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지상 낙원, 사진가 부부 이네즈와 비누드의 햄프턴 집
목공 예술가 심렐 아헨바흐, 인테리어 디자이너 대니얼 색스, 조경 디자이너 에드위나 본 갈까지. 마에스트로의 손길을 빌려 완성한 사진가 부부 이네즈와 비누드의 드림 하우스가 햄프턴에 비밀스럽게 안착했다.
미국 <보그>와 <바자>의 편집장을 지낸 전설적인 스타일 아이콘 다이애나 브릴랜드(Diana Vreeland)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눈이 항상 움직여야 한다.” 예술적인 패션 포토그래퍼 이네즈 반 램스위어드(Inez van Lamsweerde)와 비누드 마타딘(Vinoodh Matadin)이야말로 아름다운 영감을 찾아 누구보다 바삐 눈을 움직이는 사람들일 것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이 커플은 커리어를 쌓는 과정에서 초현실주의와 판타지를 환상적으로 결합한 예술과 상업의 복잡한 파드되(Pas de deux, 두 사람이 함께 추는 발레 동작)를 추구해왔다. 우아한 취향과 기묘한 우연에 기반해 그들만의 미적 세계를 갈고닦아온 것이다. 그리고 말로 형용하기 힘든 이들의 미감은 그 어떤 사진 작품보다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워터밀(Water Mill)이라는 작고 아기자기한 마을에 안착한 부부의 매혹적인 전원주택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소장 중인 귀중한 예술품으로 가득한 이 집에서 반 램스위어드와 마타딘의 타고난 색채 감각과 공간 디자인 능력, 사물을 대하는 개성적 접근 방식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집의 외관과 정원은 두 사진가가 오랫동안 세상을 누비며 축적한 다양한 레퍼런스의 모음집과 같다. 저택으로 향하는 입구에 설계된 비밀스러운 대나무 숲은 스페인 공연 예술단 라 푸라 델스 바우스(La Fura dels Baus)가 로마의 카라칼라 욕장(Baths of Caracalla)에서 선보인 <나비 부인>의 무대 디자인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이 아늑한 정원을 에워싼 벽을 따라 줄지어 선 홍자색 꽃이 듬성듬성 핀 배롱나무는 건축가 가브리엘 게브레키안(Gabriel Guévrékian)이 프랑스 해안 도시 예르(Hyères)의 빌라 노아유(Villa Noailles)에 설계한 핑크색 바닥이 돋보이는 입체파 정원(Cubist Garden)을 떠올리게 만든다. 최근 위층에 증축한 층고 높은 침실 역시 부부가 즐겨 찾던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Turks and Caicos)의 코모 패럿 케이(Como Parrot Cay) 호텔과 닮아 있다. 집을 이루는 모든 구조와 배치에 이렇듯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 담겼다. “이 집은 하나의 정물화에서 쉴 새 없이 피어나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우린 아름다운 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계속 가구와 소품을 이리저리 옮기고, 온갖 색채와 사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조합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죠.” 반 램스위어드가 부부의 지칠 줄 모르는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와 시대, 역사, 지역을 초월한 예술성을 추구하는 그들의 습성을 이야기했다. “이 집에서 아주 특별한 장면을 연출할 때의 희열은 사진을 찍으며 베스트 컷을 만들어낼 때 느끼는 즐거움과 비슷해요.” 그녀가 덧붙였다.
부부의 예술적 탐구를 위한 새로운 캔버스가 되어준 이 집은 1960년대에 지은 것으로 이후 여러 번 개조와 증축 과정을 견뎌왔다. 반 램스위어드와 마타딘이 군더더기 없는 바우하우스 구조와 작은 연못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에 반해 이 집을 구입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 집은 그저 평범한 1층짜리 건물에 불과했다. 부부는 <AD> 2011년 10월호에 ‘뉴욕 시티 로프트(New York City Loft)’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집을(이 집은 여전히 핀터레스트에서 훌륭한 인테리어 아이디어로 끊임없이 조명된다) 레퍼런스로 삼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그들이 그동안 함께 일했던 마에스트로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건축 및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디사이언스랩(Desciencelab)을 이끄는 목공 디자이너 심렐 아헨바흐(Simrel Achenbach)와 색스 린도어스(Sachs Lindores)의 디자이너 대니얼 색스(Daniel Sachs)가 그렇게 모였다. 이들은 재건축 과정은 물론 가구와 소품, 직물의 선택과 배치에 대해 부부에게 훌륭한 조언을 건넸다.
“그 로프트는 좋은 시작점이 되어주었어요. 목재를 어디에 얼마나 적용할지, 크고 넓은 공간에 어떻게 아늑한 분위기를 불어넣을지 등 우리의 상상을 구체화하는 많은 팁을 얻었죠.” 이번에는 마타딘이 이야기했다. “우리가 이 집을 샀을 때 아들 찰스(Charles)는고작 일곱 살이었어요. 그런 찰스가 ‘심렐에게 도움을 청해보세요. 그리고 집은 검은색으로 칠하는 게 좋겠어요’라고 말했고, 우리 부부는 실제로 그렇게 했죠.” 아헨바흐는 캔틸레버(한쪽 끝은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구조)식으로 2층 침실을 새롭게 설계하는 것 외에도, 거실 천장을 높이고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에 근사한 야외 다이닝 공간을 만들었다. 집 안 곳곳과 수영장 라운지에 알맞게 들어맞는 가구까지 손수 제작했다. 펜실베이니아 농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 판자와 낡은 와인 통에서 얻은 매끄러운 삼나무로 부엌용 목재 가구를 뚝딱 만들어낸 아헨바흐는 그의 인테리어 회사가 지극히 ‘목재 중심적’이라고 말하는 세간의 평가에 다음과 같이 항변했다. “본질적으로 목공예는 곧 건축이고, 건축은 곧 목공예입니다.”
색스는 서로 다른 장식과 소품을 관통하는 부부의 한결같은 안목이 부각되도록 집을 디자인했다.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의 달처럼 생긴 조명과 푸른빛으로 염색한 일본산 직물, 조소 작품과 다름없는 가구가 이루는 반복적 배치가 집 안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색스가 말했다. “부부가 인테리어 샘플로 삼은 그 뉴욕 로프트와 이곳의 가장 큰 차이는 조경입니다. 이 집은 모든 요소가 자연과 연결되어 있어요.” 패션 역시 중요한 영감이다. 핑크, 오렌지, 라벤더, 코냑, 블루로 이루어진 경쾌한 컬러 팔레트는 부부가 긴 시간 모은 빈티지 사진에서 끌어온 것이다. 프랑스 모델 드니즈 사로(Denise Sarrault)가 파리의 팔레 드 도쿄 현대미술관에 걸린 소니아 들로네(Sonia Delaunay)의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도 그중 하나다. 드니즈 사로가 입은 옷의 색채와 그림이 어우러지며 인상적인 잔상을 남기는 바로 그 사진 말이다.
반 램스위어드와 마타딘은 정원을 꾸미기 위해 조경 디자이너이자 비영리 기구 퍼펙트 어스 프로젝트(Perfect Earth Project)를 이끄는 환경 운동가이기도 한 에드위나 본 갈(Edwina Von Gal)과 여전히 제때 정원을 돌보아주는 조경 디자이너 토니 피아자(Tony Piazza)에게 도움을 청했다. 본 갈은 부지에 원래부터 존재하던 토착 식물을 복원하는 데서 시작해 새와 벌레 등의 꽃가루 매개자들이 공존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유해한 화학비료 없어도 지속 가능한 정원이었다. 이어 대나무 숲과 수영장을 둘러싼 작은 산책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장미, 야생화로 수놓인 언덕의 잔디밭을 뚝딱 탄생시켰다. 이 모든 자연 요소는 속세에서 한참 벗어난 듯한 집의 신비로움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었다. “이 집의 조경에서 핵심이 되는 연못과 그 가운데 자리한 앙증맞은 섬은 유일하게 손대지 않은 곳입니다.” 본 갈이 뿌듯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이 프로젝트가 실행되기 시작한 지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나 부부는 숲속 지상 낙원을 완성하는 그들의 계획은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말한다. 마타딘은 이 작업을 ‘끊임없는 대화이며 조정 과정’이라 표현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과 보람은 지금까지의 모든 고생을 감수할 만큼 값지다. 반 램스위어드가 동의했다. “춥고 비가 많이 내리는 네덜란드 출신인 우리에게는 정말 천국 같은 곳이죠.” V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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