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의 이솝
이솝, 우아한 수수께끼
이솝은 어딘가 기묘한 태도를 취하는 브랜드다. 여느 브랜드처럼 할인 프로모션을 하지도, 번쩍거리는 연예인을 내세우지도, 주름이나 피부톤 개선과 같은 기능을 대놓고 장담하지도 않는다. 강박적일 정도로 일관된 디자인에 담긴 제품들은 구분도 쉽지 않다. 가격 경쟁력, 셀러브리티 마케팅, 고기능 어필과 같은 명확한 자극점들로 승부하는 요즘의 뷰티 마케팅 시장에서 이솝이 택한 포지셔닝은 마치 홀로 진공상태에 있는 듯한 불가해하고 미스터리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째서, 이솝의 제품을 ‘사는’ 사람이고 싶어하는가?
# 완벽에 수렴하는 법 – 멜버른 본사 R&D 연구소
실제로 스스로의 피부에 닿고 흡수되는 물질들의 정체를 완벽히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늘의 소비자는 이미 각종 어플이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어떤 성분이 어떤 효능을 지니고 얼마나 안전한지에 대해 빠삭하게 파악한다. 그러나 스킨케어 제품의 효과나 완성도는 결코 유효성분의 원료적 특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단순히 ‘좋은’ 성분들을 많이 뒤섞는다고 피부에 좋거나 완성도 높은 제품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솝의 R&D 디렉터 새미 하마다(Samy Hamada)는 멜버른 연구소의 숙련된 화학자들과 함께 이솝의 모든 제품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팀의 목표는 ‘피부에 현실적인 이점을 제공하는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개발하는 것. 이를 위해선 성분의 품질, 피부에 대한 안정성과 효능, 그리고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1980년대의 멜버른, 에센셜오일을 써서 자극적이지 않은 헤어제품을 만들며 독특한 행보를 시작한 이솝은 오늘날까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굳건하게 기술적이고 엄격한 제품 원칙을 추구해왔다. 오늘날 이솝의 제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대체불가능한 향이나 고품질의 에센셜오일, 고유한 비주얼 세계관을 형성한 패키징 디자인을 넘어선 추상적인 무언가다. 실용성에 포커스를 맞추며 제품의 포뮬라를 끊임없이 고도화하고, 학자와 같은 열정으로 성분과 조합을 탐미하는 진정성 같은 것 말이다. 이솝은 R&D 디렉터 새미 하마다를 비롯한 이솝 직원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1987년 창립 이래로 어려운 길을 타협 없이 꿋꿋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완벽한 제품이란 건 세상에 없지만, 완벽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말이다.
# 걷는 거북이가 뛰는 토끼를 이기는 법 – 제품 개발 과정
새미 하마다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이솝은 ‘견고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실험실 제조 성분과 식물성 성분의 조화로운 결합을 도모’하는 브랜드다. 제품 수명이 길어야 하고 효능에 특색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새미는 이솝의 제품을 개발하는 데에 보통 2년 정도가 소요된다고 말한다. 아이데이션, 개발, 테스트, 제조 및 출시 사이에는 수많은 협업과 반복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안전성 검증 기준은 세계 곳곳마다 다른데, 그 중 가장 엄격한 나라의 기준에 모든 테스트를 맞춘다. 통과하지 못하면 다시 개선하고 실험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그리고 기꺼이 반복할 뿐이다. 마치 행복한 시지프스처럼. 마케팅에 유리한 시즌이나 신제품 출시 주기에 맞추기 위해 준비되지 않은 제품을 적당히 갈무리하여 내놓는 것 또한 이솝에선 어불성설. 최선의 제품의 완성을 위해서는 2년은 물론이고 10년도 걸릴 수 있다고 말하는 고집이야말로 이솝 제품에 대한 견고한 신뢰를 쌓는 중요한 태도다.
고집스런 장인 정신에서도 알 수 있듯, 이솝은 일시적인 트렌드나 마케팅적 니즈에 따라 제품을 출시하지 않는다. 어떤 제품이 유행하거나 잘 팔린다고 해서 성급히 따라 만들지 않는다. 대신 명확하고 의미 있는 목적을 가진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리소스를 집중 투자한다. 여타 스킨케어나 바디 브랜드와는 다른 독특한 이솝의 제품들은 모두 그렇게 탄생했다. 용변 후 변기에 떨어뜨리는 ‘포스트-푸 드롭스’, 반려동물을 위한 ‘애니멀’, 여행의 피로를 달래주는 ‘진저플라이트’ 등 이솝은 일상의 실제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독창적인 해결책을 자기만의 속도로 제시해왔다.
# 우리가 지구의 속도로 갈 수 있도록 – 지속가능성
개인의 몸과 마음이 지닌 속도를 존중하듯, 이솝은 지구가 마주한 빠른 변화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따라서 환경보호와 지속가능성 역시 이솝 제품 개발의 핵심 키워드다. 이를테면 이솝의 ‘서브라임 리플레니싱 나이트 마스크’는 마스크팩을 원하는 고객들의 강력한 니즈에 의해 탄생했지만,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트 마스크 대용으로 개발된 상품이다. 지속 가능성 때문에 제품 출시가 변경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배스 솔츠는 심지어 출시 전에 개발이 중단된 케이스다. 언뜻 이솝과도 잘 어울리는 이 제품의 매력에 거는 기대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탄소 배출 데이터베이스에 관한 내부 심의에서 목욕물을 가열하는 데 소비되는 에너지가 샤워보다 훨씬 높다는 결과가 나오자 출시 계획이 전면 철회되었다고.
제품의 연장인 패키징에 관해서도 이들은 장기적인 철학을 고수한다. 제품의 안전성과 보존성을 보장하는 기능적이고 절제된 형태를 설계하면서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소한의 자원을 사용한다. 재활용 페트 소재 또는 재활용 가능한 유리 소재로 만들어지는 갈색 유리 병은 제품의 민감한 성분을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한다. 법적으로 요구되지 않는 한 개별 제품에 박스패키지를 씌우지 않는 것, 일회용 쇼핑백을 제공하지 않는 것 또한 그런 이유에서다. 이솝의 목표는 2025년까지 모든 제품의 패키지를 재사용이나 재활용 또는 퇴비화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 도시 거주자를 위하여
이처럼 우리가 익히 아는 근사한 브랜딩과 철학에 더해 이솝은 성분, 안전성, 효능, 그리고 환경에 대한 고려로 꽉 채운 육각형의 그 어떤 축도 포기하지 않는다. 이솝이 탄생한 멜버른의 스토어를 누비며 살핀 결과, 열정적인 연구정신과 이솝만의 독특한 제스처를 균형있게 담아 만든 여러 제품 중 유독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파슬리 씨드 안티 옥시던트 인텐스 세럼’이었다.
기업으로서 환경에 주는 영향도 중요하지만 스킨케어 브랜드로서 환경이 피부에 주는 영향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쟁점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피부도 옷을 갈아입는다. 이솝은 지속적으로 기존 제품의 장점을 강화하고 개선점을 보완한다. 국내에서 이솝은 핸드와 바디용품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지만, 사실 이솝의 가장 큰 자부심은 탄탄한 퀄리티의 스킨케어 라인에 있다.
스킨케어 라인 중 에디터가 가장 매력적인 효과를 체감한 ‘파슬리 씨드 안티 옥시던트 인텐스 세럼’ 또한 2021년에 출시된 이래 포뮬러와 성분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이루어졌다. 피부에 가볍고 촉촉한 보습 작용을 하는 건 물론이고 ‘도시 거주자’의 피부를 유해 환경으로부터 지켜준다는 독특한 특성을 지닌 점이 매력적인 제품이다. 연구팀에 실험한 결과, PSAOIS를 바른 피부는 미세먼지와 같은 요소로부터 오염이 덜 되는 것 뿐만 아니라, 세안 후에는 세럼을 바르지 않았던 피부와 비교해 오염 물질들이 훨씬 더 깨끗하게 씻겨나가도록 도와주었다. ‘미세먼지로부터 지켜줘요’와 같은 막연한 광고 문구보다, 연구실에서 보여준 실험 결과와 수치에 설득되는 건 당연한 일. 다만 이 제품은 사용 순서가 중요한데, 깨끗하게 피부를 씻어내고 기초 보습을 한 후 이 세럼을 얇게 피부에 펴바르고 흡수되길 기다려야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아침에는 보호막이 형성될 최소한의 시간을 주고 그 위에 메이크업을 하거나 자외선차단제를 덧바르면 된다. 흡수가 빠르고 가벼운 제형이라 덥고 습한 서울의 여름부터, 미세먼지가 우려되는 초가을까지 피부에 얇게 얹듯 사용하기에 제격.
# 마법 대신 진심을 담아
이솝은 제품 연구실과 마케팅은 물론, 인테리어 디자인과 스토어 매니저에 이르는 모든 디테일한 제스처에서 본사의 철학이드러나도록 부단히 애를 쓰는 브랜드다. 그러기 위해 시장과 고객을 만나기에 앞서 내부 구성원들을 충분히 설득한다. 멜버른 이솝 R&D센터에서 만난 화학자들은 제품의 퀄리티를 마음 놓고 끌어올릴 수 있는 자유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웬만한 영업 담당자보다 더 효과적으로 제품의 매력을 어필했다. 이솝의 본고장인 멜버른의 스토어에서 만난 컨설턴트들은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 동료와의 유대와 따뜻한 소속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이들이 진심을 담아 추천하는 제품은 편안한 믿음을 끌어낸다.
그 어떤 고가의 고기능 스킨케어 제품도 몸과 마음의 밸런스가 무너진다면 피부를 좋게 만들어줄 수 없다. 그런 마법을 약속하는 건 거짓말이라고 이솝의 공동창립자 수잔 산토스는 말한다. 피부가 몇 년씩 젊어진다는 크림, 주름과 여드름을 없애준다는 세럼 등을 귀 따갑게 외치는 대신 이솝은 고요한 정직함을 택했다. 계절이 바뀌고, 나이가 들고, 마음 상태와 영양 환경이 달라지면 피부에게 필요한 옷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너무 많은 제품과 정보의 바다에서 방황 중이라면, 가까운 이솝 스토어에 꼭 들러볼 것. 가을이 오면 얇은 가디건을 걸치듯 피부에게도 그때그때 맞는 옷이 있고, 그건 직접 입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여유롭고 편안하게 피부를 마주하며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꼭 맞는 좋은 제품을 진심을 담아 권해줄 것이다.
이솝은 신중하고 고집이 세며 티는 안 나지만 늘 좋은 옷을 입고 말수가 적은 미학과 교수를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째서 이솝을 사는 사람이고 싶어하는가?’ 조금 느리지만 그만큼 신중하고 열정적으로 독창적인 제품을 연구하고, 고집이 세기에 양질의 성분과 경험을 두고 타협하지 않으며, 말수가 적은 대신 미사여구를 걷어내고 가장 중요한 본질과 가치를 분명하게 전달할 줄 안다. 그와 동시에 과하게 튀지 않는 근사함으로 이솝 제품을 쓴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장소나 사람의 취향을 신뢰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솝을 산다. 이들이 만드는 정직한 제품, 그 너머의 우아한 철학을 직접 피부로 느끼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것이다.
- Freelance editor
- 양민정 Courtesy of Aes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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