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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하정우 그리고 주지훈

2023.07.21

비 오는 날의 하정우 그리고 주지훈

하정우와 주지훈은 영화 <비공식작전>에서 액션보다 정서를 맞춘다. 함께라면 어떤 비관 속에서도 절묘한 낙관을 구해낸다.

하정우가 입은 셔츠는 릭 오웬스(Rick Owens). 주지훈이 입은 화이트 재킷과 셔츠, 바지는 잉크(Eenk).

걷는 남자, 하정우

만년설이 덮인 광활한 아틀라스산맥, 흙먼지 가득한 사막의 모래 도시. 낯선 이국에서 시종 누군가에 쫓겨 곡예하듯 도망치던 남자는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간신히 걸음을 옮기며 푸념을 내뱉는다. “너무 피곤하다, 진짜.” 해는 이미 졌고, 주변엔 아무도 없고, 차는 폭발한다. 영화 <비공식작전>의 1차 예고편 마지막 장면이다. 이 영화는 1980년대 중반 레바논에서 발생한 한국 외교관 납치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하정우가 맡은 역할은 미국 발령이라는 희망찬 포부를 안고 험난한 구출 작전에 자원하는 외교관 ‘민준’. 외무부의 흙수저인 그는 얄팍한 계산 아래 스스로 고생길에 올라 그곳의 택시 기사 ‘판수(주지훈)’와 함께 위기를 헤쳐간다. 1분 남짓한 트레일러 영상만 봐도 얼마나 힘든 촬영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제작 보고회에서 김성훈 감독은 “인간의 몸에서 저렇게 물이 많이 나올 수 있는가” 싶을 정도였다며 땡볕에서 뛰고 매달리며 고생한 배우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에 대해 정작 하정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한다. “카 체이싱, 와이어-총격 액션, 폭발까지, 웬만한 액션 신은 다 있죠. 뭐, 목숨을 걸 정도만 아니면 제가 직접 했어요. 고생보다는 모로코라는 나라가 주는 느낌이 특별했어요.”

데님 재킷은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at Yoox).

영화는 1987년 레바논 베이루트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모로코의 세 도시를 누빈다. 하정우는 지난해 <수리남> 촬영이 끝난 직후 <비공식작전>에 합류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두 달간 <수리남>을 찍고 열흘간의 격리 기간을 보낸 후 짐을 싸서 파리로 갔어요. 거기서 전세기를 타고 바로 탕헤르로 넘어가는 일정이었죠. 그리고 3일 후부터 촬영이 시작됐어요.” 그때부터 5개월간의 긴 타향살이가 시작됐다. 그가 모로코에 처음 도착한 2월은 겨울이었다. 두툼한 패딩 점퍼를 입고 다닐 정도로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전력이 부족해 전기난로 하나만 켜도 전기가 나가기 일쑤. 마침 라마단 기간과 겹쳐 한동안은 식사도 하기 어려운 상황.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의지할 데라고는 서로뿐. 영화 속 민준과 판수가 좌충우돌하며 위기를 탈출하는 것처럼 감독과 배우들은 서로를 굳게 믿었다. “지훈이와는 <신과함께>를 찍으며 처음 만났는데 성격이 잘 맞더라고요. 상대 배우로 만날 땐 신뢰가 가죠. 워낙 감각적인 배우잖아요? 그건 굉장히 눈이 좋다는 뜻이거든요. 현장은 늘 변수가 있기 마련인데 어떤 상황이든 유연하게 대처하죠. 캐치도 빠르고요. 감독님과 지훈이 그리고 저. 정말 셋의 합이 좋았어요.”

두 배우는 작품에 대한 열정만큼 먹고 사는 일에도 진심을 다했다. 주지훈이 소고기로 장조림을 뚝딱 만들어내면 하정우는 수산 시장에서 갑오징어를 사다 오징어젓갈을 담갔다. “한국에선 안 해봤죠. 근데 살아야 하니까…” 하정우가 웃으며 말했다. 근사하고 멋진 모습의 배우들도 카메라 밖에서는 보통 사람이다. 이번 영화 역시 현실적인 이야기라 더욱 공감이 간다. 극한 상황에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희생, 봉사 따위의 거창한 대의명분보다 각자의 안위가 우선인 법. 김성훈 감독은 <끝까지 간다> <터널> 등 전작에서처럼 거대한 스토리에 잠식되지 않는 디테일한 상황 설정과 입체적인 캐릭터 묘사로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하정우가 영화 참여를 결정한 이유 역시 <터널>의 경험 때문이었다. “주인공 정수는 터널에 갇혀서 하루하루 생존의 몸부림을 치면서도 위트와 여유를 잃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적응해 그 안에서 나름의 엔터테이닝이랄까? 숨 쉴 구멍을 찾아내죠. 인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거기서 발생하는 블랙 코미디가 있어요. 이번 작품 같은 경우도 그런 아이러니한 지점이 흥미로웠고요.”

하정우가 입은 체크 셔츠는 R13(R13 at Beaker), 베스트는 갤러리 디파트먼트(Gallery Dept. at Mue), 목걸이는 크롬하츠(Chrome Hearts). 주지훈이 입은 블랙 데님 재킷은 잉크(Eenk).

흔히 말하는 것처럼 인생은 가까이에서는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하정우의 마음을 끈 영화와 인물들은 늘 그랬다. 그가 연출한 작품은 어떤가. <롤러코스터>가 위태로운 비행기 안 각양각색 인물들의 한바탕 소동극이라면, <허삼관>은 개헤엄을 쳐서라도 험난한 인생의 파도를 넘어보려 애쓰는 애처로운 한 가장의 코믹 휴먼 드라마다.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위기는 기회가 아닌 그저 위기일 뿐. 중요한 건 어떻게든 견디고 살아내는 것이다. 김성훈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하정우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드러냈다. 본인이 연출 여부를 완전히 결정하기도 전에 모니터를 핑계로 하정우에게 먼저 초기 대본을 건넨 것. 그는 “부담을 나눠 질 동료가 필요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하정우는 흔쾌히 제안에 응했다. <터널>이 그러했듯 부족함이 있다면 같이 만들어가면 그만이었다. 뜻이 맞는 두 사람은 각색 단계부터 자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공교롭게도 둘은 이름도 같다. 하정우의 본명 역시 김성훈. “영화는 감독님이 만드시는 거고 전 주연배우로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아이디어를 냈죠. 감독님이 그걸 잘 정리해주었고요.” 코로나로 인해 약 1년간 촬영이 지연된 건 오히려 행운이었다. “덕분에 충분한 시간을 얻었죠. 원래 시나리오는 묵직한 얘기였어요. 실화 바탕이라 실제 사건과 영화적 허구 사이의 기준점을 잡기 어려웠죠. 판수와 민준이 공항에서 도망쳐 외딴길에 차를 세우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 그게 처음과는 완전히 다르게 구성됐어요. 그 장면을 다시 짜면서 이 영화의 전체적인 톤 앤 매너를 발견하게 됐고요.”

<터널>이 갇힌 공간, 어둠 속에서 진행되는 하정우의 원맨쇼라면 <비공식작전>은 탁 트인 공간, 다채로운 빛의 향연 속에서 펼쳐지는 두 남자의 버디 무비다. 전작과는 정반대다. 오랜만에 촬영 현장에서 다시 만난 김성훈 감독에 대해 하정우는 ‘더 집요해졌다’고 말했다. “전 모든 사람에게 다 예술적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재능을 얼마나 집요하게 펼쳐내느냐 하는 것의 싸움이죠. 매 컷을 찍어내는 집요함. 준비도 엄청났어요. 로케이션 현장만 봐도 그래요. ‘와, 어떻게 이런 장소를 찾아냈지?’ 그냥 배우가 그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스토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김성훈 감독과 대부분의 작품을 함께 작업해온 김태성 촬영감독은 웅장하고 스펙터클한 배경과 액션 장면을 시원하게 전달하면서 인물들의 감정 또한 세밀하게 포착했다. <한산: 용의 출현> <명량>에서 십분 발휘된 김태성 촬영감독의 특기다. 촬영 팀이 그림을 위한 완벽한 빛을 기다리는 동안 배우들은 각자 시간을 보냈다. 하정우는 아예 숙소 옆에 따로 작업실을 얻어 그림을 그렸다. “모로코의 풍경은 참 격이 있어요. 반듯하죠. 직사각형으로 되어 있고, 돔 형태로 된 지붕이 있고, 바닥엔 카펫이 깔리고. 평화롭고 조용한 아침의 나라 같아요. 그 땅의 냄새, 시간마다 울리는 기도 소리… 그 안에서 생활하면서 저뿐 아니라 많은 분이 영감을 얻었을 거라 생각해요.” 지난해 11월 그는 이곳에서 작업한 그림을 모아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표갤러리에서 열린 전시다. 아라베스크 패턴과 도자기의 둥근 모양, 풍부한 색감으로 칠해진 그림은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로브는 그렉 로렌(Greg Lauren at Boontheshop), 데님 팬츠는 팜 엔젤스(Palm Angels).

올 초 그는 주지훈과 함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뉴질랜드의 대자연을 누비며 미션을 수행하는 <두발로 티켓팅>이다. “기획안을 받았는데 ‘재밌겠다’ 싶었어요. 예전에 했던 <577 프로젝트>가 생각나기도 했고요. 마침 지훈이도 제안을 받았다기에 ‘우리 한번 해보자’ 했죠.” 하정우는 2011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본인이 한 공약(상을 받게 되면 국토 대장정 길에 오르겠다) 때문에 서울에서 해남 땅끝까지, 무려 577km를 20일간 걸었던 전례가 있다. 이번 뉴질랜드 여행 촬영도 만만치 않은 극기 훈련이었다. 12만 보 걷기, 일주일간 44km 라이딩, 와이너리에서의 워킹 홀리데이… “그렇죠.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하하. 그 정도로 힘들 줄은 몰랐거든요. 게다가 쉬는 시간 없이 계속 촬영이 이어지니까 만만치가 않더라고요.” 아무래도 그는 사서 고생하는 타입이다. <비공식작전>의 민준처럼 도무지 몸이 편할 새가 없다. 하정우가 ‘걷기 전도사’라는 건 이미 꽤 알려진 사실.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에세이를 쓰기도 한 그는 2018년 12월 하와이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풀코스를 완주하기도 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비공식작전>에 이어 개봉하는 영화 <1947 보스톤>에서는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를 연기한다. “그건 2020년 2월에 촬영이 끝났어요. <비공식작전>보다 먼저 찍었죠. 코로나 때문에 모든 제작이 멈춘 그해에 딱 10개월 쉬었군요.” 앞으로 개봉을 기다리는 영화만 네 편이다. 얼마 전 <하이재킹>의 촬영을 마친 그는 가을부터 촬영에 들어갈 다음 연출작을 준비하고 있다. 감독 하정우의 새 영화 <로비>는 한 연구원이 국가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펼치는 로비 골프 난장 소동극이다. 골프 얘기가 아니라 골프를 치는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포커스를 맞춘다. “제가 코로나 기간에 처음 골프를 배웠는데 스포츠 중에 이것만큼 일희일비하는 종목이 없더군요. ‘라운드를 한 번 돌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얘기처럼 골프장에만 가면 사람이 다 변해요. 그게 너무 웃긴 거예요. 코미디가 따로 없어요.” 풀밭에서 골프를 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일견 평화로워 보이지만 골프공 하나가 쏘아 올린 후폭풍은 거세다. 하정우식의 부조리극, 블랙코미디는 또 어떤 모습일까?

감독으로서 그의 목표는 하나다. 진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 극장에 들어선 순간 현실의 모든 고민과 시름은 잊히고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그 세계는 현실과 비슷하기도 하고 머나먼 미래이거나 과거일 수도 있고, 아주 생경한 풍경이거나 전혀 엉뚱한 상황일 때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관객은 스크린이라는 상상의 거울을 보며 울고 웃는다. 그건 하정우가 생각하는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는 배우로서 충실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연기를 시작한 지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2002년 <마들렌>으로 상업 영화 데뷔를 했으니 매체 연기는 20년이 훨씬 넘었군요. 1999년 군대에서 군 영화를 찍고,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까.” 돌아보면 긴 시간이다. 그런 자신에게 하정우가 하고 싶은 말은 ‘잘 버텨왔다’. 지금도 걷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는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기만의 속도로 걷고 또 걷는다. 할 수 있는 일이 오직 걷기밖에 없던 무명 시절부터 역대 최연소 1억 관객 배우가 된 지금까지,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영화’ 덕분이다. 올여름 그는 관객을 시원한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극장 밖은 폭염과 폭우와 스트레스의 폭격이 터지는 전쟁터일지라도, 일단 재밌게 즐기시길! 이미혜 칼럼니스트

호흡을 맞추는 남자, 주지훈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진행되는 인터뷰에서는 최초의 의도와 최후의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런 대화는 영화를 다각도로 보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런데 <비공식작전> 제작 보고회를 마치고 마주 앉은 주지훈은 자꾸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했다. 공기, 정서, 바라보는 방향 같은 것들. <비공식작전> 예고편에서 판수는 “여기선 누굴 믿고 말고 고민할 필요가 없어. 아무도 믿으면 안 되거든”이라고 의미심장한 대사를 날리지만 주지훈에게 이번 영화 현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었던 듯 보인다. 주지훈과 김성훈 감독, 배우 하정우 사이에는 교집합이 있다. 주지훈은 김성훈 감독과 <킹덤>을 함께했고, 하정우와 <신과함께> 시리즈와 예능 프로그램 <두발로 티켓팅>에서 동고동락했다. 공식적으로 함께 한 작업이 이와 같을 뿐, 비공식적으로 이들이 주고받은 것은 가늠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비공식작전>은 방구석 숟가락 숫자까지 아는 프로페셔널들이 작정하고 한 방향으로 달려간 영화다.

블랙 페이턴트 재킷과 팬츠는 잉크(Eenk).

<비공식작전>은 1987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일어난 외교관 납치 사건을 모티브로 창작한 영화다. 배경은 레바논 베이루트지만 실제 촬영은 모로코에서 70%가량 진행했다. 타들어갈 듯한 열기가 부유하는 도시. 촬영 당시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물었을 때 주지훈은 ‘아름답고 즐거운 기억’이라는 답변부터 내놓았다. “아예 집을 구해서 가전제품까지 다 구비해놓고 음식도 해 먹으면서 완전한 생활을 했어요. 유학이나 이민을 가는 큰일이 아니면 3~4개월 동안 해외에서 이렇게 지내기 힘들잖아요. 영화를 떠나서 색다르고 즐거운 일 아닌가 해요. 어제도 사진 찾아봤어요. 한 번씩 돌아보게 되는 좋은 기억이에요.” 아프리카 대륙이라는 낯선 환경은 극도의 몰입과 ‘강제적 동력’을 제공했다. “가볍게 얘기하면 MT 가면 촛불 들고 울면서 더 끈끈해지잖아요(웃음). 그런 감정이 절로 올라오는 현장. 비빌 언덕이 서로밖에 없으니까요.” 영화는 외교관 ‘민준’과 현지 택시 기사 ‘판수’의 극한 위기 탈출 과정을 그린 영화이고, 실제로는 김성훈 감독과 하정우, 주지훈의 극한 생존기였다.

주지훈은 관계성을 설명하며 ‘동료’라는 단어도 부족해했다. “평생의 동반자라고 해야 할까요. 작품이 아니라도 아무 때나 전화하고 얼굴 보는 사이예요. 아이러니하게도 김성훈 감독님은 저를 육체적으로 제일 힘들게 하는 감독님이에요. 그런데 감독님의 집요함과 완벽주의가 사랑스럽고 감동적이에요. 사실 프로 운동선수도 얼마나 고되겠어요. 하지만 사랑하니까 그 일을 하는 거잖아요.” 그 집요함이 결과물을 더 낫게 할 거라는 믿음 때문에 고됨을 감수하느냐 묻자 주지훈은 결과물조차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작품을 사랑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넣어 몰두하는 모습이 경이로워요. 우리가 가는 길이 힘들다고 느껴도 김성훈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생살을 깎아서 만든 길일 거예요. 그게 너무 느껴져요.” 어떤 전력은 그 자체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비공식작전> 포스터가 보여주듯 이 영화는 두 남자의 버디 무비다. 인생 최고의 버디 무비를 물었을 때 그는 망설임 없이 <태양은 없다>를 들었다. 두 배우의 이름 석 자만으로 청춘의 냄새에 가슴이 요동치는 영화. 주지훈은 버디 무비의 미덕에 대한 소견을 이어갔다. “두 인물을 팔로우하면 장르의 다양성이 확보돼요. 예를 들어 장례식장에서 슬프지만 웃긴 면도 있잖아요. 진실은 그런데 영화로 담기 쉽지 않거든요. 근데 버디 무비는 큰 주제 의식을 가지면서도 공감 지점을 만들어내요. 첩보물인데도 풀어지거나 어설픈 모습이 있죠. 이런 지점이 리얼리티를 갖게 해요.” 버디 무비에서는 상대 배우가 환경적 요소가 되어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해간다. <비공식작전>에서도 하정우와 주지훈은 ‘버디’로서 생존을 위한 짐을 나눠 진다. 주지훈은 하정우와 합을 맞춘 경험에 대해 “뭔가를 던졌을 때 상대방과 융합되면서 어떤 형태가 만들어지는 기분이 든다”는 표현을 했다. 다시 하라면 못하는, 방법이나 요령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몰입의 경지. “어릴 때는 솔직히 노력을 드러내고 칭찬받고 싶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내 파트 외에 다른 파트의 사람과 무엇을 하는지 명확히 알아가면서 종합예술로 일컬어지는 영화라는 장르에 경외심이 생겨요. 피자도 정통 이탈리아 피자, 미국식 피자, 한국식 퓨전 피자가 있잖아요. 배우마다 스타일이 달라서 맞고 틀리고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잘 맞다, 조금 다르다는 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잘 맞았죠. 그냥 서로 공기로 알아요. ‘왜 컷을 안 할까?’ ‘더 가볼까?’ 이런 잡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문득 주지훈은 앞서 하정우와 진행한 <보그> 화보 촬영을 비유로 덧붙였다. “얼굴을 겹쳐 찍을 때 서로가 안 보이잖아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표정이 비슷하죠? 느끼는 공기가 같은 사람들 같아요.”

재킷과 티셔츠, 데님 팬츠와 신발은 디젤(Diesel).

주지훈은 공기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정서가 일치하는 신기한 순간을 여러 번 겪었다. 예고편에 등장하는 “판수 형, 도와주세요” 장면도 수학적으로 분석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동선을 짜놓긴 하지만 결국 동일한 정서를 찾아낸 순간들. “아이맥스 카메라가 아니면 사실 장비는 다 똑같아요. 그런데 결과는 참 다르죠? 어떤 액션 영화는 누가 이겼으면 좋겠다 싶지만 어떤 영화는 보고 있으면 아파요. <아수라>가 그랬어요. 그때 (정)우성이 형이랑 김성수 감독님에게 물어봤어요. 조명을 어떻게 치고 어떤 렌즈를 어떤 화각으로 찍으면 관객이 아프다는 법칙이 있느냐고요. 둘 다 ‘그런 건 없다!’고 답했죠. 감독이라는 선장이 관객이 통증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고, 그때부터 모두 고민했던 거예요. 감독으로부터의 낙수 효과죠. ‘실력도 실력이지만 열정과 태도가 중요한 바닥이구나’ 생각을 많이 하죠.”

과거 여러 인터뷰에서 주지훈은 연기하는 방식에 대해 작가나 감독과 논의하는 시간을 많이 보낸다고 얘기했다. 이번 현장에서는 특히 편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감독님이 의상, 헌팅 장소 다 보여주세요. 서로 묻고 의견도 내죠. 그게 참 어려운 일이거든요. 신뢰가 없으면 오지랖이나 월권이 될 수 있잖아요. 대본 보다가 ‘감독님, 이 장면에 선배님 어떤 옷 입고 나오세요?’ 얘기하면 ‘아직 안 정했는데 아이디어 있어요?’ 하고, ‘올림픽 유치할 때니까 이런 옷 입으면 재밌지 않아요?’ ‘재밌겠네, 사진 보내줄 수 있어요?’ 하고요. 그러면 전 사진 찾아 보내고 그랬어요.” 이런 에피소드는 주지훈이라는 배우가 캐릭터를 주조해내는 비법처럼 들린다. 영화가 창조한 세상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물론 그 스스로도 영화 속 시점에 있을 법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다소 사기꾼 기질이 있는 택시 기사 판수는 체크무늬 바지와 지그재그 패턴 셔츠를 입고 붉은 가죽 재킷을 걸치고 나온다. 얼마 전 칸영화제에서 공개된 영화 <탈출: 프로젝 트 사일런스>에서도 그는 황금색 브리지를 넣은 장발을 휘날리며 구르고 뛰고 있었다. “내부 메소드와 외부 메소드를 나누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게 어딨어요. 말투와 외관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 보이잖아요. 머리가 짧으면 단정한 걸 좋아하는구나, 머리를 염색했으면 화려한 걸 좋아하는구나 이런 것들요. 기본 틀은 대본에 다 적혀 있죠. 판수는 적극적으로 세일즈 하는 친구니까 화려한 면을 가져가도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러고 보면 주지훈이 극 중에서 빼어나게 차려입을수록 비릿한 기운이 풍겼다.

<비공식작전>은 한여름 극장 한복판에 걸린다. 세상의 관객 수만큼 취향은 다양하지만 이때만큼은 영화에 바라는 바가 같아진다. 창작자들이 치밀하게 직조한 세계에서 잠시나마 뜨겁고 끈적한 여름을 벗어나려 한다. 사실 극을 말할 때 재미보다 큰 단어도 없다. ‘잘 넘어가는 대본’에 주지훈의 재미가 있다. “저는 되게 명확해요. 일단 대사가 구어체여야 하고요. 그런데 잘 넘어가는 대본이 쉬운 얘기만 의미하진 않아요. 역사의 일부분일 수도 있고 과학적인 얘기일 수도 있어요. 근데 잘 쓴 대본은 그 분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봐도 쉽게 이해가 돼요. 흥행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그래도 작품의 만듦새에 항상 후회가 없어요.” 재미를 좇은 주지훈의 선택은 하반기에도 <탈출: 프로젝 트 사일런스> <지배종> <중증외상센터: 골든 아워>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물론 신뢰로 시작된 <비공식작전>처럼 선택의 이유는 점점 더 다양한 양상을 띤다. “<젠틀맨> 같은 경우는 예산도 작았는데, 그런 중소 영화가 많아져야 건강하거든요. 그런 마음에서 재밌는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제가 좋아서 하는 작품도 있고, 관객이 좋아해주실 것 같아서 하는 작품도 있어요. 점점 관객과 호흡에 대해 생각을 더 하게 돼요. 관객이 있어야 배우가 있고 작품이 있으니까요.”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주지훈이 입은 화이트 스트라이프 포인트의 재킷과 팬츠는 디젤(Diesel). 재킷과 티셔츠는 디젤(Diesel). 하정우가 입은 데님 재킷은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at Yoox). 로브는 그렉 로렌(Greg Lauren at Boontheshop), 데님 팬츠는 팜 엔젤스(Palm Angels), 목걸이와 반지는 에르메스(Hermès).

관객과 호흡하고 싶은 배우는 인터뷰 자리에서도 상호작용을 중심에 두었다. 무언가를 설명하는 주지훈은 공작새가 깃털을 펼치듯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동안 인터뷰를 살펴보면서 나는 그가 절묘한 비유에 능하고, 대구를 이루는 문장을 자주 구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껄껄 웃으며 이야기를 재밌게 전달하고 싶은 욕망이 있음을 인정했다. “이왕 하는 인터뷰인데 같이 즐기고 웃으면서 하는 게 좋잖아요. 한 번 사는 인생,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고요. 저도 상대도 즐겁고 싶은 욕망 중 하나죠. 그러다 보니 제 머릿속을 정확히 전달하고 싶고요.” 그의 어휘력은 과거에 탐독했던 덕분이고, 지금은 1년 내내 읽어 내려가는 대본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활발한 언어 감각은 인터뷰 자리에서도 극 중에서도 감정과 감성을 풍성하게 한다.

비유의 장인에게 마지막으로 <비공식작전>을 비유해달라고 청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수영을 하고 싶어서 동남아 호텔에 갔다고 쳐요. 근데 내내 비가 내리죠. ‘돌아갈까?’ 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수영은 해보자’ 하고 들어가잖아요? 그러면 그만한 기분이 없어요. 우주에 혼자 있는 듯한데 물속에서 빗소리가 톡톡 느껴지죠.” 영화 언어로 해석하자면 ‘영화가 진지해 보이지만 사건 중심이 아니라 인물 중심이라 위트 있고 유쾌한 영화다. 물론 주제 의식도 놓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영화 홍보 일정으로 급히 인터뷰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주지훈은 완벽한 비유에 도달하길 포기하지 않았다. “또 한 번 비유를 해보자면, <비공식작전>은 저 같달까요. 실제로 만나기 전에는 날카로워 보이지만, 막상 만나보면 수다쟁이에 수더분하잖아요. 우리 영화는 그렇습니다(웃음).” (VK)

포토그래퍼
최용빈
스타일리스트
이현아(하정우), 양유정(주지훈)
헤어 & 메이크업
임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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