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티노 옷에 글을 새긴 사람
IYKYK: 한야 야나기하라
2024 S/S 남성복 패션 위크가 한창입니다. 브랜드에선 전 세계에서 날아온 게스트에게 전에 없던 새로움을 보여주고 있죠. 오랫동안 발렌티노를 이끌어온 피엘파올로 피촐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번 컬렉션을 위해 발렌티노는 게스트에게 초대장과 함께 ‘발렌티노 핑크’ 잉크로 인쇄된 책 한 권을 보냈습니다. 쇼 홍보 영상에서도 모델들과 앰배서더들은 책을 들고 거기 나온 구절을 읊었습니다. 이 책은 한야 야나기하라가 쓴 소설 <리틀 라이프(A Little Life)>의 복사본이었습니다. 쇼의 주제도 ‘The Narratives’로 책이 컬렉션의 중요한 주제이자 오브제로 쓰였죠. 책에 나온 구절을 그대로 프린트한 재킷, 데님, 셔츠는 그야말로 직관적인 메시지를 담은 디자인이었습니다.
한야 야나기하라는 <뉴욕 타임스>의 스타일 매거진 <T> 편집장이자 저명한 소설가입니다. 2015년 발표한 <리틀 라이프>가 영미권을 대표하는 문학상 맨부커상과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나란히 오르고, 수많은 언론사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았죠. 2016년 <리틀 라이프>는 한국어로도 발간되었습니다. 피엘파올로 피촐리는 한야 야나기하라의 책을 컬렉션의 주요 영감으로 삼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명의 남성 캐릭터가 보여주는 관계와 인간성, 연약함과 회복에 대한 부분은 제게 감동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리틀 라이프>에 등장하는 네 명의 주인공은 대학 동창인 윌럼, 맬컴, 제이비, 주드입니다. 꿈을 안고 뉴욕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윌럼은 배우, 맬컴은 건축가, 제이비는 화가, 주인공인 주드는 고통으로 가득 찬 비밀스러운 과거가 있는 변호사죠. 한야 야나기하라는 소개 글에 “네 남자의 이야기 속에 삶의 고통과 공포와 사랑을 모두 담아내고 싶었다”고 전했습니다. 얼핏 보면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 작가에게 기대할 만한 스토리가 아니지만, 한야는 충격적인 전개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만들어냈습니다. 책을 처음 출간하던 당시 저자 소개에 ‘뉴요커’라고만 쓸 만큼 한야 야나기하라는 전업 작가가 아니며, 아시아계 여성인 저자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지우고 소설을 읽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일본계 하와이 출신 아버지와 서울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야 야나기하라는 스미스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뉴욕으로 건너와 <콘데 나스트 트래블러>에서 에디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직장에 다니는 동안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리틀 라이프> 작업에 매진해 1년 반 만에 1,0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썼습니다. <리틀 라이프>의 인기는 런던에서 연극으로 만들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그녀의 최근 소설 <To Paradise>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는 물론 버락 오바마의 여름 독서 리스트에 오르며 유명 작가로서 인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녀가 편집장으로 일하는 <T> 매거진 콘텐츠도 <보그> 오디언스라면 충분히 관심이 갈 텐데요. 최근 이슈는 ‘Woman’s Work’. 45세 이상의 중년 여성 아티스트에게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젊은 여성이 누구인지 묻고 그 둘을 함께 화보에 담았습니다. 1960년대를 풍미한 포크의 여왕이자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조안 바에즈(Joan Baez)와 MZ세대의 히어로 라나 델 레이를 함께 뷰파인더에 담는 참신함은 <T>에서만 가능한 기획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패션 이슈에서는 발렌시아가의 히어로 뎀나 같은 디자이너 인터뷰와 전 세계를 무대로 한 흥미로운 화보도 다룹니다.
조안 바에즈와 라나 델 레이를 모델로 한 <T> 매거진 컬처 이슈
발렌시아가 뎀나 커버
여행 잡지 <콘데 나스트 트래블러> 출신답게 그녀의 인스타그램은 전 세계의 숨겨진 여행지에 대한 소식으로 가득합니다.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밀라노 여행, 신인 작가의 스튜디오가 몰려 있는 부시윅,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패션 위크 출장기 등등. 과연 패션 디자이너와 전 세계의 ‘업계’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의 피드답군요. 한야 야나기하라의 독특한 세계관이 궁금하다면 그녀의 인스타그램과 더불어 소설책까지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IYKYK :‘If You Know You Know’는 많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패션계에서 유의미한 영향력을 끼치는, ‘알 사람은 아는’ 인물에 대해 탐구하는 칼럼입니다.
- 포토
- Courtesy Photos, 한야 야나기하라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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