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YP ‘보그’와 두 생리대 브랜드가 끼치는 선한 영향력
네 명의 여성 공학도가 뭉쳐 창립한 이너시아(Inertia)와 여성을 주체로 ‘섹슈얼 웰니스’를 추구하는 체레미 마카(Cheremi Maka). <보그>는 이 두 브랜드와 함께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소박하지만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Y존에 대한 본질적 가치를 되찾아가는 ‘Vogue.Y.Project’의 여정은 시작됐다.
굿네이버스에 850만원 상당의 생리대를 후원하며, 이는 여성용품이 필요한 국내 취약계층 여성 청소년에게 전달됩니다.
TECHNOLOGY
“소매 사이에 숨기거나, 파우치에 넣어야 하는 생리대가 아니었으면 했어요.” 2022년 론칭한 유기농 생리대 이너시아(Inertia)는 우리 여자들의 고민을 꿰뚫는다. 선두로 나선 대표 김효이를 중심으로, 이승민, 고은비, 박지혜까지. 카이스트(KAIST) 대학원에서 양자 공학과 생명과학 공학을 연구하던 네 명의 여성 공학도가 창업한 이 스타트업은 기술 발전에서 소외되어온 여성의 불편함을 직접 해결해보고자 하는 ‘젠지 엔지니어’들의 의지로부터 출발했다. 생리대 흡수제 소재로 활용되어온 SAP(석유 추출물 이용 물질)는 분해 과정에서 미세 플라스틱과 발암 물질을 배출한다는 의문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그 후 순면 흡수체가 속속 등장했으나 여전히 흡수력이 낮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이너시아 팀이 독자 개발한 독성 물질이 없는 천연 흡수체, ‘셀라텍스(Cellatex)’는 미세 플라스틱 검출량 제로. 분자 결합력을 강화하는 전자빔 공정을 통해 생리혈 흡수력을 높이되 해양에서도 생분해되도록 흡수체는 물론 외피까지 모두 100% 유기농 면화를 사용했다. 과학적 설명을 속속들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직접 사용해보면 알게 된다. 많은 생리량도 패드가 깔끔하게 흡수하고, 보풀이나 특유의 축축한 불편감이 느껴지지 않는 점이 새삼 놀라웠다. 기능성과 아름다운 디자인, 지속 가능성까지 겸비한 생리대의 성공에 이어 최근에는 여성의 ‘월경 웰니스’를 위한 기술 개발에도 참여해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이너시아를 직역하면 물리학에서의 ‘관성’. 수억 년간 이어져온 절대적인 기준인 관성의 법칙처럼, 우리 일상의 첫 번째 법칙이자 기준이 되길 원하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다.
각자의 역할이 궁금해요. 대학원에서 연구만 하지 말고 획기적인 무언가에 도전해보자는 김효이 대표의 제안으로 시작됐어요. 발전이 빠른 과학기술 분야에 몸담고 있는데, 막상 우리가 매일 겪는 일상의 변화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죠. 이너시아의 기본이 되는 기술은 생리혈과 생리대의 분자 결합을 좌우하는 ‘전자빔’이에요. 양자 공학도가 셋이기에 기술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것의 안정성과 생체 적합성을 전문적으로 검증하는 일은 생명과학 공학도가 담당합니다. 대표 김효이를 중심으로 흡수체 기술을 담당하는 고은비, 제품 개발 담당 이승민, 전반적인 재무와 운영 등의 살림을 도맡는 박지혜까지 서로 업무 분담이 확실해요. 창립 이후 빠르게 성장해 현재는 마케팅 전담 팀과 디자인 팀까지 구성원이 총 11명입니다.
생리대라는 아이템을 선택한 이유는? 젊은 여성이 소비와 트렌드의 주체인데, 그들을 위한 기술은 늘 부족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가장 불편한 것이 무엇일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 의견이 모인 것이 일회용 생리대였어요. 대체품이 다양하지만, 아직도 국내 여성의 90% 이상은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죠. 이토록 수많은 여성이 오랜 세월 사용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담긴 기술의 본질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점이 놀랍더군요. 2017년 생리대 파동 이후 겉면에 유기농 순면 또는 펄프 소재를 사용한 생리대가 출시됐지만 속 시원한 해결책은 아니었습니다. 펄프 소재는 특성상 압력을 가했을 때 생리혈이 다시 뿜어져 나오기에 쾌적함을 줄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대부분의 여성이 사용하면서도 그것 때문에 겪는 고통을 줄여보자는 의미에서 생리대 기술에 착수했어요. 미세 플라스틱이 없고, 불쾌감을 주지 않는 그런 일회용 생리대요.
이너시아의 강점은 기술인데, 소비자에게 설명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기술 개발을 담당하는 생산자다 보니, 우리가 연구실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설득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젠 방법을 터득한 것 같아요. 수술실에서 지혈 용도로 사용되던 천연 흡수체 소재라는 점을 강조했어요. 피가 나는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고, 이를 뽑고 난 자리에 거즈를 물리면 빠르게 피가 멎죠. 이런 반창고 기술에서 차용했다고 설명하면 이해가 쉽더라고요.
‘생리대답지 않은’ 디자인으로도 여심을 공략했죠. 뛰어난 기술도 기술이지만 그보다 더 쉬운 접근성으로 여성들이 직접 체험하게끔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니까요. 차분한 색감과 단순한 디자인을 적용했습니다. 파우치나 주머니에 넣지 않고, 어디서나 거리낌 없이 꺼낼 수 있어 좋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아직까지도 여성 건강에 대해 부족한 인식은 무엇일까요? 사실 관심을 갖고 유심히 지켜 보지 않으면 나의 생리통이 어디로부터 기반하는지 알 수 없어요. 식습관, 생리대 등 요인이 될 수 있는 것들이 수도 없이 많고, 작은 생활 습관만으로도 개선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관성처럼 십수 년을 겪어온 일이니까, 모든 여성이 다들 그 정도는 겪는다고 하니까 넘어가는 분위기라고 할까요? 진통제 몇 알 더 먹으면 해결되는 정도의 고통이라고 여기니까요.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고요. 전부 여성으로 구성된 기술 기획 팀으로부터 제안을 받아, iOS를 기반으로 월경 주기를 예측하는 웰니스 애플리케이션 공동 개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애플 워치와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연동할 계획이에요. 해외에선 ‘사이클 싱킹(Cycle Syncing)’, 즉 월경 주기에 따라 일상 계획을 짜는 키워드가 급부상하고 있어요. 우리의 목표는 여성의 호르몬 주기에 맞춰 한 달의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거예요. 길게는 일주일을 차지하는 생리 기간을 불편하고, 그저 허비하는 시간으로 보내지 않았으면 해요. 호르몬 주기에 삶의 사이클을 맡기면 삶이 더 편안하고 윤택해질 수 있어요.
최근 뿌듯했던 경험이 있다면? 홀트아동복지회와 긴밀히 연이 닿아 생리대 기부는 물론, 여성 아동들에게 생리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 있어요. Y존에 대한 기본 개념부터 난포기, 배란기, 생리대 착용법 등을 PPT로 정성껏 담아 아이들에게 설명했는데, 큰 임무를 완수해낸 기분이었어요.
카테고리 확장 계획은 없나요? 생리대 이후 조금 더 가벼운 소비재를 늘려갈 계획이에요. 우리만의 기술을 담은 외음부 세정제, 월경 전 증후군을 위한 여드름 패치처럼요.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 후에는 웰니스 플랫폼이나 디바이스까지 도전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요.
콘텐츠를 제작해본다면? 공신력은 지니되, 또래 여성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뉴스레터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어요. 생리 기간에는 달콤한 것이 당기잖아요. 우리끼리 우스개로 제목을 지어본 건데, 이름은 ‘달다구리 뉴스레터’예요. PMS의 다양한 원인과 생리 전후로 변화하는 몸에 대한 사진을 내용으로 실어보고 싶어요. 글을 읽고 응모하면 우리 동네 명물인 성심당의 ‘맛도리’를 30명에게 제공하고요.
이너시아의 ‘넥스트 스텝’은? 펨테크 산업이 넓어지기 위해선 좀 더 ‘가벼워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의학적 영역도 중요하지만, 여성의 삶의 질을 높이는 웰니스 분야로 확장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리대로 시작됐지만 세련된 디자인과 기술을 탑재한 제품으로 카테고리를 늘려가고 싶어요. 여성 웰니스계의 ‘다이슨’처럼요. 반복과 정체 없이, 지속적으로 뛰어난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거든요.
FEMININITY
‘섹슈얼 웰니스(Sexual Wellness)’.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성생활과 월경, 임신과 출산을 장려하는 브랜드 체레미 마카(Cheremi Maka)의 모토다. 국내 최초의 여성 중심 콘돔, ‘이브 콘돔’에서 카테고리를 확장하며 지난해에 브랜드명을 새롭게 리뉴얼해 생리대와 생리컵, 생리팬티, 젤과 외음부 세정제 등 다양한 여성용품을 제공하고 있다. 모든 제품은 순면 커버, 산림 보호 인증 포장재, PETA 인증을 받은 비건 성분과 투명하게 탄소 배출량을 공개하는 등 지속 가능성을 내세운다. 이 외에도 체레미 마카의 노선은 흥미롭다. 성생활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는 온라인 기반의 ‘섹스터디’, 청소년 콘돔 지원, 젠더 다양성 교육 등 다채로운 성 콘텐츠를 직관적으로 전달하지만, 조금도 자극적이거나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일하는 인물들과 그 소통 방식이 궁금해진다. 이브 콘돔의 탄생부터 체레미 마카까지, <보그>는 제품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이혜수 브랜드 매니저를 만났다. 올해로 스물넷,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 대한 반발심으로 대학 시절부터 비건, 여성 인권 관련 사회운동가로 활동해온 그녀는 첫 직장 체레미 마카에 안착했다.
‘여성 중심의 콘돔’이라는 신문물이 출발점이었습니다. 남성이 착용하는 피임 도구지만 여성 건강에 직결된다는 사실과 초점을 맞춰 무해한 원료를 사용했죠. 동일한 맥락으로 안전하고 위생적인 성생활을 돕는 ‘핑거돔’, 여성의 생리컵 제작으로 이어졌고요. ‘여성에게 이런 제품이 필요할 것 같은데?’ 모든 건 무형의 발상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펨테크 분야에 몸담으면서 놀란 사실이 있나요? 대부분의 윤활제, 즉 러브 젤이 ‘화장품’ 카테고리에 속한다는 것. 화장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피부 표면에 바르는 것이고, 윤활제는 여성의 질 점막에 적용하는 제품이죠. 체내에 흡수될 수 있는 제형이라면 ‘의료 기기’의 범주로 취급해야 하는데, 그동안 95% 이상이 화장품에 속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어요. 다행히 지난해 8월부터 식약처에서 이런 개인용 윤활제를 의료 기기로 분류해 안전성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됐어요. 마침내 승격이 이뤄지도록 브랜드에서도 끊임없는 의문과 민원을 정부에 제기했고요. 뒷면에 ‘의료 기기’로 표기된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과 지금, 체레미 마카를 둘러싼 분위기는 변화했나요? 전반적인 사회 인식이 개선됐어요. 콘돔은 물론, 러브 젤이 여성의 성감과 통증 방지를 주목적으로 한다는 점, 생리컵의 존재를 이제는 대부분 인식하고 있다는 것과 HPV 백신 예방접종을 받는 남성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죠. 최근 PMS나 질염 예방에 도움이 되는 건강기능식품 시장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고요.
‘섹슈얼 웰니스’의 우선 가치는 무엇인가요? 친밀함. 성관계라는 건 정열적이고 폭발적인 면도 있지만, 편안하고 따뜻한 면도 있죠. 체레미 마카가 추구하는 방향은 후자예요.하지만 어떤 관계와 성별도 금기시하지 않고 모두 포용하죠. 누구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좀 더 차분한 톤 앤 매너로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주요 전략입니다.
블로그에서 제공하는 성 지식이 흥미진진하더군요. 딱딱하지 않게, 조금 더 유쾌한 방식으로 성 지식을 ‘올바르게’ 알리고 싶었어요. 누구나 한 번쯤 가졌을 법한 의문이죠. 생리컵 사용법부터 특정 페티시, 자위 방법이나 동성 애인과 건강한 성생활을 즐기는 팁 등 매우 다양한 내용을 담아내고 있어요. 담당 에디터가 가끔 직원들을 인터뷰하기도 하죠. 다들 분위기가 독특할 거라고 예상하지만 사적인 영역인 만큼 모두 생각보다 매우 신중한 태도로 임해요.
일회용 생리대는 지속 가능성 실현과 충돌하는 면도 있습니다. 생리컵 영역에서 첫 히트작이었던 ‘이브컵’과 세탁해 사용하는 생리팬티처럼 대안적 여성용품을 주력으로 판매 하지만, 솔직히 편리성이나 대중적인 측면에서 일회용 생리대를 포기할 순 없더군요.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환경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유기농 순면 커버 소재를 채택하고, 소규모 기업임에도 이례적으로 제조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는 제도를 도입했어요. 생리대를 새롭게 발주할 때마다 탄소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원재료와 생산 공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특정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죠.
최근 주목하는 이슈가 있다면? 체레미 마카는 주로 2030 세대에 집중해왔어요. 하지만 요즘은 중년 여성의 Y존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개개인의 인식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갱년기 호르몬 변화와 중년 여성의 대표적 고민 중 하나인 질 건조증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순간은? 일반 소비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창구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을 깨달을 때. 인식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여성의 생식기나 질환에 대해 사회적으로 쉬쉬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니까요. 발화가 시작되기 위해선 친밀한 공동체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일례로 PMS의 증상은 분류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매우 다양하고, 반대 성향을 띠기도 하죠.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과 안도감을 모두 느꼈으면 해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오프라인 만남을 더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있어요. ‘찐팬 만남’이라는 이름으로 실제 소비자와 만나 성에 대한 고민도 나누고, 제품에 대한 피드백도 얻은 적이 있었는데 일말의 해방감마저 들더군요.
콘텐츠 제작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금 당장이라면 ‘산부인과 파헤치기’라는 채널명으로 어떤 검사를 주기적으로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영상을 제작해보고 싶어요. 최근 해외에서 초음파로 정자 생산을 억제하는 의료 기기의 출시 소식을 접했는데, 이런 신문물이 좀 더 다양해지면 가까운 미래에는 해외의 혁신적인 펨테크 제품을 직접 소개하고 체험하는 콘텐츠도 재미있을 것 같군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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