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대중문화예술을 이야기하다 #1
이제 동시대 대중문화예술의 출발은 아시아다. 한국, 일본, 대만, 홍콩,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의 쿨 키즈!
AOI YAMADA
야마다 아오이(Aoi Yamada)는 스스로를 “댄서가 아니라 ‘야마 아오이’라는 개념”이라고 소개한다. “‘직함’을 지우고 개념으로 존재하고 싶어요. 선망하는 아티스트 오카모토 다로(Taro Okamoto)처럼요. 그의 미술관에 가면 조각, 그림, 사진, 여행 가서 쓴 일기와 맛집 기록이 있죠. 저도 그처럼 인생 자체가 작품이 되도록 노력 중이에요.” 아오이는 퍼포먼스뿐 아니라 과감한 의상과 헤어·메이크업으로도 유명해 여러 패션 브랜드와 작업했다. 코로나 시국에 할머니들께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라는 안부를 묻는 취지로 채소를 들고 옛날 가요에 맞춰 춤추는 ‘채소 댄스’를 매일 찍어 올렸는데, 이를 본 스텔라 맥카트니가 협업을 제안했다. 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을 지지하는 스텔라페스트(Stellafest)에 참가해 관련 영화를 촬영했다. 프레드 페리의 캠페인을 촬영할 당시엔 런던 본사를 방문해 직원들 가운데서 춤을 췄다. 이 ‘본사에서 춤추자’ 프로젝트처럼 아오이의 퍼포먼스는 상식을 폴짝 뛰어넘는다. 그녀는 2020 도쿄 올림픽 폐회식에도 섰다. ‘추도’를 주제로 한 퍼포먼스였다. “추도에 대해 굉장히 많이 생각했죠. 하지만 퍼포먼스는 ‘말(단어)’에 얽매이는 순간 끝이기에 말을 초월해야 해요. 결론은 온 힘을 다해 춤췄습니다.”
아오이는 집 근처 댄스 스쿨에 다니다가 15세에 도쿄로 상경해 춤 전문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17세에 지금의 매니지먼트를 만났다. “그 전까지는 오로지 실내 연습이 춤의 전부였죠. 하지만 제가 사랑하는 그림, 패션, 음식이 춤과 섞일 수 있다는 걸 자각하면서 길이 명확해졌어요. 예기치 못한 곳에서 상상 못한 형태로 구현하는 퍼포먼스가 두렵기도 하지만 보람찹니다. 미지의 감각을 열고 시간을 창출하는 기분이죠.”
그녀의 강렬한 퍼포먼스엔 비판도 따른다. 도쿄 올림픽 폐회식 퍼포먼스에도 ‘너무 과감하다’는 댓글이 쏟아졌고, 칸 영화제와 칸 라이언즈에 참석했을 때 젠더 감수성이나 사회적 이슈가 없다는 평을 들었다. “춤뿐 아니라 다른 예술에도 사회적 메시지는 중요하죠. 하지만 그런 요구에 답하기 위해 일부러 만든 작품은 가치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 아티스트라면 말을 초월해 창작해야 하는데, 이런 규칙은 무너지기 쉽죠. 다른 창작자도 비슷한 고민을 할 거예요. 말을 넘어선 미학이 존재할 거라는 확신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오이는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에 출연했고, 8월에 고치에서 댄스 퍼포먼스 ‘Ⅱ ROOT:뿌리×야마다 아오이×오노 류이치’를 연다. 언젠가는 감독 야마다 아오이를 만날지 모른다. “지금은 출연자의 입장이지만, 좋아하는 스태프들과 함께 신나게 영화를 만들 거예요. 스태프들의 점심 식사는 제가 직접 도시락을 싸갈 거고요!”
DAHYE JEONG
촘촘하게 엮인 성실한 시간의 흔적. ‘성실의 시간(A Time of Sincerity)’으로 2022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을 수상한 공예가 정다혜는 전통 말총공예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말총으로 갓이나 탕건을 주로 만든 선조와 달리 정다혜는 토기 모양의 오브제를 즐겨 만든다. 형태는 심플하지만 기법은 과거의 유산 못지않게 정교하다. 얇고 투명한 선이 엮이고 겹치며 탄생한 무늬와 작품의 그림자 역시 신비롭기 그지없다.
‘성실의 시간’은 정다혜의 신혼집 한쪽에 꾸민 2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탄생했다. 채광 좋은 방 안에는 적당한 크기의 작업대와 다양한 형태의 나무틀, 색깔별로 분류되어 묶인 말총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작업 공간은 이 정도면 충분해요. 원하는 말총을 골라서 나무틀 위에 올려놓고 한자리에서 짜기만 하면 되거든요.” ‘성실의 시간’은 오전 7시부터 자정까지 꼬박 한 달 이상을 말총과 씨름한 끝에 얻은 수확이다. “말 그대로 한 올 한 올 엮어 작업해요. 같은 과정을 수만 번 반복해야 하는데 실수하면 전부 풀어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기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죠.” 머리카락만큼 얇은 실은 그런 몰입의 시간이 꽉 채워진 뒤에야 비로소 형태를 띤다. “작품을 출품할 때 수상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계속 되뇌었어요. 고민하고 인내하며 보낸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으니까요.” 다행히 세상은 정다혜의 성실한 흔적에 감탄했고, 화답했다.
정다혜는 대학원에서 섬유를 전공하면서 처음 말총을 접했다. 실을 직조해 천으로 만든 뒤에야 뭐라도 시작할 수 있는 섬유공예와 달리 가늘지만 단단한 말총으로는 처음부터 입체적인 형태로 작품을 만들 수 있어 매력적이었다. 이어 제주 망건 장인과 탕건 장인을 찾아 전통 방식을 익혔고, 선조의 지혜를 체득하려 사료를 뒤지며, 말총으로 만든 유물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전국의 박물관을 쏘다니는 나날이 이어졌다. “말총공예로 만드는 것 중엔 갓과 정자관 말고도 선추(부채 장식), 노리개 등이 있는데, 쓰임에 따라 말총을 엮는 패턴이 다 달라요.” 기록된 자료가 없을 땐? 유물의 패턴을 일일이 기록한 다음 그것을 활용해 자신만의 말총 오브제를 완성했다.
말총공예를 현대적으로 실험한 끝에 맨 처음 탄생한 작품은 모빌이었다. 향을 감싸는 말총 장신구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모빌은 가벼워서 움직임이 좋고, 그림자의 패턴도 멋스러웠다. 기존 용도를 벗어난 말총 오브제에 대한 반응 역시 뜨거웠다. 선사시대 토기를 말총공예로 형상화한 ‘말총-빗살무늬’는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 “단순함 속에 모든 복잡한 기술과 재능, 전통과 역사성을 담았다”는 평가와 함께 만장일치로 수상한 로에베 공예상으로 정다혜의 작품은 바다와 대륙을 넘어 계속 부름을 받았다.
앞으로도 정다혜는 말총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 말총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것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작업이 공예에 한정되지 않고 매번 새로운 의미를 담길 바란다. “섬유로서 말총이 지닌 표현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해요. 구체적으로 말하긴 이르지만 그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이 다음 목표입니다.”
MOFO TATTOO
코즈웨이베이에 있는 모포 타투(Mofo Tattoo) 스튜디오는 홍콩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공간이다. 엘리베이터 버튼 같은 초인종을 누르면, 스튜디오 안에서 작업 중인 타투이스트가 나와 손님을 맞이한다.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스튜디오의 마스코트인 기니피그 두 마리, 장식용으로 사용하는 소변기와 가지각색의 피규어가 보인다.
공간만큼 독특한 분위기를 내뿜는 모포 타투의 레지던트 아티스트는 총 아홉 명이다. (사진 왼쪽부터) 그중 창립자인 칼(Karl), 그의 동업자이자 12년 차 연인 캐시(Cash), 주목받는 타투이스트 탭스(Taps)가 친해졌다. “2012년에 사이클링을 함께 하던 친구와 ‘모포 잉크’란 이름으로 처음 스튜디오를 시작했어요. 그로부터 3년 후 기존 멤버들이 나가고, 2015년부터 모포 타투란 이름으로 새롭게 운영하고 있죠.” 모포 타투의 창립자이자 리더 칼은 3년 전 몽콕에서 코즈웨이베이로 스튜디오를 이전하면서 자신만의 취향으로 공간을 꾸몄다. “2019년까지는 식민 시대 홍콩 특유의 스타일을 추구했어요. 그 뒤로는 좀 더 단순한 공간에 피규어와 토이 컬렉션을 넣어 모포 스튜디오만의 개성을 살렸죠.”
칼은 이 그룹의 리더인 만큼 캐시와 탭스를 포함한 모포 타투의 많은 아티스트를 견습생으로 들였다. 두 사람은 매장 세일즈 어시스턴트로 일하다가, 타투를 배우기 위해 칼을 찾아갔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스튜디오를 운영하다 보니 홍콩에서 젊은 세대가 가장 즐겨 찾는 타투 스튜디오가 된 것. “홍콩은 높은 인구 밀도만큼 정말 바쁜 도시예요. 그만큼 스트레스가 많지만, 이런 환경은 자극이자 원동력입니다. 그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도 홍콩의 타투 시장은 가격이 높게 책정되는 편이라 타투이스트에게는 매력적인 도시죠.”
모포 타투의 멤버들은 낯을 가려서인지 겉으로는 무심해 보이지만, 스튜디오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타투, 홍콩이란 도시, 서로에 대한 애정의 깊이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해 타투의 세계를 알리고 싶어요.” 이들은 주변 나라의 타투이스트와도 활발히 교류한다. “특히 대만은 타투이스트 커뮤니티가 활발하고 유대가 깊어 관련 행사가 많죠. 한국도 점점 타투 문화가 발달하고 있기에 조만간 함께 작업하고 싶어요.” 칼이 말한다. 칼, 캐시와 탭스에게 꿈을 묻자 공통된 답을 했다. “이미 꿈을 이뤘죠. 나만의 스튜디오와 팀이 있고, 세계 다양한 곳을 다니며 작업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하나 더 욕심낸다면 모포 타투가 해외 진출에 성공하고, 평생 창의적인 타투를 선보이는 것이다.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피처 에디터
- 류가영
- 포토그래퍼
- Yusuke Abe(Yard)(Aoi Yamada), 김형상(정다혜), Kiu Ka Yee(Mofo Tattoo)
- 글
- 원영인(정다혜), 김예은(Mofo Tattoo)
- 스타일리스트
- 김베베(Aoi Yamada), 신상철(정다혜)
- 헤어
- Candy(Aoi Yamada), 심혁(정다혜), Marco Li(Mofo Tattoo)
- 메이크업
- Candy(Aoi Yamada), 심혁(정다혜), Cathy Zhang(Mofo Tattoo)
- 프로듀서
- Tomoko Ogawa(Aoi Yam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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