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자, 코타키나발루 가야섬으로
초록빛 열대우림과 청정 해변, 야생동물, 평안한 휴식과 프라이빗하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액티비티까지.
이 모든 것을 코타키나발루의 가야섬에서 경험할 수 있다.
속물이라 해도 어쩔 수 없지만, 솔직히 터놓고 말하자면 뷰티 에디터인 나는 ‘자연 친화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숙소는 쾌적함이 최우선이고, 피부가 예민한 탓에 자외선은 너무 강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동물은 좋아하지만 곤충은 무섭고, 액티비티보다는 와인과 스파를 선호하는 전형적인 ‘호캉스파’. 하지만 팬데믹 기간 동안 답답한 도시에만 갇혀 살았던 탓일까? 휴양지의 에메랄드색 바다와 영화에서나 보던 핑크빛 노을, 거대한 야자수에 대한 갈증이 일었다. 그 이름만으로도 이국적인 코타키나발루와 가까운 곳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다양한 해양 동식물이 서식해 보호림으로 지정된 ‘가야섬’은 그런 내게 더없이 잊지 못할 경험을 안겼다.
5시간의 비행 후 코타키나발루에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한여름. 40도에 육박하는 습한 날씨에 나는 서울에서 즐겨 입던 맨투맨을 벗고 리넨 셋업으로 갈아입었다. 육지로부터 10분 정도 배를 타고 이동하자, 자연보호구역인 툰쿠 압둘 라만 해양공원을 이루는 다섯 군도 중 가장 큰 가야섬에 터를 잡은 ‘가야 아일랜드 리조트’가 나타났다. 전통적인 사바(Sabah) 건축양식을 기초로 현지 목재로 지은 건물이 울창한 숲 사이로 높이 솟아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 아름다운 해변을 끼고 푸른 수영장과 풀 바, 뷔페와 고급 다이닝, 오마카세를 제공하는 세 가지 타입의 레스토랑, 라이브러리, 스파 빌리지가 자리하고 있다. 섬 한 면을 차지한 리조트는 맑은 새소리만 이따금 울려 퍼지는, 전체적으로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흘렀다.
총 121개, 네 가지 타입의 객실 가운데 내가 묵은 곳은 ‘키나발루 빌라’. 테라스 앞은 남중국해를 가로지르는 시원한 파노라마가 펼쳐지며, 맑은 날씨에는 웅장한 키나발루산을 조망할 수 있다. 14평의 룸은 널찍한 직사각형으로, 네 개의 별채가 모인 객실 건물 사이로 제법 거리가 있어 독채처럼 이용하며 조용히 사색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아침 요가 수업, 에센셜 오일에 대해 알아가며 직접 나만의 ‘퍼퓸 오일’을 만드는 ‘사바 센트 어드벤처(Sabah Scent Adventure)’, 토착민의 전통 치유 방식을 따르는 스파 프로그램까지. 사흘 동안 이 프로그램을 거치고 나니 복잡한 머릿속에 평온한 기운이 흘렀다. 평소 주말에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을 때보다 몇 배는 부지런히 움직였음에도, 거울을 보면 칙칙한 피로의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강도 높은 마사지를 선호하는 나를 담당했던 테라피스트의 야무지고 꼼꼼한 손길, 그리고 이곳만의 레시피로 만든 ‘아일랜드 스파이스’라는 이름의 알싸함이 돋보이는 아로마 오일도 한몫했다.
육해공으로 즐긴 미식도 빼놓을 수 없다. 현지식을 비롯한 일식, 서양식으로 다양하게 제공되는 조식은 매일 아침 메뉴가 조금씩 달라져 질릴 새가 없다. 옥상에 위치한 ‘피셔맨스코브’ 레스토랑은 산과 푸른빛 바다가 내다보이는 풍경이 낭만적이다. 드레스 코드가 필요한 덕에 나는 보테가 베네타의 민소매 롱 드레스를, 함께한 사람들은 과감한 프린트의 셔츠와 미니 드레스를 차려입었다. 랍스터와 타이거 새우, 그날의 생선 등 셰프가 바구니에 탑처럼 쌓은 해산물로 요리한 코스 요리를 원 없이 맛볼 수 있다. 특히 짭조름하고 신선한 랍스터 요리와 코스 중간에 입맛을 리프레시해주는 레몬 셔벗이 일품. 마지막 날의 만찬은 해산물과 스테이크, 볶음밥을 제공하는 데판야키식의 오마카세 레스토랑에서 진행됐는데, 호불호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맛이었다. 매일 밤 11시까지 운영되는 풀 바는 수영 후 친구들과 간단한 식사와 함께 술 한잔을 걸치기에 제격이다.
다채로운 즐길 거리를 제공하지만, 무엇보다 가야 아일랜드 리조트를 대변하는 정체성은 바로 ‘천혜의 자연’이다. 그 이면에는 숲과 바다, 그곳에 사는 생물을 보호하고자 노력하는 리조트의 헌신이 존재한다. 원숭이, 도마뱀, 거북이, 산호와 열대어 등 이곳에 머물면 어렵지 않게 목격하는 동물은 그야말로 우리와 야생에서 공존하는 듯하다. 산호초를 복원하고, 다친 거북이를 구조하고, 맹그로브숲을 가꾸는 모습을 보면 나 또한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리조트의 ‘내추럴리스트’로 일컬어지는 전문가 저스틴과 함께 한 숲 트레킹 코스는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날 만큼 다양한 동식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이색적인 체험이었다. 모든 액티비티는 이토록 철두철미하게 지켜지는 리조트만의 환경보호 원칙 아래 운영된다. 그 덕에 맑은 물에서 1시간여 색색의 산호를 구경하는 스노클링, 느긋한 여유가 머무는 프라이빗 비치, 맹그로브숲 사이를 지나는 카약 체험까지, 있는 그대로의 깨끗한 자연을 온몸으로 누릴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그곳에서 나를 감싸던 온화한 기운과 평안함은 사라졌지만, 눈이 마주치면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던 직원들의 순수한 미소는 아직까지 가끔 생각난다. 스트레스 지수가 오르는 순간에는 첫날 오후, 리조트에서 유료로 운영하는 크루즈 선상에서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던 한때를 떠올린다. 준비해준 와인을 마시며 ‘꼭 서울에서 살아야 할까?’ 생각하던 그때를.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공간과 느릿느릿 조용히 흘러가는 시간, 청정한 자연 속에서는 대부분의 것들이 수용되고 모나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도망치거나 숨고 싶을 때 언제든 나를 받아줄 것 같은 장소가 하나 늘었다. V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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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송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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