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 모드, 패션이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가장 입체적인 자세
건축과 미술, 정원과 음악의 이상적 상호작용.
프라다가 예술, 특히 현대미술을 대하는 태도는 진지하고 단단하다. 여기엔 건축도 당연히 포함이다. 밀라노에 자리한 폰다치오네 프라다가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이라면, 무려 6년에 걸쳐 복원한 상하이의 ‘롱 자이(Rong Zhai)’ 저택은 예술을 바라보는 프라다의 세심한 시선과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그보다 앞서 2009년 서울 경희궁 앞에 설치한 ‘프라다 트랜스포머(Prada Transformer)’도 빼놓을 수 없다. 흰 천으로 포장된 거대한 사면체 구조물은 ‘변신하는 건축’이라는 컨셉에 맞게 (기중기를 활용해) 회전했다. 각 면이 바닥이 될 때마다 패션, 영화, 미술 등 각기 다른 행사를 선보이는 크로스 컬처 전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프라다를 위한 예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예술은 예술 그 자체일 때 의미가 있습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자신이 전개하는 비즈니스와 예술 사이에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프라다가 기획하는 아트 행사를 앞두고 뻔하지 않은 경험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그 단호함에 있다.
도쿄로 향하는 2시간 내내 나는 약간 들떠 있었다. 5년 만의 일본행이기도 했지만, ‘프라다 모드(Prada Mode)’에 참석한다는 사실이 컸다. 지금껏 글과 사진으로만 접하던 현장을 직접 확인한다는 건 그만큼 설레는 일이다. 프라다 모드는 2017년 카르스텐 횔러(Carsten Höller)가 기획한 ‘프라다 더블 클럽(Prada Double Club)’이 진화한 현대 문화 시리즈다. 테마에 얽힌 특별한 프로그램과 아트 콘텐츠를 통해 해당 도시의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2018년 마이애미를 시작으로 홍콩, 런던, 파리, 상하이, 모스크바, 로스앤젤레스, 두바이에서 진행했고, 아홉 번째 도시가 도쿄다. 데미안 허스트, 마틴 심스를 비롯해 티에스터 게이츠(Theaster Gates), 제이미 다이아몬드(Jamie Diamond), 케이트 크로포드(Kate Crawford), 트레버 패글렌(Trevor Paglen), 지아장커(Jia Zhangke)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가 함께한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건축물과 문화를 탐구하는 ‘프라다 모드 도쿄’의 큐레이션은 프라다의 오랜 파트너이자 세계적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Kazuyo Sejima)가 맡았다.
“건축, 정원, 미술, 음악이 하나가 되는 새로운 유형의 연결 고리이자 대화의 장입니다. 미술관이 새로운 공공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상징하기도 하죠.” 지난 5월 12일 도쿄도 정원 미술관(Tokyo Metropolitan Teien Art Museum)은 프라다 모드를 위해 이틀간 문을 열었다. 미술관 역사상 처음으로 진행된 협업은 지난해 7월부터 미술관장을 맡고 있는 세지마 덕분에 가능했다. 역사적 건축물과 미술관을 둘러싼 커다란 정원 곳곳에는 세지마와 니시자와 류에(Ryue Nishizawa)가 공동 설립한 건축 사무소 사나(SANAA)의 꽃 모양 벤치가 놓여 있었고, 유로피언 정원 한쪽에는 니시자와가 디자인한 임시 파빌리온이 설치됐다. 커다란 곡선을 그리는 나무 표면이 지붕 역할을 하는 파빌리온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프라다를 상징하는 삼각형이다. 첫날의 뜨거운 햇살과 둘째 날의 세찬 빗방울을 모두 피할 수 있었던 이곳은 예술과 건축을 주제로 하는 일련의 대담이 이루어지는 메인 무대가 되었다. 니시자와는 동료 건축가 이시가미 준야(Junya Ishigami)와 각자의 최근 작품을 바탕으로 조경에 대한 대화를 나눴고, 사진가 스기모토 히로시(Hiroshi Sugimoto)와 16세기 차(茶) 장인의 직계 후손 센 소오쿠(So’oku Sen)는 서양 예술과 일본 문화가 지닌 감수성의 차별성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이누지마섬의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를 다룬 세지마와 큐레이터 하세가와 유코(Yuko Hasegawa)는 일본의 ‘공생 미학’과 사람들의 소통 방식에 대해 살펴봤다.
이 밖에도 다례, 오리지널 워크숍, 일본과 전 세계 미식을 맛볼 수 있는 갖가지 음식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틈을 풍성하게 채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세지마 가즈요가 공을 들인 부분은 음악이다. 미술관의 모든 구역에서 끊임없이 음악이 흘러나왔으니 말이다. “음악을 잘 다루지는 못해요. 그저 어떻게 하면 미술관 전체를 동시에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음악이 굉장히 큰 도움이 됐어요.” 프라다 모드 도쿄의 음악 프로그램은 크레이그 리처즈(Craig Richards)와 노무라 구니치(Kunichi Nomura)가 큐레이션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끈 건은 작곡가 시부야 게이이치로(Keiichiro Shibuya)의 안드로이드 오페라 공연. 푸른 정원에서 로봇 공학자 이시구로 히로시(Hiroshi Ishiguro)가 제작한 안드로이드 알터 4(Alter 4)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고 춤추는 모습은 세지마가 의도한 자연과 인공의 만남을 전형적으로 보여줬다. “지구는 무엇이고, 자연은 무엇이며, 인공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다 혼합되어 있습니다. 자연적이거나 인공적인 것, 시간이나 하늘 등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죠. 사람들이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어디로 이동하는지에 따라 우리는 그것을 예술 혹은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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