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모든 트렌드를 아우르는 단 하나의 아이템
누군가 2023년을 상징하는 단 하나의 아이템을 묻는다면 무얼 고를 건가요?
아마 모두 다른 대답을 할 겁니다. 2023년은 마이크로 트렌드로 촘촘히 엮인 해니까요. 수 시즌에 걸쳐 이어진 Y2K의 끈질긴 생명력, 모두가 한껏 진지해진 조용한 럭셔리, 덜어내고 드러낸 란제리와 언더웨어 트렌드, 옷 입는 재미를 안겨준 젠더리스 패션 등 모든 트렌드가 주 단위로 탄생하고, 돌아오고 또 변주됐습니다. 과일 이름을 테마로 한 ‘000 걸’ 스타일처럼 틈새시장을 제대로 공략한 트렌드도 있었고요.
여기 이 모든 트렌드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아이템이 하나 있습니다. 2023년을 상징한다기보다는 관통하는 아이템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군요. 주인공은 남성용 언더웨어 역할을 해온 트렁크 팬티입니다.
본격적으로 씨앗을 뿌린 사람은 미우치아 프라다일 가능성이 큽니다. 미우미우의 2022 S/S 컬렉션에서 바지 위로 헐렁한 팬티 라인을 드러낼 때 모든 이가 두 눈을 반짝였죠. 수줍음은 시즌을 거듭하며 말끔히 거뒀습니다. 레이스, 새틴 소재 등으로 최소한의 페미닌함을 챙기는 대신 본래의 투박한 매력을 강조한 기능적인 디자인이 늘기 시작했고요.
2023년에는 팬츠 안에 숨기는커녕 오히려 팬츠의 자리를 대체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헐렁한 쇼츠와 다를 것 없는 디자인 덕에 활용도도 하루가 다르게 높아졌죠.
그렇게 하이패션과 스트리트 스타일을 넘나들며 카멜레온 같은 활약을 보여준 트렁크 팬티. 올여름엔 한층 더 느슨했습니다.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에 슬리퍼를 끌고 나가기도 하고, 버튼다운 셔츠를 매치해 트렌디함을 뽐내기도 했죠. 어떤 스타일이든 멋스러웠습니다. 자유나 해방 같은 거창한 단어를 끌어올 필요도 없었어요. 그 자체로 쿨했거든요. 단장과 나 자신을 그리 무겁고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하는, ‘무심한 멋’의 끝판왕이었죠.
앞으로는 좀 더 공식적으로 패션 아이템의 지위를 공고히 할 듯싶습니다. 첫발을 내디딘 건 놀랍게도, 더 로우입니다. 정교한 테일러링의 재킷과 트렁크 팬티, 상하체의 무드가 완벽하게 분리된 오프닝 룩으로 2023 프리폴 컬렉션의 막을 열었죠. 마크 제이콥스, 다니엘 W. 플레처, N°21 등이 이 레시피에 동참했습니다. 포멀하고 드레시한 아이템을 천연덕스럽게 뒤섞으며 무대를 가로질렀죠. 보테가 베네타, 헤드 메이너처럼 침실과 현실의 경계를 구분 짓지 않은 하우스도 있었고요.
2023년을 기념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아이템도 없습니다. 편안함을 우선시한 옷차림이 얼마나 안정적인 멋스러움을 자아내는지 깨우쳤죠. 괜찮은 블레이저 한 벌만 챙긴다면 선선한 가을바람에도 유효한 스타일입니다. 켄달 제너가 보여준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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