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뮤즈, 아만다 할레치가 보여준 진정한 럭셔리 트립
누구보다 칼 라거펠트와 오래 함께해온 진정한 샤넬의 뮤즈, 아만다 할레치. 그가 말을 타고 숲에서 잠드는 진정한 ‘럭셔리’를 이야기한다.
나는 정신이 멍해지면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구름에 가려 야산의 형체가 흐릿하고 세번강이 슬기롭게 흐르는 잉글랜드 슈롭셔의 집을 떠나면 종종 방황하게 된다. 그 땅의 느낌(톡 쏘는 듯하고, 짭짤하고, 매우 건조함)에 의식이 열리고 블루 실크처럼 쭉 뻗은 하늘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 가족이 스페인에서 소유했던 농가는 알리칸테와 발렌시아 사이 산악 지대 아래 터를 잡고 있었다. 무어인(아프리카 북서부에 살았던 이슬람 종족으로 8세기에 스페인을 점령했음)식 억양의 알바르다네라라는 이름을 가진 이곳은 동쪽으로 솟은 모양이 낙타의 몸체 같다. 그곳에서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무화과 향으로 가득한 뜰 너머의 신비로운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야 했다. 우리는 산에서 흐르는 물을 레몬, 포도 덩굴, 복숭아나무와 아몬드나무 숲에 대며, 차가운 농수로에서 바다의 소금기를 씻어냈다.
어린 꼬마였던 나는 자유롭고 야성적이었고, 거미줄과 가시나무로 뒤엉킨 사향초가 무성한 길을 따라다녔다. 계단처럼 쌓아놓은 돌 더미 아래에서 울리는 염소의 방울 소리, 뾰족한 이슬람 모스크 첨탑에서 들려오는 기도 소리, 농장 관리자가 아몬드나무 아래 멍석을 펴고 추수할 때 대나무 막대기로 만들어내는 리드미컬한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밤하늘을 장식한 별들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웠다. 나는 1981년 이후 스페인을 떠났지만, 영혼의 땅으로 돌아가는 순례길에 올랐다. 그 추억을 되새기고 싶다.
저물녘 세비야에 도착했고, 반짝거리는 관상용 첨탑 사이에서 적을 향해 언월도를 휘두르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를 칼새들이 내지르고 있었다. 재스민 향으로 가득한 밤이었다. 내가 참가할 조지 스콧(George Scott)의 사파리 여행이 그렇게 시작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다음 날 안달루시아의 인적 드문 숲속으로 떠나는 여정을 위한 출발 시간은 오후 4시였다. 점점 커지는 매미 울음소리와 더불어 아지랑이가 일렁였고 광장에 주차된 미니버스를 찾아 나설 시간이 되었다. 나의 사파리 여행에는 일행 셋이 더 있었다. 두 명은 카우보이 모자를 쓴 텍사스에서 온 우아한 사람들이었고, 한 명은 프랑스계 아일랜드인 변호사였다. 이들 모두 노련한 사파리 라이더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만 초보 사파리 라이더라는 게 걱정됐다. 하지만 나중에 이 모든 것을 떨쳐버리는 법을 배웠다.
티타임을 가질 시간쯤 우리 일행은 트라시에라에 도착했다. 많은 지인이 예배당이 딸린 이 17세기 농가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얘기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자 그곳의 심오한 매력이 황홀하기까지 했다. 조지의 어머니 샬롯 스콧(Charlotte Scott)은 스페인에서 꿈꿀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집을 만들어왔다. 공손한 후안(Juan)이 우리를 각자의 침실로 안내해주었다. 그 집은 매미 울음소리와 새소리만 빼면 고요함 그 자체였다. 태양이 장미와 하얀 등나무 정원 너머에 자리한 울창한 숲이 구릉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스페인에는 오래전부터 의례적인 면이 있었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스페인의 소박함 또는 청빈함이 그곳의 고귀한 면모인 것이다. 집에서 구운 둘세(스페인의 단맛 나는 간식)를 곁들인 차는 유행에 뒤처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마시는 시간은 굉장히 격식 있으면서도 사람을 무장 해제시킨다. 도자기 접시 옆에 접어놓은 아주레(Ajourée) 자수의 리넨 냅킨에 담긴 세심한 배려, 부엌에서 구운 작은 케이크, 식탁을 차린 보이지 않는 손길이 그렇다.
황홀한 축제의 이런 마법이 조지의 사파리 여행 곳곳에 나타났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시원하며, 푸른빛이 감도는 수영장에서 즐기다 보니 어느새 저녁 식사를 위해 옷을 차려입을 시간이었다. 저녁 식사에서는 애피타이저로, 차갑게 식힌 사란다(Zaranda) 레드 와인과 헤레즈(Jerez) 와인을 곁들인 타파스가 나왔다. 우린 덩굴과 등나무 그늘 아래에서 왕처럼 식사를 즐겼다. 그날 밤 아주 달콤하게 잤다.
조지 스콧은 노련했다. 그의 사파리 여행은 매 순간이 열정적이고 시적이었다. 그리고 대단히 철저하고 면밀히 조직되었다. 그래서 여정의 순간순간이 끊기지 않고 물 흐르듯 연결되었다. 스텝 사이 빈틈이 느껴지지 않는 춤 같았다. 나는 그 여정과 물아일체가 됐다.
아침 식사는 여유로웠다. 복숭아와 야생화로 꾸민 식탁에 커피가 적당히 나왔고, 그날 여정에 앞서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도록 달걀 프라이와 토스트가 제공되었다. 아직 각자 탈 말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낯선 사람을 말과 짝지우는 것은 말 조련사이자 마법사에게 주어진 재능이었다. 실제로 조지는 두 가지 역할을 다 잘해냈다. 저녁 식사를 하는 모습을 주의 깊게 지켜본 걸까? 그가 우리의 잠재적 장점, 몰래 품은 의구심을 예측한 걸까? 말은 두려움과 도피의 경계에 있는 동물이다. 그들은 ‘해야만 한다’ 또는 ‘해야 한다’는 21세기식 명령법에 방해받지 않고 깊은 감정적 수준에서 의사소통을 한다. 그들은 또한 치유자들이다. 말 테라피는 정신적 외상 환자, 거식증 환자, 중독자에게 변형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매우 민감하다. 등에 앉은 파리 한 마리를 감지하고 떨쳐내려 한다. 그러니 그들은 우리가 안장에 앉는 순간 상황에 따라 바뀌는 우리의 기분과 급속한 스트레스를 당연히 읽어낼 것이다.
내가 탈 말의 이름은 타란토(Taranto)였다. 경계하는 눈빛을 지닌 매력적인 히스파노-아랍 품종의 말이었다. 조지가 그 말을 소개할 때, 나는 최대한 덜 신경 쓰려고 애썼다. “조금 껑충거리기는 하겠지만 정말 좋은 말입니다.” 조지가 말했다. “오케이.” 나는 안장에 앉아 밝은색 털로 엮은 고삐를 잡으며 다른 말에 너무 가까이 붙지 않도록 노력했다. 평소처럼 모든 것을 다시 짚어가며 생각했고,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의미를 부여했다. 다행히 조지가 말과 하나가 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늦봄까지 핀 꽃을 가로지르고, 가파른 돌길을 오르고, 다시 들장미와 협죽도가 빼곡한 길을 내려오며 5시간 넘게 말타기에 오롯이 빠져들었다. 우리 일행은 오래된 가축로를 따라 이동했고, 털가시나무, 밤나무,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달릴 때면 모험을 찾아 떠나는 기사가 됐다. 야생 염소, 흡사 불타버린 전사들 같은 장대한 코르크나무도 우리를 반겼다. 햇빛을 받으며 커브를 도니, 나무 아래 차려진 식탁이 눈에 들어왔다. 밝은색 식탁보가 깔린 식탁에는 렌틸콩 수프, 멜론, 최고급 하몽 이베리코가 풍성하게 차려져 있었다. 나는 멈춰 서서 말이 그늘에서 풀을 뜯게 하고 손을 씻으러 갔다. 항아리에 담긴 신선한 물에 손을 대니 피곤함이 사라지는 듯했다. 우리는 점심 식사 후, 타탄 무늬 러그 위에 누워 기지개를 켜며 달콤한 시에스타(낮잠)를 즐겼다.
사파리 여행의 다음 여정은 세비야의 시에라 모레나 자연 공원(Parque Natural Sierra Morena de Sevilla)이다. 그곳에 깊숙이 들어가 장엄한 우에스나르강(Ribera del Huéznar)을 건너 가파른 언덕 끝까지 올랐다. 그 아래 펼쳐진 전경은 또 다른 차원이다. 태곳적 올리브나무 숲과 완만한 언덕으로 둘러싸인 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말은 다른 데로 끌려갔고, 우리는 금박 입힌 19세기 벨벳 소파와 암체어에 털썩 주저앉았다. 너무나 간절했던 샤워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왔다(내 수준에서는 물이 어떻게 옮겨졌는지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작은 구멍이 있는 코르크 샤워 헤드로 깨끗한 물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저 멀리 푸른 산 위로 넘어가는 희미한 연보라색 해를 바라보며 캠프장 위쪽 구역에서, 조지와 그가 꾸린 팀과 함께 건배를 했다. 맹렬히 타오르는 불이 저녁 식사의 시작을 알렸다. 야생화로 장식한 원형 테이블과 촛불이 기다리고 있었다. 불길 위에서 미소 지으며 아주 멋지게 요리하는 셰프도 함께.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당연히 나는 늦잠을 잤다. 럭셔리는 별게 아니었다. 가장 편안한 침대, 널찍한 텐트와 드레스 룸, 섬세한 우드 블록 패턴과 횃불처럼 가장 순수한 차원에서의 필수품이 럭셔리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엉이와 늑대, 여우와 함께 야생에서 자는 것이야말로 궁극의 사치였다. 그것은 스페인식 삶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조지는 영국인이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더 스페인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옆에는 항상 기타가 있었고, 최근 길들인 밤나무색 말을 굉장히 우아하게 탔다. 웃으면서 야생 자두도 주웠다.
마지막 여정에서 우리는 적갈색 가축로를 거쳐 장대한 코르크나무 숲을 관통했다. 왠지 말이 자신이 향하는 곳을 이미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곳은 바로 우리의 목적지 타라모나(Taramona), 즉 조지의 집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곳을 우연히 마법처럼 구입했다. 정말이지 내가 본 가장 낭만적인 16세기 농가였다. 절반은 폐허나 다름없었지만 내겐 스페인의 옛 영광을 고스란히 품은 유적지였다. 그곳에서 한여름의 꿈 같은 날을 보냈다. 나는 물웅덩이(우리가 수영하는 동안 말도 물을 마시러 왔다)로 뛰어든 후, 새하얀 면 시트가 깔린 침대 방에서 쉬었다. 에스트레마두라의 황야 쪽으로 설치된 창문을 열자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저물녘, 양초 수백 개가 켜지고 거대한 돌로 된 오븐 앞에 애피타이저가 냄새를 풍겼다. 선반을 모두 야생화로 꼰 밧줄로 장식했다. 벽 위에는 십자가상이 걸려 있었다. 이곳의 고요함, 지리적 고립이 아름다웠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곳은 폐허에 가까웠다. 거대한 올리브유 항아리가 부서진 벽돌에 반쯤 박혀 있고, 담황색 장미로 둘러싸인 발코니가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름다웠다. 스페인 자수가 섬세하게 놓인 하얀 리넨 위로 음식을 차례로 놓았다. 접시마다 꽃 한 송이도 함께했다. 우리 중 누구도 내일이 오는 것을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이 여정이 끝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이곳에서 받은 선물은 스페인에서 수백 년 넘게 지속되어온 삶의 활기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말 위가 아니라 말과 함께해서 얻는 선물이었다. 말과 나는 함께 춤추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사랑의 의미로 허공에 손짓했다. 고마워요, 모두. VL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포토그래퍼
- Adrian Morris
- 글
- Amanda, Lady Harl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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