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코스타디노브의 여성복 디렉터, 로라 패닝과 디아나 패닝 인터뷰
키코 코스타디노브는 현재 패션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예 디자이너다. 2016년 자신의 이름을 따 론칭한 브랜드는 7년 만에 ‘가장 컬트적인 브랜드’로 거듭났다. 아직 어디에도 인수되지 않은 키코 코스타디노브는 조용히, 건실하게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해나가고 있다. 릭 오웬스와 아르마니 그룹처럼 주체적인 패션 월드를 꿈꾸면서 말이다.
‘키코 월드’를 구상하며 그가 내디딘 첫걸음은 2018년, 여성복 라인 론칭이었다. 그리고 그는 세인트 마틴을 갓 졸업한 쌍둥이 디자이너, 로라 패닝(Laura Fanning)과 디아나 패닝(Deanna Fanning)에게 그 중책을 맡겼다. 키코 본인은 여성복 라인의 디자인에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 로라 패닝과 디아나 패닝이 키코 코스타디노브라는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불순물을 더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다. 키코의 남성복 컬렉션과 여성복 컬렉션은 한 명의 디자이너가 만들어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이는 로라 패닝과 디아나 패닝이 키코의 세계에 완벽하게 동화되었다는 증거다.
도산대로에 위치한 자그마한 편집숍에서 마주한 로라 패닝과 디아나 패닝은 다정하고 따뜻했다. “입고 있는 카디건이 참 예쁘네요”라는 말을 건네자, 기다렸다는 듯 카디건이 어떤 브랜드 제품인지, 어떤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드는지 한참을 설명했다. 호주 멜버른에서 나고 자란 경험, 컬러와 패브릭에 대한 접근법,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느끼는 책임감에 관한 긴 인터뷰를 마치고 난 뒤에도 그들의 이야기는 한동안 이어졌다.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하는 쌍둥이라니, 참 특별하다. 늘 취미를 공유하고 같은 꿈을 꿨나?
디아나: 같은 꿈을 꿨던 건 아니고 우연에 우연이 겹쳤다. 내가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학사 공부를 시작했을 때, 로라는 로열 멜버른 공과대학교(Royal Melbourne Institute of Technology)를 졸업한 뒤였다.
로라: 그때 나는 런던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경험을 쌓고 있었다. 디아나가 졸업하자마자 우리는 세인트 마틴 석사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다행히 둘 다 합격했다. 나는 여성복을, 디아나는 니트웨어를 전공했다.
한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아주 평범한’ 성장기를 보냈다고 말했다. 언제, 어떻게 패션과 사랑에 빠졌는지 궁금하다.
디아나: 어릴 때부터 우리에게 패션은 일종의 가상현실이자 도피처였다. 우리는 인터넷이 없던 1990년대에 유년기를 보냈다. 그 때문에 <이탈리아 보그>, <로피시엘> 그리고 런웨이 이미지를 모아놓은 매거진을 교과서처럼 읽고 또 읽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스타일닷컴, 패션 스폿(The Fashion Spot)처럼 ‘너드’를 위한 웹사이트나 포럼을 매일같이 들여다봤다.
로라: 할머니가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이다. 우리도 여느 이민자 가족처럼 위성방송을 보며 자랐다. 이탈리아에서는 모든 방송국이 패션을 다룬다. 오래된 런웨이 컬렉션부터 패션 관련 콘텐츠까지. 어릴 때는 그런 방송을 보며 꿈을 키웠다. 사실 호주는 패션에 대한 꿈을 키우기에 좋은 나라는 아니다. 1990년대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고.
패션 공부를 하거나, 브랜드를 시작하기는 더욱 어렵겠다. 어떤 디자이너들을 동경했나?
로라: 멜버른에서 대학에 다닐 때는 일본 브랜드 매장이 무척 많았다. 그때 처음으로 제대로 된 옷을 만져보고 입어봤다. 돈을 모아서 정말 사고 싶었던 옷을 산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친구가 일본 디자이너를 동경했다.
키코도 요지 야마모토의 열렬한 팬으로 유명하지 않나. 둘 모두 키코와 아주 오랜 기간 알고 지냈다. 친구에서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기까지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해달라.
디아나: 나는 키코가 학사 졸업 컬렉션을 발표했을 때부터 그의 팬이었다. 이후 한 스튜디오에서 베틀 앞에 앉아 옷감을 짜는 그를 본 뒤 ‘팬심’은 더욱 커졌고. 내가 니트웨어를 전공했기 때문인지, 그가 남성복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옷감을 짜는 것도 무척 흥미로웠다. 스타일도 좋고, 알아주는 요지 컬렉터이기도 하고.(웃음) 우리 셋은 아주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키코가 머신-에이(Machine-A)와 캡슐 프로젝트를 준비할 때, 그와 처음으로 같이 일하며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리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 뒤로부터는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타이밍도 좋았다. 키코가 브랜드를 확장하고 싶어 할 때쯤, 로라와 내가 졸업했으니 말이다. 키코는 익숙한 얼굴, 친구와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스튜디오의 디자이너 역시 대부분이 수년간 함께해온 사람들이다. 물론 키코와 나는 약혼한 사이라, ‘친한 친구’라 부르기는 애매하지만!
짐작은 하고 있었다. 1980년대에 잠시 연인 사이였던 요지 야마모토와 레이 가와쿠보가 생각나는데.
디아나: 종종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웃음) 드물게 ‘디자이너 커플’이 있지 않나.
한 브랜드에 남성복 디렉터와 여성복 디렉터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당장 생각나는 사례라고는 디올과 펜디 같은 ‘메가 브랜드’뿐이다.
로라: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키코와 매우 닮았다는 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계속 영감을 주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키코는 항상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고, 우리도 늘 키코 여성복을 입는다.
디아나: 브랜드에 대해 설명할 때, 나는 ‘같은 우주에 존재하는 두 세계’라는 식으로 표현하곤 한다. 매우 독립적이지만, 항상 대화를 나누는 두 세계.
독립적인 두 세계라고 표현했지만, 키코 코스타디노브의 남성복과 여성복은 매우 닮았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디아나: 셋 다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경험해서 그럴 수도 있다. 키코와 우리 둘 모두 늘 새로운 것을 찾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의 작업물을 보고 자극을 받는 경우도 많다. 키코의 디자인을 보며 ‘나도 저렇게 해볼까?’, ‘우리는 저거보다 더 잘해야지’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브랜드를 이끄는 3명의 디렉터. 분명 다툼도 있을 텐데?
디아나: 다툼 없이는 발전도 없다. 대화와 토론은 모두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과정이니까. 충돌이 일어날 때 적당한 타협점을 찾기보다는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인디펜던트’ 브랜드로서 늘 세일즈 측면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로라: 때에 따라 다르지만, 스튜디오에는 늘 12명에서 15명의 직원이 있다. 그들의 생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안정적인 환경을 조성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키코 코스타디노브만의 미학’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특정 시대의 의복부터 철학, 관념, 예술 사조는 물론 현재의 트렌드까지, 모든 것이 혼재하기 때문이다.
디아나: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레퍼런스가 필요하다. 디자이너는 과거에서 영감을 얻을 수밖에 없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항상 ‘하이브리드’를 지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재미있는 일이란 서로 다른 것이 충돌할 때 일어나는 법이다.
로라: 물론이다! 패션은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 있다. 한 컬렉션이 끝나는 즉시 인스타그램에는 수십, 수백 개의 ‘관람평’이 쏟아진다. 10년, 15년 전에 있었던 어떤 컬렉션을 예로 들어보자. 당시에 그 컬렉션을 보는 것과 2023년에 그 컬렉션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디테일이 눈에 들어올 것이고, 발견하지 못했던 레퍼런스가 보일 것이다.
키코의 디자인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컬러다. 톱 하나에만 4~5개의 컬러를 쓰는 것은 물론이고, 쇼에서도 늘 파격적인 컬러 매치를 선보인다.
디아나: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은 언뜻 보면 ‘어색한’ 컬러다. 낯설다는 것은 곧 새롭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튜디오에 유독 컬러 활용을 어려워하는 디자이너가 몇 명 있다. 여러 컬러를 섞어 옷을 만들고, 꼭 디자이너들에게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다. 우리가 바라는 반응은 질색이다. 그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지는, 새로운 컬러 조합을 선보였다는 뜻이니까!(웃음)
키코는 종종 ‘고프코어의 시발점’이라고도 불린다. 고프코어라는 용어, 그리고 트렌드에 대한 둘의 의견이 궁금하다.
디아나: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고프코어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아이템을 마구 섞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 마음대로 입을 수 있는, 일종의 면죄부라고 할까?
로라: 약간은 상업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엔 고프코어 스타일만 추구하는 브랜드를 여럿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정작 우리 셋에게 ‘고프코어스러운’ 옷을 만들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좀 더 고프코어식으로 해볼까?” 같은 얘기를 나눠본 적도 없고. 하지만 모두에게 믹스 매치를 즐길 용기를 불어넣는다는 점에서는 분명 긍정적이다.
키코 코스타디노브 여성복만의 차별점은 액세서리다. 트리비아 백은 ‘잇 백’이 되었고, 슈즈 역시 인기를 끌고 있다. 액세서리를 옷의 일부인 듯 자연스레 융화시키는 능력이 특히 인상적이다.
로라: 액세서리는 여성에게 힘을 부여한다. 컬렉션을 선보일 때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타일링할 때 늘 액세서리에 집중한다. 도전적이지 않은 사람조차 도전하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모두를 위한 액세서리’를 만들고 싶다.
디아나: 길에서 우리가 만든 액세서리를 한 사람을 마주치는 것도 큰 재미다. ‘키코 우먼’이 어떻게 액세서리를 활용하고, 어떤 식으로 진화해왔는지 볼 수 있으니까. 키코로 도배한 커플도 종종 있다. 같이 길을 걷는 모습이 얼마나 예쁘던지.
다음 컬렉션에 대한 힌트를 조금만 준다면.
디아나: 언제나 그렇듯 과거의 컬렉션을 열심히 참고하고 있다. 손으로 짠 니트처럼 여성 공예가에게 영감받은 룩이 등장할 예정이다. 아, 그리고 패치워크까지!
키코 코스타디노브의 팬덤은 탄탄하고 컬트적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로라 & 디아나: 정말 그런가?
확실히 그렇다. 일단 나부터도 키코의 옷을 열심히 수집하고 있고!
로라: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잘 믿기지 않는다. 팬데믹 때 너무나 힘든 시기를 보냈기 때문에 더더욱. 1년 전까지만 해도 북런던에 위치한 스튜디오 하나에서 모든 것을 처리해야만 했던 우리가 ‘가장 컬트적인 브랜드’라니! 언제 들어도 놀랍고 기분 좋은 말이다.
키코 코스타디노브의 여성복을 정의한다면?
디아나: 한마디로 충분하다. ‘전복’. 여성성처럼 이미 존재하는 코드를 뒤집어엎고 우리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
소비자 역시 같은 정의를 내렸으면 좋겠나?
디아나: 키코 코스타디노브를 입는 모든 여성을 제한하고 싶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우리 옷을 입고 조금 더 주체적인 사람이 되는 것뿐이다.
- 사진
- Courtesy of Kiko Kostadi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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