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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싱글 맨’과 ‘아메리칸 싸이코’가 탄생시킨 피부과

2023.06.08

영화 ‘싱글 맨’과 ‘아메리칸 싸이코’가 탄생시킨 피부과

피부과란 아름다움을 다루는 공간이다. 그 목적을 향해 영화 <싱글 맨>과 <아메리칸 싸이코>에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고유피부과가 한남동에 문을 열었다.

여러 피부과를 다녀봤지만 인테리어를 눈여겨본 적은 거의 없었다. 공간 디자인이 기억에 남는 곳도 물론 없다. 고급 다이닝과 빌라가 줄지어 늘어선 한남동, ‘이런 곳에 클리닉이 있다고?’ 싶은 곳에 피부과가 들어섰다. 비포 애프터 사진으로 휘감은 요란한 간판이나 레이저, 필러 브랜드 광고 포스터도 없다. 잘 매만진 검은 돌을 비현실적으로 키운 것 같은 볼륨감의 데스크와 흰 바탕에 검은 획이 강렬한 이배 작가의 그림, 크림색의 포근한 체어가 이질감 없이 어울리는 공간은 흡사 고급 리조트의 로비에 온 것처럼 편안하면서도 우아하다. 피부과 전문의 오영준 원장의 고유피부과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병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개인의 서재나 갤러리를 방문한 기분이다.
고유피부과는 일반적인 피부과와 조금 다른 시술을 한다. 전체적인 노화의 상태를 정밀한 진단 장비로 분석해 근본 원인을 교정하는 ‘프라이빗 항노화 센터’를 표방한다. 노화의 사인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눈밑 지방 돌출부를 교정하는 눈밑 지방 교정술, 얼굴 아랫부분과 턱밑의 늘어짐을 교정하는 윤곽 교정술, 필러 대신 콜라겐 복원을 이용하는 안면 볼륨 복원술, 전체적인 근육의 움직임과 인상을 분석해 맞춤 시술하는 인상 윤곽 보톡스 시술과 다양한 항노화 레이저, 피부에 직접 영양 성분과 성장인자 등을 주입하는 스킨 부스팅 시술을 주로 다룬다. 같은 시술이라도 환자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노화 사인에 맞춤으로 시술을 진행하고 장기적인 항노화 플랜을 제안하는 병원의 특성상 프라이빗하고 편안한 공간을 마련했다.

단순히 프라이빗하고 편안한 공간을 넘어 어떤 컨셉으로 공간을 구성했는가?
대부분의 병원이 순백색 일색이거나, 인테리어 할 당시의 트렌드를 그대로 반영해 유행이 지나면 고루한 공간이 되는 것을 많이 봐왔다. 피부과 자체가 아름다움을 다루는 공간이고, 그 공간을 바라보는 의사의 시각이나 미적 기준이 투영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또 환자 입장에서도 많이 생각했는데, 병원이란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불편한 공간이기에 더 편안한 감정선을 만들 수 있고 시선을 어디에 두어도 불쾌감이 들지 않게 하고 싶었다. 정서적인 부분까지 터치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더할 나위 없었다.

인테리어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디자인과 절제의 밸런스. 아무리 디자인이 수려하더라도 결국 이 공간의 본래 용도는 병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환자들이 안정감을 느끼고 미학적 요소를 느끼되 그 부분이 너무 과해 보이지 않도록 신경 썼다. 아트 피스도 필요한 것만 최소한 배치했고. 디자인과 공사 진행 과정을 쭉 봐왔지만, 완성된 후의 공간을 처음 접했을 때는 벅찬 행복감마저 들었다.

복도를 따라 룸이 쭉 이어지는데, 각 공간별로 설명한다면?
주문 제작한 리셉션 데스크와 데이베드, 라운지 체어 등이 놓인 로비와 진료실을 지나면 복도를 따라 파우더 룸과 수술실, 레이저 시술실, 케어 룸 등이 배치돼 있다. 공간을 일렬로 배치해 불필요한 시선에 노출되는 것을 차단하고 복도와 케어 룸에도 소파와 라운지 체어를 두어 시술받는 동안에도 편안하고 안락하게 배려했다.

이런 취향을 풀어내려면 인테리어 디자이너 선정도 중요했을 것 같다.
인테리어는 호스팅하우스가 담당했는데, 장호석 대표와 아주 오래전부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병원을 개원하면 어디서도 보지 못한 병원을 만들자는 얘기를 해왔다. 호스팅하우스는 병원 인테리어 경험이 없었지만, 여타 병원과 다르기를 원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공간 디렉팅을 의뢰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물론 병원이 다른 상업 공간에 비해 여러 법규나 동선 등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아 힘들었지만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 공간이 나왔다. 공간의 영감이 된 곳은 어디인가. 영화 <싱글 맨>, <아메리칸 싸이코>의 배경과 아만 호텔의 공간. 정제되고 우디한 인테리어 디자인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1980~1990년대 감성이 섞인 느낌을 좋아한다. 이런 느낌의 공간과 디자인 요소가 묻어 있는 작품이나 공간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이다.

그 외에 실제 머물면서 애착이 생겼다거나, 기억에 남는 곳은?
전통과 현대적인 요소가 조화를 이루는 양태오 디자이너의 한옥, 청송재와 능소헌은 방문할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아름답다. 병원에 놓인 가구 대부분도 양태오 디자이너의 브랜드 이스턴에디션 제품이다. 코로나 이후 처음 방문한 베를린 신국립미술관도 인상 깊었다.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곳인데, 단순한 구조와 비율인데도 보는 것만으로 크게 설렜다.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은 공간은 물론이고 모든 면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이배 작가의 그림이나 진료실에 놓인 달항아리 등을 단순히 취향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평소 아트 컬렉팅에도 관심이 많은 편인가?
친구들의 작품을 조금씩 사기 시작했는데, 평소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단색화나 한국, 일본의 고미술품, 달항아리 같은 것들을 많이 찾아봤다. 소장 중인 이배 선생님의 작품은 개원하면 꼭 벽에 걸고 싶었다. 다행히 공간과 조화롭게 어울렸다. 진료실 한쪽, 내 시선이 제일 많이 머무는 곳엔 김동준 작가의 달항아리를 놓았다. 병원에 있는 작품은 환자들이 보고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수술과 시술, 진료 중간에 스스로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부여하는 역할도 크다.

앞서 피부과란 의사의 미적 기준을 투영할 수도 있는 공간이라는 말이 와닿는다.
사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병이 있다(웃음). 사람의 얼굴을 다루는 나의 업, 예술, 공간, 가구, 음식 등 여러 분야에 걸친 것 같다. 장인 정신을 가지고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디자인을 볼 때 감동을 많이 받는다.

앞으로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하나?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흔히 클래식이라고 말하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가치가 상승하고 원숙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 병원을 처음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다. 이 공간을 방문하는 환자들 모두 시간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는 고유한 아름다움을 지니도록 돕는 것이 바람이다. VL

    피처 디렉터
    김나랑
    포토그래퍼
    윤미연
    컨트리뷰팅 에디터
    양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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