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왜 저렇게 하지?
말의 무게
“말을 왜 저렇게 하지?” 이 말을 하기도, 듣기도 했다.
밀레니엄의 축포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종로의 나이트클럽. 대학생이 된 우린 호피 무늬 소파에 앉아 생일 파티를 열고 있었다. 지하의 쿰쿰함과 싸구려 향수 냄새에 들뜨며 과일 화채를 국자로 나눠 펐다. 그때만 해도 ‘블루스 타임’이란 것이 있어서 댄스음악 중간에 5분가량 발라드가 흘러나왔다. 다소 조용해진 가운데 “나 휴학해”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는 그 자리에서 울었다. “넌 어쩜 그걸 여기서 말하니.” 우린 싸우고 ‘나이트 루틴’이었던 새벽 설렁탕도 먹지 않고 헤어졌다. 이 소식을 들은 선배는 앞으로 혼자 수업 듣고 밥 먹을 친구에게 최소한의 미안함도 없냐며 나무랐다.
20년 뒤인 얼마 전에도 상사에게 비슷한 말을 들었다. “넌 어쩜 말을 그렇게 각박하게 하니.” 출장 중이던 나는 상사에게 원고 컨펌을 해달라는 카카오톡을 보냈다. 상사는 본론을 꺼내기 전에 최소한의 안부는 물어야 한다고 한마디 했다.
살면서 ‘차갑게 말한다’ ‘무심하다’ ‘건조하다’란 소리를 종종 들었다. 성격이려니 살다 이참에 궁금해져 책을 뒤졌다. 서점에는 말 잘하고 싶은 사람들, 말에 상처 입은 사람들로 넘쳤다. 그중 “원래 그런 인간이려니 생각하라” 같은 부분을 발견하고 조금 위로 받았다.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아들러의 인간이해>에서 경험이 쌓인다고 나아지는 게 아니라 기존 행동 양식이 강화될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공고화된 자기 고유한 감정을 바탕으로 말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내가 자라면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공식(삶을 이해하는 틀)이 세워지고, 이를 기반으로 말하고 들은 말을 해석한다는 거다.
내 친구는 중년 남성과 자주 싸웠다. 고등학교 때 “공부나 할 것이지 길을 막냐”는 트럭 기사와 도로 한가운데서 싸워 상인들까지 나와 말렸다. 친구는 그 사건보다 “너 그러다 큰일 난다”는 선생님을 원망하며 기득권에 맞서 싸우는데 왜 그런 소리를 듣냐며 하소연했다. 최근까지도 중년 남성과 언쟁(주로 도로나 술집)이 있었고 파출소에도 갔다. 유치장 면회실 건너편 의자에 앉은 친구를 보고 “발작 버튼이 왜 이리 쉽게 눌리냐”고 탓했는데, 한참 지나 가부장적인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심리학에는 ‘내면아이’란 용어가 있다. 어린 시절 받은 상처가 만들어낸 자아가 어른이 돼서도 함께하는 것이다. ‘그 나이 먹도록 왜 저리 살까, 왜 저리 말할까’ 싶은 사람은 내면아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도, 듣는 말을 해석하는 태도도 아팠던 어린 나에게 묶여 있다.
다시 밀레니엄의 종로 나이트클럽으로 돌아가서, 나는 왜 그런 식으로 휴학 통보를 했을까. 친구를 같은 학교에 다니는 관계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사춘기에 내 마음 같지 않은 친구들에게 상처 입었고, 그것이 ‘관계에 대한 회의’를 만들었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그건 그냥 인간이 안된 거라고, 핑계 대지 말라고.
나도 가끔 말을 막 하는 사람을 보고, 인간 실격을 떠올리기도 한다. 근본 없는 샤우팅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방법이 없을까? 다시 태어나야 하나. 소설 <실낙원>으로도 유명한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는 둔감력(鈍感力)을 키우라고 말한다. 둔감력이란 힘든 일이 생기거나 관계에 실패해 상심할 때 다시 일어서는 힘을 뜻하지만, 저서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에서 이런 예를 든다. “구시렁구시렁 잔소리도 대충 흘려 넘기는 대단한 능력.”
예능 프로그램에서 초등학생이 잔소리와 조언의 차이를 말한 적 있다. “잔소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빠요.” 다 너를 위해서 하는 소리라지만 대부분 자기 하고 싶은 말이다. 나도 가끔 못 참고 오지랖을 넓히는데 그때 상대의 얼굴에서 이런 말이 읽힌다. ‘제가 언제 물어봤어요?’ 진심이라 해도 ‘내 경험’에서 나온 ‘내 말’일 뿐이다. 내게 맞는 말이 상대에겐 틀릴 수 있다. 상대는 자기만의 삶의 공식이 있다. 게다가 우린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자라 사회에서 관계 맺고 살아가는 미생이다. 그러니 서로 봐주기로 하자, 너만의 세상이 있겠지, 여기기로 했다.
오늘도 나는 말을 주워 삼킨다. 내 맘 같지 않은 후배 앞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화날 때 15초만 참으랬지’라며 숨을 고른다. ‘그래, 너는 내면아이가 있어서 그렇게 말이 짧은 거야, 이해해야지, 지난 회사에서 뒤통수를 맞아서 방어기제가 작동했을 거야.’ 후배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이 사이코 기질은 어디서 나왔을까. 불쌍하다. 15초만 참아봐야지.’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상대를 이해하려면 우선 자기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를 모른 채 타인을 알려는 건 모순이라고. 안타깝게도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자기 객관화다. 이 어려운 과업을 달성하기 전에는 경청과 침묵을 우선 실천하기로 했다. 유태인 속담도 있다. 나이 들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고.
말하기 전문가들도 경청과 침묵을 강조한다. 최고의 아나운서인 이금희,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가로도 유명한 강원국도 저서에서 ‘경청이 먼저’라고 썼다. 작가 이기주는 저서 <말의 품격>에서 적극적 듣기를 권한다. “경청은 대화 도중 상대방의 말을 가만히 청취(Hearing)하는 ‘수동적 듣기’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인(Listening) 다음 적절하게 반응하는 ‘적극적 듣기’에 해당한다.” 250년 전에 쓰인 <침묵의 기술>이란 책은 지금도 스테디셀러다. 침묵의 첫 번째 원칙은 “침묵보다 나은 할 말이 있을 때만 입을 연다”.
말은 몇 초면 나오지만 그 말은 평생이 만든다. 허름한 말은 내 수준을 보이는 꼴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도 그랬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고민을 듣던 지인은 매일 본인이 한 말을 기록하라고 권했다. 퇴근 후에 기억나는 대로 적어본다. 이 실험이 끝나면 좀 달라질까. 덕분에 타인에게 할 말은 삼키게 되는데 다른 부작용이 온다. 혼잣말이 는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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