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사람들 #2_흐르는 자기애
욕망의 지점에 정확히 착지한 불꽃. 5인의 성감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흐르는 자기애
입맛도 성욕도 떨어진다는 무기력한 여름도 내 에너지를 상대하긴 무리인 듯하다. 내 욕망은 더위에도 굴하지 않고 뜨겁게 분출되니 말이다. 내 섹스 판타지는 ‘나’다. 내 리비도를 쉴 새 없이 자극하는 멋지고 섹시하고 완전 ‘쩌는’ 나. 사람들은 섹스를 보통 남이랑 하겠지만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하고, 내 쾌락이 있어야 상대방 쾌락도 있고 그런 거 아니겠는가. 꿈에만 그리던 미친 몸매의 소유자를 데려와서 내 섹스 판타지를 완벽히 구현한다고 해도 남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을 고민하기 시작하는 순간 쾌락은 관심 밖으로 달아나기 일쑤다. 내 몸매가, 속옷이, 표정이 신경 쓰여서 “아… 저기 불 끄고 하면 안 될까?” 하는 순간 몰입은 깨지고 그 즉시 나는 판타지에서 현실 세계로 추방당한다. 결국 ‘파워 당당 섹스’가 핵심이다.
파트너 섹스도 그렇고 셀프 섹스도 마찬가지다. 자위도 자기 긍정과 확신으로 넘칠 때 훨씬 재밌다. 나는 섹스 토이 회사를 운영하는 데다 섹스 칼럼도 쓰고 있으니 매일매일 섹스 타령하며 사는 여자다. 덧붙이자면 셀프 섹스만 하고 지낸 지 꽤 오래된 ‘프로 자위러’기도 하니 이름값을 너무 잘하는 건지 아니면 못하는 건지. 섹스 토이가 필요 이상으로 유능하긴 하지만, 한때는 섹스 토이에 과하게 의존하는 경향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자위는 ‘내 즐거움의 극대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한 나와 섹스 토이의 협업 프로젝트인데, 섹스 토이 혼자 배터리를 삐질삐질 흘리며 ‘하드 캐리’ 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력하는 태도쯤은 보여줄 법도 했는데 말이다! 어느 날은 노력의 일환으로 전신 거울 앞에서 나를 관찰하며 자위를 시도해봤다. 섹시함을 연출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예쁘고 섹시한 모습을 연출한 적이야 여러 번 있지만 날것의 자연스러운 내 모습을 직접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런 내 모습이 의외로 보기 싫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섹시하기까지 했다. 흐트러진 내 모습에 취하고 토이가 주는 감각에 휘몰려 자위는 평소보다 후끈 달아올랐다. 그게 어떤 벽을 깨트린 것일까. 그 후로는 정제되지 않은 신음과 추임새를 마음이 시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내지르고, 침대가 더러워질까 걱정되면 냅다 화장실에서 판을 벌여보기도 했다. 스스로의 한계를 깨고 나니 자위의 세계가 확장되고 쾌락도 커졌다. 내가 예전처럼 자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면 자위가 이렇게 재밌게 느껴지진 않았을 것이다.
요새 음악 트렌드가 ‘자기애’라고 하던가? K-팝 시장에도 나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반짝이고 멋진 아이돌이 넘쳐난다. 하지만 내가 그들처럼 넘치는 부를 갖고 있고, 거울을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매료될 만한 아름다움을 지녔냐고 하면 결코 아니다. 사회의 기준은 엄격하고 획일적이며 꾸준히 그러했으니 나라고 그 엄중한 객관성을 모르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난 멋있지도 섹시하지도 않다. 그냥 내가 멋있고 섹시하다고 ‘믿을’ 뿐이다. 동료든 친구든 ‘인친’이든 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해줄 사람은 차고 넘치니 나라도 나를 보듬기로 마음먹은 셈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순간, 다른 건 몰라도 충만한 섹스 라이프 하나는 확실히 보장할 수 있다. 그리고 재밌는 섹스 하나만을 위해서라도 나를 사랑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확신한다.
올해 나는 서른이 됐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스물셋부터 난 이상하게 서른이 된 나를 설레며 상상해왔다. 내 나이가 자랑스럽고, 따지고 보면 지난해와 그리 달라진 건 없지만 이상하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하루아침에 나를 한층 멋있고 섹시한 사람으로 변신시켜준 느낌이라면 너무 과장일까?
그러나 앞으로도 나이를 먹는 것이 마냥 기분 좋은 일일까를 생각하면 멈칫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스무 살 이후, 앞자리가 바뀌는 모든 나이는 다 비슷한 신세일지도 모른다. 열아홉 살이 손꼽아 스무 살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과 다르게, 누군가에게 서른은 욕망 앞에서 자꾸만 머뭇거리게 만드는 어색하고 불편한 나이일 수 있다. 나처럼 30대가 되니 오히려 좋다고 말했던 친구 중 일부는 ‘만 나이’로 통일되는 6월을 기점으로 다시 20대가 되자 내심 기뻐하고 안도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모두가 천천히 나이 드는 시대, ‘지금 30대는 과거 40대와 같다’는 식의 말을 하며 동안을 당연한 칭찬으로 받아들이게 된 지금도 사회는 30대에게 은근히 ‘당신의 전성기는 다 지났으니 이제 청춘에는 미련 두지 마시죠. 새 수식어는 중년이에요’ 하고 암시하는 듯하다. 아줌마가 되면, 할머니가 되면 젊음의 반짝임과 정열은 사그라들어야 마땅한 것인가? 그러니까 내 말은, 간지러운 설렘, 스파크가 튀는 열정적인 색욕, 화끈한 열정, 과감한 모험과 도전, 이런 섹시하고 매력적인 키워드가 전부 청춘 독점이라면 너무 억울하다는 거다. 서른이 된 나는 더 농염하고 성숙하고 섹시하고 멋있어졌는데 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섹시해지기 위해 특정한 스타일의 옷과 머리 그리고 화장품을 찾곤 했다. 그러던 내가 자신감 있는 어른이 되며 깨닫게 됐다. 내가 열심히 일궈온 기반이 내 등 뒤를 단단히 받치고 있다는 믿음과 안정감. 그래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잠시 부는 비바람 따위 나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자기 확신이야말로 나를 섹시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한 해 두 해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이 나를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주었기에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스스로를 더 사랑하고, 주저 없이 내 매력을 여기저기 뽐내본다. 그리고 내년에는 더 사랑해주고 싶다. 지금의 내가 너무 사랑스러우니 오늘을 결코 지나칠 수 없고, 내 섹시함에 취해 혼자만의 쾌락을 불태울 거다. 안진영 섹스 토이 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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