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뷰티에 대한 아주 객관적인 시선
세계적인 롤모델이자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것의 정수로 칭송받는 K-뷰티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서구의 찬양과 스스로에 대한 고찰, 두 가지 시선으로 살펴본 한국 뷰티 월드의 현주소.
GREAT SHIFT
7년 전 오늘, 나는 <보그 코리아> 창간 20주년 기념호를 마감 중이었다. ‘K-인스피레이션’이라는 테마 아래 모든 기자가 특별한 이슈를 기획했는데, 뷰티 팀은 K-뷰티의 캐릭터를 대표하는 10개 화장품을 <보그> 표지로 디자인한 자개 박스에 담아 전 세계 100명의 오피니언 리더에게 보냈다. 빅토리아 베컴, 리사 엘드리지, 구찌 웨스트만, 웬디 로웨 등의 인플루언서와 전 세계 <보그> 뷰티 디렉터에게 말이다. 기획부터 실행까지 180일이 넘게 걸렸고, 해외 인맥이 총동원된 수고스러운 작업이었다. “공명심인가, 자긍심인가?” 누군가 내게 이 작업의 목적을 물었을 때 ‘노파심’이라고 답한 기억이 난다. 비비 크림과 마스크 팩으로 국경을 넘은 K-뷰티가 ‘재기 발랄’한 유행(Fad)으로만 각인되는 것에 위기감을 느꼈고 ‘소코글램’ ‘글로우 레시피’ 같은 재외 전도사들에 의해 편집 해석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고자 했다. 그래서 ‘실제 한국에서 인기 있고, 한국 여성의 케어 루틴을 담은, K-뷰티 스피릿은 이것’이라고 본국발 서신을 띄우고 싶었던 것 같다. 부가가치 높은 스킨케어 제품을 다수 채우고 스토리텔링이 확실한 것만 골라 박스를 꾸렸다. 나의 사랑 한국 화장품이 이벤트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로 스며들길 기도하면서.
3년 전, 뷰티 트렌드 분석 기관 ‘뷰티스트림스’의 코리아 컨설팅 담당 이채원 상무와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파리를 거점으로 세계의 흐름을 수집하는 그녀가 “물길이 변하고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K-컬처와 한국 셀러브리티에 대한 호감이 화장품 소비로 이어진 것은 맞아요. 신드롬에 가까웠죠. 하지만 유행이 생활로 안착하려면 코드가 맞아야 해요.” 지정학적 문제로 중국과 일본 유통에 껄끄러움이 생겼고, 유럽과 미주에서는 K-코드가 자신들과 미묘하게 어긋난다는 반응이라는 것. 우리는 셀럽이 바른 립 제품을 마케팅했지만 그들은 아이섀도와 마스카라를 원했다. “베이스 제품은 컬러가 맞지 않았고, 글로벌 뷰티 하우스까지 힘을 실었던 ‘메이드 인 코리아 쿠션’도 현지화가 쉽지 않았어요.” 색조 화장품 기획자 A는 이 간극을 단시간에 좁히는 건 어려운 도전이었다고 고백한다.
스킨케어? 기초 화장품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선망과 믿음!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전설로 남을 글로벌 K-팝 그룹의 명예와 내 피부에 닿는 화장품 소비는 별개다. 인지도가 곧 선호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너무 뛰어난 OEM, ODM사가 포진한 것도 양날의 검이었다. “한 장에 2,000원 하는 마스크 팩이 국경을 넘으면서 2,500원이 돼야 하는 건 유통의 섭리잖아요? 요즘 해외 브랜드는 직접 한국 OEM 회사로 제품 기획을 의뢰해요. ‘메이드 인 코리아 마스크’라는 수식어만 사가는 거죠.” 덮치듯 다가와 가슴을 설레게 했던 K-뷰티 웨이브는 어디를 향해 흐르고 있었던 걸까?
인생은 예측 불허, 기회는 엉뚱한 곳에서 다시 시작됐다. 전 세계인을 패닉에 빠지게 한 팬데믹이 K-뷰티에 새로운 기회를 보여준 것이다. 대재앙 이전 마케팅의 중심에는 MZ의 소셜 미디어가 있었고, 덕분에 전 세계 화장품 트렌드는 컬러, 컬러, 컬러였다. 하지만 마스크 트러블에 시달리고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을 직시할 일이 늘어나며 시장은 순식간에 역전됐다. 진정, 보습, 장벽이 핵심 키워드로 급부상했고, 상대적으로 스킨케어의 지식과 노하우가 부족하던 해외 소비자들은 한국의 스킨케어법에 다시 한번 감탄을 쏟아냈다. 국경이 막히고 세상이 멈춘 것 같았던 암흑의 3년 동안, 순하고 즉각적인 효능을 자랑하는 한국 화장품이 이국의 화장대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었다. 참으로 새삼스러운 부활이었다.
비건 화장품 브랜드, 믹순의 황주업 대표는 지난 4개월간 세계를 일주했다. 파리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 입점 논의부터 러시아, 일본, 카이로, 모로코, 미국, 카자흐스탄, 벨기에, 인도 등 각종 페어와 엑스포, 팝업 등에 초대됐기 때문이다. “2년 만에 방문했는데 현지 반응이 완전히 다르더군요.” 그들은 한국의 ‘속 보습 케어’에 감탄하고 있었다. “팬데믹 이전에도 분명 존재했고, 열정적으로 제안한 루틴인데 이제야 비로소 ‘닿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채원 상무도 “이제 키질이 끝났다”며 긍정의 사인을 보내왔다. 진심을 다해 버텨온 알토란 같은 여러 한국 브랜드가 유럽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 “특히 합리적 가격대의 비건, 클린, 내추럴 화장품이 어필하고 있어요.”
한국 뷰티의 자존심, 럭셔리 스킨케어 브랜드는 어떨까? 판단과 행동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빅 브랜드도 이미 몇 년 전부터 시장조사에 박차를 가하며 개보수 중이다. 지난해 9월 앰배서더 로제를 통해 ‘흙, 눈, 꽃’의 세계관을 공개한 설화수. 그들의 슬로건은 ‘다시 피어나다’였다. 얼굴을 터치하거나 화장품 패키지가 등장하지 않는 이 뷰티 영상은 2023년 7월 현재 조회 수 250만을 앞두고 있다. 설화수 글로벌 마케팅 디렉터 이기항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의 협업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한다. 문화유산을 알리는 파트너십을 기념하는 갈라 디너였지만 뉴욕의 심장을 앰버 컬러로 물들이고 나니 콧대 높은 현지 인플루언서들이 앞다투어 러브콜을 보내왔다. “설화수를 써보고 싶어!” “이런 브랜드의 제품은 분명 좋을 거야!” 선망과 믿음을 얻기 위해 자본이 할 수 있는 호객 중 가장 압도적으로 우아했다. “팬데믹을 겪으며 웰빙 트렌드도 변했어요. 보여주기식 스타일이 아니라 진짜 건강한 행복을 추구하는 ‘가치’ 소비가 감지됐죠. 인삼 원료에 대해서도 새삼 더 호감을 표하고 있어요. ‘최상의 자연 원료’로 인식하고, 포근한 흙의 기운이 느껴지는 ‘얼시 아로마 향’이라며 지지를 표하더군요. 인삼 성분으로 업그레이드된 6세대 ‘윤조 에센스’에 큰 기대를 걸고 있어요.”
지금 우리가 발을 담근 물은 ‘찐’이다. 뇌와 심장을 붕 띄워놓고 가차 없이 뒷걸음치던 파도가 아니라 짠맛, 단맛, 쓴맛이 다 담긴 거대한 바다의 중심으로 노 저어 나아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물론 숙제는 남아 있다. 글로벌 뷰티 그룹은 이미 제2의 중국, 아니 그 이상이라는 인도와 아프리카 분석을 마치고 액션을 시작했다. 또한 노령화되는 세계 인구 탓에 안티에이징을 선점해야 다음, 그다음이 가능하다. 하지만 잘될 거라고 믿는다. 7년 전 노파심은 기우에 불과했음을 알게 됐으니까. 7년 후 <보그> 창간 기념호에서는 어떤 K-뷰티 기사를 보게 될까? ‘어떻게 A 그룹은 글로벌 넘버원이 되었는가’ ‘한국 화장품 투자 전쟁’ 같은 기사를 리포트할 수 있는 영광이 다시 한번 주어지길 고대한다.
백지수 <보그> 뷰티 칼럼니스트
EXCHANGING GLANCES
한국 대중문화를 찬양하는 마니아들에게는 런던의 한류 제품을 판매하는 편집숍 ‘소코랩(SOKOLLAB: South Korean Collaboration)’만 한 장소가 없을 것이다. 다양한 용품을 구비한 이곳에서는 <보그 코리아> 과월호와 블랙핑크, 방탄소년단, 김우석 같은 한국 연예인의 앨범과 사진첩부터 숯 성분의 두피 치료제와 당근을 함유한 수분 크림까지, 한국의 다양한 뷰티 제품을 접할 수 있다. 몇 블록 떨어진 K-뷰티 스토어, ‘글램 터치(Glam Touch)’는 식초 성분 샴푸와 자외선 차단 기능을 탑재한 파우더 타입 파운데이션까지 온갖 신기한 제품을 판매한다. 그 지척에는 ‘퓨어서울(PureSeoul)’이 있다. 호기심도 많고 비교적 비위가 좋은 뷰티 애호가들이 발효 성분 아이 크림과 달팽이 점액 에센스, 달걀흰자로 만든 클렌징 오일을 구할 수 있는 한류 용품의 천국이라 부를 수 있다.
K-뷰티를 향한 찬가는 주로 서울을 중점으로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퍼졌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국한되지도 않는다. 앞서 언급한 매장 모두 런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열정적인 고객(갓 입문한 사람 또는 한국 문화에 푹 빠진 ‘광팬’일 수도 있다)이 부산스럽게 몰려 있다는 것은 K-뷰티가 이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획기적이고 지속적인 집착 대상 중 하나임을 보여주는 물리적 증거다. 2010년대 초부터 한국에서부터 서구로 서서히 퍼지기 시작한 이 현상은 인디 브랜드뿐 아니라 대기업 브랜드가 화장품을 만드는 방식과 우리 일상까지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시트 마스크, ‘물광 피부’, 이중 세안, 비비 크림, 에센스와 클렌징 오일, 12단계에 이르는 뷰티 루틴 등. 이 모든 것이 K-뷰티를 향한 우리의 열광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1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를 향한 우리의 애정과 갈망은 전혀 시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국 화장품을 다루는 웹사이트, ‘소코글램’을 설립한 한국계 뷰티 전문가 샬롯 조(Charlotte Cho)는 “피부를 가장 먼저 생각하는 한국의 철학이야말로 K-뷰티의 급부상을 이끈 원동력입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녀는 특유의 혁신성이 그 여정에 끊임없는 에너지를 불어넣는다고 강조했다. “유니크한 텍스처, 효능이 뛰어난 고급스러운 성분과 제조법, 패키징, 가성비 면에서 특히 적정한 가격 등 K-뷰티는 한계를 넘어서는 능력치로 잘 알려졌습니다. 이는 서구 스킨케어 브랜드가 한국 기술 및 R&D 기업과 공조해 제품을 세심하게 제조하도록 영향을 줬죠.”
샬롯 조는 K-뷰티 서구 진출의 선봉장이었다. 그녀는 아시아 외의 지역에서 한국의 뷰티 팁을 공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2012년 소코글램을 론칭했다. 깜찍한 패키지 디자인에만 관심을 보이던 초기 회의론자들은 그 제품을 ‘색다른 것’ 정도로만 치부했다. 그러나 샬롯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국의 스킨케어가 단지 수법을 쓰는 정도에 불과했다면 한 철도 견디지 못했겠죠. 하지만 제품이 뛰어난 효과를 입증했기 때문에 뷰티 월드를 뒤흔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자랑스럽게 덧붙였다.
한국 사회의 미적 기준과 성형수술을 치밀하게 다룬 소설, <너의 얼굴을 갖고 싶어(If I Had Your Face)>의 저자 프랜시스 차(Frances Cha)도 이 세계적 변화에 깊이 공명한다.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한 번도 기대하지 않았던 파리의 스토어, 뉴욕의 블루밍데일스 같은 의외의 장소에서 한국 화장품을 자주 마주친다는 것이 아주 흥미로워요. 달팽이 성분의 크림이 화두가 되면서 외국인들이 그 제품에 완전히 매료된 것이 기억에 남는군요. 요즘은 특이한 성분과 제조법에 대한 기대가 크죠.”
이토록 급진적인 기대감이 K-뷰티를 ‘혁신의 실세’ 위치에 오르도록 이끌었다며 글로벌 트렌드 예측 기관, 스타일러스(Stylus)의 뷰티 부문 수석 리사 페인(Lisa Payne)은 이야기한다. 그녀는 이런 찬사가 줄지 않고 있다는 점을 상기했다. “오히려 지금 한국은 과거보다 더 세련되고 미묘하며, 과학적으로 선두가 되는 화장품을 만들어내고 있죠. 신생 브랜드는 K-뷰티 특유의 현대적이고 흥미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탬버린즈는 향수를 독특한 차원으로 이끌고 있으며, 스킨케어 브랜드 믹순은 콩, 병풀처럼 단일 성분을 추구한다고 콕 짚기도 했다. 스킨1004(Skin1004), 헉슬리(Huxley), 아임쏘리포마이스킨(I’m Sorry For My Skin)은 화장품 텍스처에 집중하는 브랜드로 꼽았다. 프랜시스 차 또한 “한국의 자외선 차단제를 자주 선물해요. 업계의 타 제품과는 차원이 다른 제형을 선보이거든요”라며 찬사를 보냈다.
런던의 피부과 의사이자 퓨어서울의 단골 고객 이워마 우켈렉(Ewoma Ukeleghe) 역시 한국 화장품을 깊이 신뢰한다. “아시아계 고객 덕분에 푹 빠지게 됐죠. K-뷰티 제품은 피부 장벽을 회복하고 풍부한 수분을 공급하는 효과가 놀라울 정도예요. 세라마이드, 달팽이 점액, 인삼, 발효 쌀뜨물과 병풀 추출물을 함유한 포뮬러에 특히 매력을 느껴요.”
한국의 대중문화를 깊이 관찰한 <Make Break Remix: The Rise of K-style>의 저자, 피오나 배(Fiona Bae)에 따르면 화장품 포뮬러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오늘날 K-뷰티는 화이트닝과 안티에이징에서 벗어나 ‘성분’에 집중하고 있다. 소비자가 직접 성분을 분석하는 ‘화해’와 같은 애플리케이션이 한국 뷰티 월드의 혁신에 불을 지핀다고.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어요. 소비자들이 한국의 뷰티 브랜드에 성분을 바꾸도록 요구할 정도니까요. 브랜드는 실제로 그 요구 사항을 반영하죠.” 피오나 배는 말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지점 덕분에 럭셔리 코스메틱을 제조 원가에 제공하는 뷰티 브랜드, 뷰티 파이(Beauty Pie)의 설립자 마샤 킬고어(Marcia Kilgore)는 오랫동안 한국 화장품의 열성 팬으로 남을 수 있었다. “한국은 우리가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곳이에요. 그들은 더 좋고 더 뛰어난 제품을 만들기 위해 기존 포뮬러를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죠. K-뷰티의 그런 점을 사랑해요. 또 다른, 극히 이례적인 무언가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을 쏟아붓고 있으니까요.”
펀미 페토(Funmi Fetto) <보그 UK> 컨트리뷰팅 에디터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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