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가꾸기의 즐거움
저자가 책에서 언급한 또 다른 책을 연이어 읽는 건 독자로서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다. <식물적 낙관>(문학동네, 2023)에서 작가 김금희는 자신이 처음 알게 된 정원사 겸 작가 헤르만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웅진지식하우스, 2013)과 1919년 교외 농가로 이사하며 “런던 모두를 합친 것보다” 좋다던 버지니아 울프의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2020, 봄날의책)을 언급한다. “최근에 작가로 살아가면서 무엇이 가장 힘든가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고독이 요구되는 점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쓰는 행위란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을 비평하고 객관화하는 것이니까. 그 서늘한 거리감은 상시적이고, 고립감과 닮아 있기도 하다. 어쩌면 작가뿐 아니라 모든 내면 지향의 인간들이 느낄 고독감 앞에서 어떻게 정원의 풍경들, 식물들은 내밀한 친구로 남아 있을 수가 있을까?”(<식물적 낙관> 52~54쪽) 작가는 그 해답을 식물을 돌보고 식물에 의지하며 황폐한 마음과 고독을 돌아본 자신보다 앞선 작가들에게서 찾았던 게 아닌가 싶다.
이들의 뒤를 좇으며 나는 헤세의 위의 책의 또 다른 번역본으로 짐작되는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반니, 2019)을 읽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저항하며 긴긴 망명 생활을 했던 그에게 정원은 명상과 고독, 노동과 휴식,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아늑하고 아름다운 거처였다. 무엇보다 그가 그토록 많은 식물의 이름을 꿰고 있다는 게 놀라웠고, 한때 포도 농사로 생계를 이어갈 만큼 정원 노동에 일가견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새로이 알았다. 특히 여름과 가을 사이를 무척이나 좋아했다는 것도.
“달콤한 성숙함이 돌연 시들고 죽을 수 있는 것처럼, 이 아름다움이 얼마나 덧없고 빨리 작별을 고하는지 알고 있다. 이 늦여름의 아름다움 앞에서 탐욕을 부린다. 이 풍요로운 여름이 내 감각에 제공하는 모든 것을 보고, 느끼고, 냄새 맡고, 맛보고 싶다. 이처럼 갑작스러운 소유욕에 사로잡혀 휴식도 잊은 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 계절의 모습을 끌어모은다. 그리하여 다가오는 겨울날에도, 심지어 나이가 들어서까지도 간직하고자 한다. 평소에는 소유욕이 그다지 강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고 쉽게 놓아주는 편이지만, 지금은 온통 붙들고 싶은 열망에 괴로워한다. 그런 내 모습에 혼자 싱긋 웃을 수밖에 없다.”(<정원 가꾸기의 즐거움>, 66쪽)
소유욕과는 다르게, 그가 “인생의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수십 년 동안 지니고 있던 몇 안 되는 물건 중 하나”(160쪽)가 있다. 바로 평생을 함께했다고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주머니칼이다. 서른쯤 되던 해, 그는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겠다는 나름의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고 원예용 연장을 한가득 들이기 시작했다. 주머니칼도 그때 처음 얻은 것이다. “이 칼이 장차 젊은 시절에 내가 소유한 모든 것들, 즉 집과 정원, 가족 그리고 고향 중에서 유일하게 내 곁에 머물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163쪽) 그 칼의 쓰임은 정원을 가꾸는 것뿐이 아니었다. “기나긴 망명 기간 동안 겨울이면 추운 방 안에서 작은 벽난로 앞에 앉아 편지와 선물들을 불태웠다. 장작을 불 속에 넣기 전에 주머니칼로 조각하듯 장작 여기저기를 다듬었고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나의 삶과 야망과 지식과 자아가 천천히 송두리째 불타서 순수한 재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166쪽) 그렇게도 오랫동안 손에 익은 물건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을 때 그는 탄식한다. 그리고 자신이 딛고 서 있다고 믿어온 철학과 운명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의 기반이 실은 얼마나 약한지를 다시금 깨닫는다.
“다른 모든 이들처럼 나도 이 질서 정연한 자연의 순환을 당연한 일이자 근본적으로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씨앗을 뿌리고 수확을 할 때, 땅 위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독 인간만이 이런 순환에서 빠져 있고, 무한한 순환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개인적인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려 하는 것이 참으로 기이하지 않은가, 생각하곤 한다.”(17쪽) 그 기이함이 부른 참극, 전쟁의 비극 속에서 헤세는 고독했다. 하지만 생사의 순환을 지켜보고 일궈온 이는 끝내 고립되지는 않으리라. 이 책이 다음의 문장으로 마무리되는 것만으로도 얼마간의 안도가 되는 것이다. “내가 고독 속에 계속 머물렀더라면, 다시 한번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결코 카사 카무치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175쪽) 카사 카무치. 헤세가 12년간 살았던 집, 정원을 돌보며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유리알 유희>를 탈고한 곳. 고독이 켜켜이 쌓여 있었을 그 오랜 삶의 터전과 작별하며 그는 또다시 새로운 정원으로, 생의 안식처로 향했다. 헤르만 헤세라는 한 사람, 그의 작품의 거대한 뿌리는 식물의 그것과 얽혀 생장하고 뻗어나갔으리라.
- 포토
- YES24, Pexels, Unsplash
추천기사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