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Y2K 아이템, 카프리 팬츠가 돌아왔다
설마했지만 기어코 돌아왔군요, 카프리 팬츠!
지난여름 벨라 하디드가 자신의 SNS에 이 ‘애매한’ 기장의 점프수트를 입고 해변가를 거니는 모습을 업로드했을 땐 애써 모른 척 넘겼습니다. 그가 트렌드에 누구보다 기민한 셀럽이란 사실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요.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법. 결국 카프리 팬츠가 돌아왔습니다. 무릎을 덮는 어중간한 길이로 그 시절 우리의 비율을 무자비하게 헤집어놓던, 일명 7부 바지로 불리던 그 팬츠 말이에요. 2023 S/S 컬렉션에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더 이상은 외면할 수 없게 됐죠. 천만다행인 점은 한층 클래식해졌다는 겁니다. Y2K라는 수식어를 아예 뗄 순 없겠지만, 넉넉한 와이드 레그 스타일이 주를 이루며 핏마저 고난도였던 2000년대 초반과는 다른 분위기죠.
오히려 1950~1960년대 스타일과 더 닮아 있습니다. 오드리 헵번, 마릴린 먼로, 그레이스 켈리 등 당대 아이콘들이 선보였던 스타일을 떠올려보세요. 대체로 타이트한 핏의 카프리 팬츠로 길쭉하고 우아한 라인을 자랑했지요. 비율 걱정은 살짝 내려놓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2023 S/S 컬렉션에서는 자크무스가 이 맛을 제대로 표현했습니다. 타이츠 정도의 역할만 부여하며 비교적 안전한 레이어드 스타일링을 보여준 여타 하우스와는 달랐지요. 데님 소재, 도트 패턴 등으로 카프리 팬츠를 룩의 주인공으로 내세웠거든요. 최근 공개된 두아 리파와 베르사체의 컬렉션에서는 화려한 레깅스 스타일로 남다른 존재감을 발했고요.
도전 정신 강한 패션 인플루언서들은 진작에 이 카프리 팬츠를 즐겨 입는 중입니다. 연출법도 참 다양했습니다. 밀리터리 팬츠로 2000년대 초반의 노스탤지어를 끌고 오기도 하고 발레 플랫, 키튼 힐 같은 트렌드 아이템을 활용해 세련미를 뽐내기도 하더군요. 1940년대 후반, 디자이너 조냐 데 레나르트(Sonja de Lennart)가 카프리 해변을 걷다가 바지가 젖는 걸 막기 위해 밑단을 자르며 시작되었다는 카프리 팬츠의 유래처럼, 집에 있는 팬츠를 쓱 잘라 입은 듯한 스타일을 보여준 이도 있고요.
과연 카프리 팬츠가 리얼웨이까지 진출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일입니다. 그토록 질색하던 팬츠 위에 스커트 패션도 우리의 데일리 룩에 무사히 자리 잡은 걸 보면,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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