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님 세상에선 ‘가짜’도 허용된다
영원한 클래식이자 모두가 옷장에 하나쯤은 갖고 있을 데님. 기본템 중의 기본템인 만큼, 디자이너들의 변주와 재해석 또한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블루마블은 퍼, 자수, 레더, 그리고 시퀸 디테일을 더한 데님을 선보이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디테일을 데님에 적용할 기세죠. 구람 바잘리아의 베트멍이 16XL 사이즈의 데님을 만들어낸 반면, 프라다는 수트 팬츠처럼 정갈한 데님을 칼라 니트에 매치해 정반대 무드를 연출했습니다.
데님에 한계란 존재하지 않나 봅니다. 최근 데님이 트롱프뢰유 기법과 부쩍 가까워지고 있거든요. 쉽게 말해, 착시 효과를 활용해 데님처럼 보이도록 한 ‘가짜 데님’이 런웨이에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가짜 데님 이야기를 하는 데 보테가 베네타를 빼놓아서는 안 되겠죠. 2023 S/S 시즌 최고의 룩 중 하나를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데님은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 거야’라는 확실한 메시지를 전했으니까요. 평범한 데님처럼 보이는 케이트 모스의 팬츠는 가죽에 정교한 프린팅을 더해 탄생시킨 가짜 데님이었습니다.
가짜 데님이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발한 것은, 얼마 전 막을 내린 2023 가을 시즌 꾸뛰르 컬렉션입니다. 가장 먼저 살펴볼 브랜드는 발렌티노인데요. 그 귀하다는 안나 윈투어의 기립 박수를 이끌어낸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카이아 거버의 오프닝 룩이었습니다. 그녀가 입은 팬츠는 피엘파올로 피촐리가 실크에 수백, 수천 개의 진주를 수놓아 완성한 가짜 데님이었거든요. ‘가장 럭셔리한 데님’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죠?
가짜 데님 열풍은 장 폴 고티에의 꾸뛰르 컬렉션에서도 이어졌는데요. 게스트 디자이너 자격으로 이번 컬렉션을 디자인한 줄리앙 도세나 역시 발렌티노와 비슷한 선택을 했습니다. 팬츠에 비즈를 수놓아 가짜 데님을 완성한 것이죠. 로에베 2024 S/S 남성복 컬렉션에 등장한, 반짝이는 시퀸 장식으로 가득했던 데님을 연상시키기도 했습니다.
가죽으로 만들어 웬만한 백보다 비싼 보테가 베네타의 레더 데님, 그리고 천문학적 가격의 꾸뛰르 데님까지. 하지만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보다 더 현실적인 선택지를 제공하는 준야 와타나베 같은 브랜드도 있거든요. 준야 와타나베는 일본의 빈티지 숍 베르베르진(Berberjin)에서 발견한 리바이스를 팬츠 위에 프린트했는데요. 덕분에 페이딩, 디스트레스트 디테일, 그리고 심지어 오염까지 그대로 재현한 팬츠가 완성됐습니다. 20세기 초·중반에 생산된 빈티지 리바이스가 상태에 따라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데 비해, 준야 와타나베의 가짜 데님은 훨씬 합리적인 가격대를 자랑합니다.
원래도 다채롭던 데님 세상이, 가짜 데님의 합류로 더욱 흥미로워졌습니다. 약 두 달 앞으로 다가온 2024 S/S 시즌에는 또 어떤 가짜 데님이 등장할지 유심히 지켜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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