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다리지 말고 구겨 입으세요!
엄마가 팬티까지 다려줬다는 일화가 돌봄의 끝판이자 사랑의 징표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깨끗하게 빨래한 후 잘 다린 옷을 입는다는 것 자체에 자신을 돌본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죠. 구겨진 흰색 셔츠를 청바지에 마구 집어넣고 밖을 나서는 건 사실 10대 시절의 반란일 뿐이었습니다. 풀을 먹여 잘 다린 셔츠를 입으면 어쩐지 범생이 같고 갑갑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들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그 시절을 빼고는 구겨진 옷을 입고 나가기가 망설여졌습니다. 다리지 않은 옷을 입으면 자기 관리가 안 된 사람처럼 보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이런 생각은 옷을 대할 때 어떤 브랜드를 입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는 확신을 가지는 데 토양이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소재, 재단, 디자인, 마지막으로 다림질이 필수였죠. 구겨진 옷을 입고 나가는 건 어쩐지 부끄럽게 여겨져 아무리 급해도 물을 흠뻑 묻혀 쭈글쭈글해진 부분을 문지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코펜하겐 2024 S/S 패션 위크에서 패셔니스타들이 구김이 잔뜩 간 트렌치 코트나 셔츠를 입고 환하게 웃는 사진을 마주하고선 적잖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리넨의 아름다움은 바지가 구겨지거나 더위에 소매가 말려 올라가거나 단순히 흐트러진 시트 등 원단의 특성을 각인시키는 능력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니까 구김은 리넨 같은 천연섬유에만 멋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울, 새틴, 저지 등에도 줄이 쫙쫙 그어져 있는 것을 보면 트렁크에서 바로 꺼내 다림질 없이 입었다는 느낌이 들었죠. 런웨이에서 구겨진 옷을 입는 것은 더더군다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주목하는 무대임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 행동이죠.
개구쟁이 JW 앤더슨이 구겨진 옷을 런웨이에 올렸을 때 그것은 위트였습니다. 하지만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2023 F/W 컬렉션에서 구겨진 셔츠와 드레스, 누가 봐도 일부러 구기고 꼬았다가 바로 모델에게 입혔을 법한 스타일로 런웨이를 채웠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졌죠.
여기에는 자유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습니다. 상황에 맞지 않는 것을 했을 때의 해방감! 다림질하지 않아 구조적이지 않고 모양이 흐트러진 옷을 입을 때의 그 편안함 말이죠.
코로나 기간 편안함에 대한 수요는 라운지 바의 카운터를 돌아 파티 드레스까지 이어졌습니다. 패션은 이제 덜 구성적이거나 덜 완벽한 새로운 이미지를 제안하고 싶어 합니다. 신발과 옷 선택이 우리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 경우엔 구겨진 옷을 입는 것이 소홀함의 표시가 아니라 자유에 대한 열망이 될 수 있습니다.
다림질에 시간과 돈을 빼앗기는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도 있죠. 자기 관리는 완벽한 옷으로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셔츠를 한번 입어 구겨지거나 청바지를 건조대에서 꺼내 입고 바로 외출해도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겁니다. 다림질 대신 필라테스를 하러 가거나 인스타그램에서 눈여겨보던 음식을 만들거나 그냥 누워서 음악이나 들으렵니다. 자기 관리 차원에서요!
- 포토
- Acielle/Style Du Monde, Getty Images, Courtesy Photos, 각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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