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남의 그림에선 옷이 말을 한다
홍은남의 그림에서는 옷이 모든 이야기를 담는다.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우연히 홍은남의 유화 작품 하나를 처음 접했다. 빈방에 두 명의 여성이 서 있는 그림이었는데 그 두 여성은 주름 바지 안에 폴로 셔츠를 넣어 입었다. 한쪽 여성은 올 블랙, 다른 쪽 여성은 올 화이트 차림이고, 거기에 편안한 가죽 펌프스를 매치했다. 머리 색은 거의 흰색에 가까운 금발이다. 피부도 하얗지만 정확히 피부 톤의 하얀색을 말하는 게 아니다. 대리석 조각상 같은 흰색이다. 캔버스 혹은 종이와 같은 흰색이다. 여성들의 모습은 놀랍도록 스타일리시하지만 신비롭다. 이 그림을 마주하자마자 나는 인물들에게서 느껴지는 친숙하면서도 낯선 감정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 이들을 만들어낸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현실을 반영한 허구의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정말 좋아했어요.” 어느 날 아침, 홍은남 작가는 집이자 작업실로 사용하는 파크 슬로프 아파트에서 나에게 말했다. “미국계 아시아 여성 캐릭터를 참고했어요.” 우리는 그녀의 침실에 앉아 있었다. 뉴욕의 루보브(Lubov) 갤러리에서 열리는 그녀의 첫 개인전에 전시할 아홉 점의 유화가 벽과 바닥에 놓여 있었다.
모국인 한국의 패션 잡지와 광고 캠페인 아트 디렉터 출신인 홍 작가는 서울예술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어릴 때 정말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부모님이 싫어하셨죠.” 홍 작가는 이렇게 회상한다. “저 스스로도 미대에 진학할 용기가 없었어요. 미술을 전공하면 졸업 후에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두려움이 있었죠.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 질문이었어요. 그래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죠.” 졸업 후 그녀는 작은 에이전시 소속으로 일하면서 전 세계를 여행했고 에드워드 에닌풀을 비롯한 패션계 유명 인사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다. “20대의 모든 시간을 일하면서 보냈어요.”
2006년 그녀는 화가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뉴욕으로 이주했다. “상사는 제가 너무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했다는 점을 이해해주셨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고 1년간 안식년을 주셨죠.” 홍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어요. 그냥 마음대로 예술을 탐구하고 싶었고 그래서 여러 전시를 찾아다녔어요.” 홍 작가는 그렇게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구상화를 그리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어요.” 특히 엘리자베스 페이튼(Elizabeth Peyton)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과감했어요. 그녀의 그림 주제는 정말 매력적이었죠.” 그녀가 하루하루 보고 느끼고 겪는 일이 다음 여정을 위한 길이 되어주었다. 그러다 ‘한 미국인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녀는 늘 그림을 그렸지만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이렇다 할 성과를 아직 이루지 못한 상태였다. “이전에 제 작품은 지금과 많이 달랐어요.” 홍 작가는 설명한다. “코리안 뷰티에 너무 사로잡혀 있었어요.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미를 위한 사람들의 행동, 그들의 성형에 대한 집착… 그런 것에 관심이 있었죠.” 항상 심혈을 기울여 작업했지만 작품에 완전히 만족하지는 못했다고 홍 작가는 말한다.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으면서, 바깥 세상과 소통하지 못한 채로 이 안에서만 지냈어요.” 그녀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 “충분히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었지만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할 무렵에는 다른 부모와 비교하며 스스로를 가치 없다고 느끼는 저를 발견했어요.” 아들의 유치원에 유명한 화가 부모가 있다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작품 활동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그것으로 돈을 벌지는 못해 사람들이 밖에서 저와 남편을 볼 때 매우 전통적인 부부로 여길 거라 생각했어요. 말하자면 그냥 ‘주부’였던 거죠. 페미니스트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제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로베르 브레송(Robert Bresson)의 1959년 영화 <소매치기>와 이상의 단편소설 <날개>에서 영향을 받아 홍 작가는 자신의 현실, 즉 ‘나이, 성별, 지위, 일, 관계 등의 외적 구성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에 대한 개념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날개>는 한국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읽은 책”이라고 설명한 그녀는 인터뷰를 마친 후 <날개>의 발췌 구절을 나에게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그대의 작품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에 의하여 차라리 경편하고 고매하리다.”
“정말 아름다운 것에 집착했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생각했죠. ‘내 그림 안에서 더 강력한 도구로 나를 사용할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에요.” 그녀는 덧붙였다. “늘 미란다 줄라이(Miranda July) 같은 예술가를 존경해왔는데 그녀가 자신의 책과 영화에서 캐릭터를 창조하는 방식에 감탄했죠.” 그래서 홍 작가는 자신의 사진을 찍어 작품에 사용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에서 금발의 가발을 쓴 여성에게서 영감을 받아 금발 가발을 쓴 자신의 모습을 찍어 작품에 활용했다. “아트 디렉터로 일했던 경험이 있고 카메라 뒤에 있는 것을 좋아하기에 제가 잘하는 그런 일을 하는 셈이죠.” 또 이렇게 덧붙인다. “처음에는 이런 작업에 대한 의심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 같아요.” 아울러 거울을 볼 때는 그 모습이 바로 자신이라고 여기지만, 카메라로 찍힌 사진에서는 다른 이미지, 다른 버전의 자신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이 찍히는 그 찰나의 순간에 나 자신에게서 다른 사람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찾는 것이 전혀 지루하지 않아요.”
그녀가 만들어낸 그림 속 인물들은 일종의 자전적 자화상이다. 외로움, 후회 같은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으며 배경이 되는 아파트 방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도 그 인물들의 서사를 확장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주요 스토리텔링 수단은 바로 옷이다. “모든 저의 그림에서 옷은 인생의 기념품과도 같아서 주변의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어요.” 우리가 만난 날, 그녀의 스타일은 자신의 시그니처인 금발 가발을 쓰지 않은 여성 인물이 등장하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인 ‘Jean Jacket’의 여성과 가장 흡사했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은 자화상이나 향수에 관한 것이 아니다.
작품 ‘점심시간’에는 1970~1980년대 직장 여성이 즐겨 입던 스커트와 셔츠를 입은 다섯 명의 여성이, 커피가 담긴 작은 종이컵, 샌드위치를 들고 앉거나 서 있는 모습이 캔버스를 가득 채운다. 공장 휴게실의 한 장면을 아파트 내부로 옮긴 것이다. “자신의 공간에서 끊임없이 일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제 공간에서 무기력한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아시아 음식을 많이 갈구했어요.”
한편 ‘화이트칼라’에서는 두 명의 여성이 침대에 모로 누워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이 두 여성은 둘 다 벨트를 맨 강청색(Steel Blue) 캔버스 바지 속에 단추가 달린 흰색 셔츠를 넣어 입은 모습이다. “농부였던 제 아버지는 필사적으로 화이트칼라가 되고 싶어 하셨어요. 결국 은행원이 되셨죠.” 그녀는 뒤이어 말한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신분 상승을 이루셨어요. 우리 자식들에게도 그것을 강요하셨고요. 공부 열심히 해서 눈에 보이는 그런 일을 하기를 바라셨죠. 여러 면에서 아버지는 매우 현실적인 분이셨고, 틀린 말은 아니었어요. 저 또한 그런 현실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태도가 남아 있죠.” (VK)
- 글
- Laia Garcia - Furt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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