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고 서는, 여자들의 몸에 관하여
열정적 삶의 증표인 팔,
아름다운 몸매의 기준이 되는 다리.
누구나 공감할 우리 여자들의 몸에 얽힌 이야기.
ARMS
슬픔이 우리 삶에 밀어닥치면,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기도 한다. 꿈처럼 기대하지 않은 선물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 20년 넘게 함께 지내온 파트너와의 결별 이후, 응모해놓고 까맣게 잊고 있던 에든버러 외곽에 자리한 15세기 성에서의 ‘한 달 살기’ 초청권이 내게 날아들었다. 장난기 많은 이 우주가 나름의 방식으로 보상해주는 듯했다. 나의 세상은 더 이상 그다지 견고하지 않았지만, 나를 위로해줄 ‘성’이 생긴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팔’에 집착했다. 팔은 우리를 지탱해주지는 못하지만 그 외의 다른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신체 일부다. 나는 나무 책상과 초록빛 이불 위에서 시간을 보내며 두 팔을 애틋하게 생각하고, 그것이 잡고 있고 해방시켜주는 것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아마도 처음으로 공간과 시간, 설거지를 하는 다른 누군가만 빼고 아무것도 없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사색하며 숲을 내다보았다. 에어컨이 소리 내며 돌아가고, 창문에 물방울이 맺힐 때, 나는 하루 종일 책상에 들러붙어 앉아 한 달 만에 책 한 권을 써 내려갔다.
나는 매일 ‘푸시업’을 하면서, 내가 쓴 단어 수와 더불어 동작의 횟수도 기록했다. 2주 만에 팔의 군살이 빠져 가늘어지면서 탄탄한 근육질로 바뀌어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내 방 복도 안쪽에 자리한 오래된 욕조에 몸을 담근 채, 램프 불빛 아래서 그 팔을 뜯어보며 감탄했다.
그곳에서 함께 지내던 사람들이 나를 놀렸다. 그 영국인들은 푸시업을 ‘프레스 업’이라 불렀고, 건강에 집착하는 것을 두고 굉장히 ‘미국적’이라고 말했다. 나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나는 드라이 셰리주와 위스키를 마실 때는 보조를 맞추고 있다고 짚어 말했다.
성에 머물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은 내게 팔에 대해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가진 것을 비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얼마 전 팔 전용 ‘스팽스(Spanx)’에 대해 알게 됐고 매우 흥미로워했다. 군살을 타이트하게 조이는 크롭트 톱 형태의 속옷을 입노라면 누구나 모델처럼 늘씬하고 가느다란 팔을 가질 수 있다. “팔이 다리와 같은 위상을 갖는 건가요?” 저널리스트인 루이자(Louisa)는 골똘히 생각하며 말했다.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팔은 단지 거기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다리와 달리, 팔은 심지어 평소 에로틱한 집착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레그맨(Legman, 여성의 각선미에 매력을 느끼는 남자)’은 있지만, ‘암맨(Armman)’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반바지나 스커트 사이로 비치는 맨다리가 유혹적이라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팔은 ‘건강’을 의미한다. 여성의 팔을 보여주는 패션은 힘의 증거가 된다. 그리하여 우리가 나이 들수록 문화로 인해 7부 길이 소매로 유도되는 것은 신성을 거스르는 일처럼 보인다. 아이에게 장난감을 정리 정돈하라고 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다.
“팔을 생각하면, 마돈나나 미셸 오바마 또는 제니퍼 애니스톤처럼 열심히 운동하는 여성이 떠올라요.” 루이자가 말했다. “여성들은 강하고 건강해 보이기 위해 팔 운동에 열정을 쏟고, 이는 다른 방식으로 섹시하죠.” 미니스커트도 매우 다용도로 쓰일 수 있지만, 맨팔은 켄달 제너가 캘빈클라인 광고에서 입은 것처럼 흰색 탱크 톱을 통해 돋보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 팔이 지금처럼 튼튼해졌는지 궁금했다. 그 답이 될 만한 때가 인생에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16년 전, 내가 초보 엄마일 때였다. 내 아들은 팔에 안겨 있는 것을 좋아했고, 나도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내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나도 안긴 채 다니고 싶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이의 머리와 내 머리가 아주 가까이 있는 자세여서, 우리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 아이는 그때도 내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팔로 들어 올려 내 골반에 올리고, 내 팔뚝으로 그의 등을 감싼 채 일상을 헤쳐나갔다. 그 아이가 커가자 역기 무게를 서서히 늘려가는 것 같았다. 봄날 놀이터에서 나는 티셔츠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 올려 팔뚝에 따뜻한 햇살을 쪼였다. 나이 든 사람들이 뭔가를 나르고 싶어 한다면, 나는 그 일에 딱 맞는 인물이었다. 내 몸은 아들과 이 세상을 감당할 만큼 강했다.
또 한 번은 내가 열아홉 살 때였다. 몇 주 동안 나는 자원봉사 농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스위스 숲에서 관목을 베었다. 하루에 몇 시간씩 하는 톱질로 내 팔은 뻐근했고, 가시나무에 긁힌 상처로 뒤덮였다. 점심시간에 10여 명 남짓 되는 우리 젊은 봉사자들은 들판에 널브러져 근처 농장에서 가져온 치즈와 바게트, 대충 자른 초콜릿을 먹었다. 먹어본 최고의 음식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하면서 팔이 아파 죽겠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어느 날 저녁, 스위스에서 나는 강해진 팔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사르데냐 출신의 멋진 만화가를 감싸 안았다. 우리는 함께 산책에 나섰고, 팔짱을 꽉 낀 채 비를 맞다 결국 발을 헛디뎌 뒹굴고 말았다. 진흙을 뒤집어쓴 채 숙소에 돌아왔고, 우리 모습을 보며 함께 지내던 다른 친구들은 매우 즐거워했다.
내 몸에는 이제 10대 시절의 탄력이나 아들이 아이였을 때의 초인적인 힘은 없다. 하지만 성에 마련된 작은 방에서 내 팔은 다시 강해졌다. 새 아파트에 가구를 들여놓을 수 있을 정도로, 190cm가 넘는 장성한 아들을 안아줄 정도로 충분히 강해진 팔로 뉴욕에 돌아왔다. 이번 시즌에는 민소매 드레스를 입고, 친구의 아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려주고, 저녁 파티와 추도식 피로연을 준비하기 위해 식료품을 들고 계단을 오르는 데 내 팔을 사용할 것이다. 우리의 팔은 특별하다. 우리가 해온 일을 증명해주고, 아름다운 근육과 탄탄함으로 무장한다. 우리가 앞날을 위해 어느 정도 준비되었는지 증명하는 부위이기도 하다.
아다 칼훈(Ada Calhoun) <보그 US> 컨트리뷰팅 에디터
LEGS
무난한 성정으로 살아온 3n년, 땅을 지탱하고 선 두 다리는 무던하게 넘어갈 수 없는 나의 최대 고민거리였다.
어린 시절부터 유독 발달한 골반과 통통한 허벅지는 오랜 콤플렉스였고, 소녀시대가 붐을 일으켰던 색색의 스키니 진을 너도나도 입던 대학교 1학년, 나만 꾸준히 어두운색 하의를 고집했다. 과외비를 모아 부모님 몰래 당시 유행하던 쁘띠 시술을 몇 번 받아보기도 했고, 경락, 종아리 보톡스, 수영, 하체 위주로 체지방을 줄이는 PT, 심지어 일자 다리를 만들어준다는 걸 그룹의 걸음걸이를 한동안 따라 하다 무리가 온 발목에 물리치료를 받은 흑역사도 있다. 다채롭기도 다채로운 수년간의 노력은 그때마다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기는 했으나, 그리 크게 만족스러웠던 기억은 없다.
로에베, 미우미우의 마이크로 미니스커트와 쇼츠의 유행, 허벅지에 착 달라붙는 스키니 진까지 귀환 조짐을 보이는 요즘, 한동안 잠잠하던 콤플렉스에 다시 발동이 걸렸다. 올 초 부쩍 불어난 군살이 몇 달 동안 빠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무엇이라도 해야 되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렇게 이번 취재를 위해, 그리고 나만의 목적 달성을 위해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체형 교정 클리닉, 더스키니의원을 방문했다. 세심한 상담과 분석, 과도한 약물 처방이나 ‘상술’로 시술을 강요하지 않는 곳으로 수소문 끝에 찾은 병원이었다.
“골반이 상당히 넓은 체형이군요.” 검은색 브라 톱과 하의 속옷만 입은 채 인체 비례도처럼 자세를 취하고 찍은 내 사진을 모니터에 띄워놓으며 의사는 말했다. 그는 나의 몸 가운데 도드라지는 특징이 무엇인지 스스로 분석해보라며 먼저 질문을 건넸다. 분석은 고사하고 나는 모니터에 차마 시선을 둘 수조차 없었다. 매일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목격하지만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내 몸을, 그것도 처음 보는 남과 함께 골몰히 들여다보는 건 처음이었다. 발가벗겨진 기분이었지만 마음을 다잡은 후 화면을 봤다. 그러자 어깨부터 허벅지까지, 점차 넓어지는 삼각형을 그리며 떨어지는 내 보디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노력하면 얼마든지 살은 뺄 수 있지만, 골반 특성상 다리가 아주 가늘어질 수는 없는 체형이에요.” 김진서 대표 원장의 말에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애초 가질 수 없었던 것이기에 그렇게 집착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어린 시절 만난 의사와 트레이너, 모두가 희망만 불어넣을 뿐 그 누구도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준 적은 없었다. 멍하니 앉아 있는 내게 그는 덧붙였다. “중요한 건 허벅지 사이즈보다 모양입니다.”
통념적으로 하체는 골반부터 발목까지 아래로 갈수록 매끄럽게 가늘어지는 형태가 미용적으로 가장 아름답게 여겨진다. 적당한 굵기는 건강해 보이고 오히려 매력 요소로 작용하지만 문제는 부종으로 인한 셀룰라이트, 그리고 운동 부족이 만든 출렁거리는 군살이다. 특히 지방 관련 시술을 여러 차례 받은 후 요요 현상을 반복적으로 겪었거나, 미숙한 흡입 수술로 상처를 입은 지방조직이 유착되며 울퉁불퉁한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핵심적인 부위만 국소적으로 골라 사이즈를 줄이면서 라인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술로 지방 분해 주사가 있다. 내가 병원에서 추천받은 방법은 ‘원 포인트 주사’. 지방 대사를 극대화하는 성분의 배합물로, 특수 장비를 활용해 지방층에 빠르게, 대량의 용액을 주입한다. 그리하여 1~2주 동안 이 용액이 그 부위의 지방을 분해해 소변으로 배출하는 원리다. 나는 허벅지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도록 사타구니와 가까운 안쪽, 뒤쪽 ‘승마살’ 그리고 무릎 위에 주사를 맞았다. 고통을 상쇄시켜주는 지압 링을 꾹 쥐자 부드러운 피부 곳곳에 바늘이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본격 시술이 시작되자 약물이 들어가는 듯한 뻐근함에 얼굴과 두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지방 분해 용액이 들어간 부위가 도톰하게 부풀어 올랐지만, 2~3시간 후 부기는 거의 사라져 일상에 아무 지장이 없었다. 시술을 마친 의사의 말이 나를 자극했다. “이렇게 라인을 잡아주면서 딱 10년 전 몸무게로 돌아가봅시다.”
라인을 어느 정도 잡았다면 그다음 단계는 매끈한 다리의 방해 요소인 셀룰라이트를 제거하는 것이다. 2018년 국제 여성 피부 학회지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여성의 90%가 셀룰라이트를 갖고 있다. 원인은 유전부터 호르몬까지 너무도 다양해 명확히 짚을 수 없다. 다만 정체는 엉덩이, 허벅지의 지방조직이 피부를 기저 근육과 연결하는, ‘중격(Septae)’이라 불리는 조직의 섬유질을 통과할 때 유발되는 피부의 울퉁불퉁한 형태라는 것이다. 최근 이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술은 ‘리소닉(Resonic)’. ‘RAP(Rapid Acoustic Pulse)’라는 이름의 문신과 셀룰라이트를 제거하는 신기술을 탑재한 시술로 최근 FDA의 승인을 마쳤다. 초고주파 음파를 사용해, 세 번 만으로 레이저 시술 10회의 효과를 내는 데다 피부를 손상시키지 않고 경직되고 섬유화된 조직을 파괴한다. 조각한 듯 근육질의 늘씬한 다리를 가진 톱 모델 나오미 캠벨은 평소 림프 배액 마사지를 통해 셀룰라이트를 관리한다. 패션쇼 당일 아침, 그녀는 특수 제작한 나무 도구를 사용해 근막을 이완시키는 기술인 ‘마데로테라피(Maderotherapy)’로 허벅지부터 정강이까지 마사지한다. “제가 빵 반죽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어떤 덩어리도, 굴곡도, 셀룰라이트도 다 없어지도록 마사지를 통해 몸을 조각하는 거죠.” 그녀는 <보그>에 변함없이 탄탄한 각선미의 비결을 공개했다.
‘팔’을 다룬 내용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성의 맨다리는 오랫동안 섹시함의 증표였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선 줄리아 로버츠의 미끈한 다리가 남자 주인공 리차드 기어의 감정 치료를 위한 수단이 되고, 폴란드 브로츠와프 대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남녀가 평균보다 5~10% 긴 다리를 선호한다. 전통적인 유교 문화로 섹스어필과 관련된 우리 말이 상당히 빈곤함에도 불구하고, 유독 다리를 지칭하는 ‘각선미’만큼은 지금까지도 대중적으로 활용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리를 아름답게 가꾸고자 했던 노력은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 결국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는 과거 관념에 나조차 동조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은 아니었다고 지금도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시술 후 일주일이 지난 지금, 단번에 사이즈가 줄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평소보다 허벅지의 부기가 해소되고 걸음은 좀 더 가벼워졌다. 거울 속 내 몸을 볼 땐 시선을 회피하기보다는 구석구석 살피게 된다. 쇼츠를 입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안 드는 구석만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도 성형수술이나 몸매 교정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뉴욕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성형외과 전문의 대런 스미스(Darren Smith)는 내 마음의 소리 같은 말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당신에게 기쁨을 가져준다면, 기꺼이 못할 것도 없죠.”
송가혜 <보그> 뷰티 에디터 (VK)
- 에디터
- 송가혜
- 일러스트레이터
- Stina Persson
추천기사
-
웰니스
못생겼지만 매력 만점인 ‘슈퍼푸드’의 정체
2024.10.26by 윤혜선, Philipp Wehsack
-
웰니스
매일 딱 두 알! 우리가 브라질너트를 먹어야 하는 이유
2024.10.05by 김초롱, Alessandra Signorelli
-
웰니스
엄정화의 부기 관리 팁, ‘독소 배출 3.3.3 루틴’
2024.10.08by 오기쁨
-
웰니스
연결의 힘 보여줄 룰루레몬의 ‘Together We Grow’ 캠페인
2024.09.10by 황혜원
-
웰니스
장 건강을 챙기는 간단한 아침 습관 3
2024.10.15by 오기쁨
-
웰니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피로 해소 야채!
2024.10.19by 김초롱, Ana Morales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