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인간적인, ‘매거진 키즈’를 위한 사진
누군가처럼 소싯적 ‘매거진 키즈’였던 저는 수십 년 전 <보그>에 실린 사진들을 여전히 잊지 못합니다. 피터 린드버그, 애니 레보비츠, 엘렌 폰 운베르트, 어빙 펜, 헬무트 뉴턴, 리처드 애버던 등등 불세출의 작가들이 패션 사진의 원형을 일구며 <보그>의 전성기를 업데이트했지만, 어쩐 일인지 저에게는 윌리엄 클라인의 사진이 이들에 앞섭니다. 클라인이 <보그>의 아트 디렉터였던 알렉산더 리버먼과 손발을 맞춰 함께 일한 건 1950년대부터 1960년대이고, 정확하게는 1966년에 <보그>를 떠났는데도 말이죠. 클라인의 화보 사진은 패션의 가장 첨예한 지점과 패션에 숨겨져 있거나 조우하는 예술의 면면을 화려하게 은유하고, 여전히 저를 감동시킵니다. 사진 전문 미술관인 뮤지엄한미 삼청에서 9월 17일까지 열리는 <윌리엄 클라인: DEAR FOLKS>전에서 저는 연극적이면서도 아방가르드하고, 역동적이면서도 디자인적인 그의 패션 사진을 홀린 듯 바라봤습니다.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도 윌리엄 클라인의 사진이 수미상관 잘 맞는 강렬한 시처럼 느껴지는 이유를 이번에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2022년 세상을 뜬 거장의 일생을 관통하는 흐름을 일괄하는 이번 전시는 회화, 디자인, 사진, 패션, 영화, 책 등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하며 동시대의 시각예술을 창조해낸 그의 전방위적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즐겁게 목격할 수 있도록 이끕니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루어진 주요 작업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그의 화보 사진이 어째서 그토록 남다르게 예술적일 수 있었는지 자연스레 깨닫게 됩니다. 패션이든, 도시 풍경이든 그의 시선은 삶의 가장 역동적인 부분에 찬사를 보내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1926년 뉴욕의 헝가리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윌리엄 클라인은 어릴 때부터 뉴욕 현대미술관을 들락거리며 사진과 회화, 현대미술을 접했고, 영감의 단서를 자신만의 세계에 차곡차곡 쌓아 올렸습니다. 청년 시절에는 인상파와 세잔, 피카소를 좋아했으며, 사진작가 중에서는 루이스 하인과 워커 에번스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고 합니다. 특히 그의 추상 작업 연작을 직접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회화와 사진, 그래픽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들던 그의 발걸음이 너무나 당당하면서도 황홀했습니다. 클라인의 사진이 매우 사진적인 동시에 사진의 틀을 넘어서는 통찰력을 발휘했던 것 역시 그가 특정 영역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사진 예술계의) 규범과 규칙, (세상의) 금기와 한계를 뛰어넘는 전복성과 혁명성은 감히 제스처로는 표현할 수 없고 스타일로도 정의할 수 없는, 삶의 철학과도 맞물린 것입니다. 이는 모든 예술에 기꺼이 열려 있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죠.
이번에 저는 전시장에 유난히 오랫동안 머무르며 몇 번이나 작품을 보고 또 봤습니다. 생생하다 못해 펄펄 살아 날뛰는 듯한 강렬함이 제 발길을 붙잡았기 때문이죠. 그의 사진은 불균질하고, 불완전하며, 불완전한 세상을 온전히 인정하고, 이런 세계를 살아내던 무명인들의 숨결과 존재감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더욱이 책의 한 면을 보는 듯 드라마틱한 배치가 돋보이는 ‘도시의 사진집’ 섹션에서는 프레임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즐거움과 설렘, 분노와 지리멸렬함 등을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었어요. 혼자 호젓하게 전시장을 찾았지만, 그들 덕분에 전혀 외롭지 않았습니다. 전시 제목 ‘Dear Folk’는 전시 설명 글에 쓰인 대로 ‘인류를 향한 부드러운 호소’인 동시에, 한번도 첨단이 아닌 적 없었던 거장의 특별함은 세상과 사람을 제대로 관찰해서 담아내려는 인간적인 시선에서 비롯된 것임을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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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엄한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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