약간의 가구 배치로 거실을 분리함으로써 함께하는 동시에 적당히 거리를 둘 수 있다.
촬영이 없을 때는 집에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
최근엔 스튜디오에서 밤샘 작업을 하는 게 싫어서 방 하나를 작업실로 만들고 주로 거기서 일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 외에는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보고 반성한다(웃음). 처음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것까지 따지면 이 일을 30년째 해오는데, 여전히 세상에는 멋진 사진이 너무 많다! 그걸 찾아보며 어떤 이에게는 질투심을, 어떤 이에게는 경외심을 느끼고,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 촬영하게 될 배우나 아이돌을 공부하기도 한다. 사진가 중에 내가 아이돌을 가장 많이 알 거라고 자부한다(웃음). 늘 촬영할 사람을 이해하고 알기 위해 남는 시간에는 그들의 유튜브를 본다.
집은 어떤 의미인가?
가족이 모이는 곳. 다른 것보다 유학 중인 우리 딸이 좋아하고, 돌아오고 싶은 집이었으면 좋겠다. 우리 부부는 아주 개인적이라 각자의 공간에 흩어져서 일하기 바쁘지만 만나면 또 잘 섞인다. 내가 리터칭 작업을 할 때면 딸이 라운지 체어에 앉아 숙제를 펼치곤 하는 게 참 좋다. 누구든 집이 불편해서 무언가를 못하는 경우가 없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렇게 개인적인데도 서로 방문을 닫는 일이 거의 없다(웃음). 심지어 딸아이는 방문을 열고 잘 정도다. 나에게 집은 그런 곳이다. VL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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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민화
- 컨트리뷰팅 에디터
- 양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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