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주얼리

시간과 클래식

2023.09.19

시간과 클래식

시간의 소리와 시계의 소리는 어떻게 들리는가. 여기, 천상의 소리가 손목시계에서 들린다.

“‘띠-딩’보다는 ‘띠-디잉, 띠-디잉’ 해야죠.” 현존하는 최고의 시계 제작자 필립 듀포(Philippe Dufour)가 자신의 전설적인 미닛 리피터(Minute Repeater)와 소네리(Sonnerie)의 긴 종소리를 묘사하는 모습은 오케스트라에 설명하는 지휘자 같다.

미닛 리피터는 온디맨드(On-Demand) 방식으로 소리를 내 시간을 알려준다. 케이스 밴드의 레버를 당기면, 작은 공을 치는 미니어처 해머가 활성화된다. 이는 시를 나타내는 낮은 차임, 15분을 나타내는 더블 차임, 분을 나타내는 높은 차임으로 이루어진 조화롭고 느린 음악을 만들어낸다. 영국의 시계 제작자 다니엘 퀘어(Daniel Quare)가 1680년에 만든 회중시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발명품은 1892년에 루이 브란트 & 프레르(Louis Brandt & Frère, 2년 후에 오메가가 된다)가 선보인 손목시계에 처음 등장했다. 가장 복잡한 미닛 리피터는 웨스트민스터의 종소리와 같은 멜로디를 사용하고, 여기에 15분 단위로 울리는 그랑과 쁘띠 소네리만의 가치가 더해진다. 차이점이라면, 그랑 소네리는 15분마다 시와 15분 단위의 분을 알려주는 데 비해 쁘띠 소네리는 정각에만 시를 알리는 차임이 포함되고 그 외에는 15분 단위의 분만 울린다는 점이다.

미닛 리피터의 본질을 생각한다면, 듀포가 스위스 발레드주에 있는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클래식을 듣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클래식을 들으면 평온해지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될 거예요.” 그는 공을 만들 때 피아노 줄에 사용되는 것과 동일한 강선을 잘라 딱 맞는 음을 찾는다. “그리고 울림을 위해 각기 다른 곳에 두죠.” 그가 시계 컴플리케이션 중 가장 어려운 부분에 대해 설명했다. 각각의 공을 완벽하게 만드는 데는 수백 시간이 걸릴 수 있고, 맑은 음색을 내는 데 강철 경화 같은 화학작용도 필요하다. 강철 경화는 일반적으로 강철이 빨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열을 가한 뒤 오일에 담그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바이올린 소리가 본체의 영향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리피터 시계의 음질은 케이스에 따라 달라진다. “밀도 때문에 로즈 골드가 화이트 골드보다 낫고, 플래티넘은 별로 좋지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다른 재료를 쓰기도 해요. 쇼파드의 사파이어 미닛 리피터처럼요. 훌륭한 물건이죠. 공의 진동이 유리를 타고 울려 퍼질 때 그 소리가 정말 아주 깨끗하고 맑아요.” 듀포가 언급한 것은 쇼파드 L.U.C 풀 스트라이크 사파이어 2022년 모델로, 사파이어 크리스털 공을 단일 부품으로 가공해 금속 미닛 리피터에 비해 더 깨끗하고 길고 조화로운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마법 같다. 와인 잔을 두드려본 사람이라면 유리가 얼마나 소리를 잘 전달하는지 알 것이다.

쇼파드의 공동 대표 칼 프리드리히 슈펠레(Karl-Friedrich Scheufele)는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송(Renaud Capuçon)에게 연락해 예술적 조언과 감정적 지지를 구했다. 로잔 챔버 오케스트라와의 리허설을 잠시 멈춘 카퓌송이 말했다. “이 시계의 핵심은 소리의 깨끗함이에요. 위대한 음악가가 배움과 탐구를 멈추지 않듯, 이런 수준의 시계를 제작하는 것도 똑같아요. 혁신을 창조하려 하죠.” 특별히 F와 C# 음을 내기 위해 베젤, 크라운, 케이스백, 후면 글라스, 케이스 밴드, 다이얼을 모두 사파이어 크리스털로 만든 쇼파드의 시계를 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2013년 피아제 칼리버 1290P 같은 다른 무브먼트는 시를 표현하는 데 G#, 분을 표현하는 데 A# 음을 이용한다.

2020년 루체른에 본사를 둔 칼 F. 부커러(Carl F. Bucherer)는 스웨덴 작곡가 리사 스트라이히(Lisa Streich)에게 트리플 페리퍼럴(Triple Peripheral) 기술이 적용된 모델 ‘Symphony’를 소재로 음악을 만들어달라고 의뢰했다. 스트라이히는 ‘Periphery’를 작곡했고,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단원 22명이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부터 브리트니 스피어스까지 모두가 다녀간 전설의 베를린 텔덱스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이 신비롭고 실험적인 음악은 시계 소리를 모방했을 뿐 아니라 ‘심포니’의 특허 받은 기계식 무브먼트에서도 영감을 받았다. 예를 들어 미친 듯이 회전하면서 윙윙거리는 활은 페리퍼럴 로터를 흉내 내는 것이고, 관현악 부분은 가장자리에 떠 있는 투르비용에 음악적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며, 팀파니 위에서 연주되는 트라이앵글이 가장자리에 있는 미닛 리피터의 레귤레이터를 표현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은 그랜드피아노로 연주한다. 스트라이히는 “재미있는 시계예요. 기계적인 움직임과 순수하면서도 논리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소리와 차임에 어린아이처럼 빠져들죠.”

칼 F. 부커러의 최고 기술 책임자 사미르 메르다노비치(Samir Merdanovic)는 속도와 리듬의 중요성에 동의한다. “‘트리플 페리퍼럴의 심포니’가 11시 59분을 표현하는 데는 20초가 소요됩니다. 시를 나타내기 위해 낮은 음을 열한 번 치고, 45분을 나타내기 위해 더블 차임을 세 번, 14분을 더하기 위해 높은 음을 열네 번 치죠. 더 빠른 리피터라면 15초 정도 걸리겠지만, 그러면 시각을 정확히 듣기 어려울 수 있어요.” 사미르는 이렇게 설명한다.

시계가 연주하는 진짜 선율을 듣고 싶다면, 18세기 오르골에서 영감을 받아 뮤지컬 무브먼트를 탑재한 시계가 있다. 대부분의 오르골은 회전 실린더 또는 디스크에 튀어나온 돌기가 빗 모양 금속편을 ‘연주’하며 여러 음이 나는 것이다.

크리스토프 클라레(Christophe Claret)는 1990년대 중반 오르골을 현대화한 시계 제작자로, 모차르트의 ‘작은 밤의 음악’과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제라드-페리고(Girard-Perregaux)의 ‘Opera Three’ 같은 주목할 만한 시계를 탄생시켰다. 올해는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2번 B단조 ‘Badinerie’의 일부를 들을 수 있는 브레게의 ‘La Musicale’이 10주년을 맞이한다.

20세기 음악을 선호하는 이들을 위한 뮤지컬 워치도 있다. 인상적인 디스크 기술이 적용된 율리스 나르덴(Ulysse Nardin)의 ‘Stranger’ 2013년 모델에서는 변함없이 인기 있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스탠더드 팝 ‘Strangers in the Night’가 연주되고, 2022년에 제이콥앤코가 제작한 ‘오페라 갓파더 50주년’은 실린더를 사용해 영화 주제곡에 나오는 120음을 연주한다. 이 분야의 또 다른 주요 기업은 루즈(Reuge)다. 루즈의 역사는 1796년 역사상 첫 온디맨드 음악 재생 장치인 앙투안 파브르 오르골로 거슬러 올라간다. CEO 아므르 알오타이샨(Amr Al-Otaishan)은 “그 전까지는 라이브로 연주되는 음악만 들을 수 있었어요”라고 말한다. 루즈는 오랜 시간 손목시계 제작에 참여해왔지만, 그보다 유명한 루즈의 오토마타는 2021년 MB&F와 협업으로 탄생한 ‘뮤직 머신 1 리로디드’다. 뮤직 머신 1 리로디드는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 딥 퍼플의 ‘Smoke on the Water’, 존 레논의 ‘Imagine’, 존 윌리엄스의 ‘The Imperial March’와 제리 골드스미스의 <스타 트렉> 테마곡을 각각 35초씩 연주한다. “회사 소속 음악 기술자 일곱 명이 개발한 제품입니다. 음악 기술자는 음감이 뛰어나고, 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으면서, 음을 만드는 데 기계를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죠.” 알오타이샨이 설명했다.

미닛 리피터와 뮤지컬 워치를 비교하는 일은 필립스 옥션 유럽·중동의 시계 부문 대표 알렉상드르 고트비(Alexandre Ghotbi)에게 어려운 일이다. “뮤지컬 워치는 음악을 연주하지만, 그 음악이 시각을 알려주진 않습니다. 반면 미닛 리피터는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시계의 의미가 더 강합니다.” 고트비는 이렇게 말하며, 이런 이유 때문에 파텍 필립, 바쉐론 콘스탄틴, 까르띠에, 랑에 운트 죄네, 오데마 피게, 카리 보우틸라이넨이 만든 리피터에 비해 뮤지컬 워치가 2차 시장에서 유행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1930~1950년대 빈티지 손목시계는 특히 인기가 좋습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복잡한 컴플리케이션을 소형화할 수 있는 제작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희소성이 있죠. 미닛 리피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경험과 음감, 손재주가 있어야 합니다. 1센티미터의 만분의 일만 벗어나도 엄청난 차이가 생깁니다. 그러니까 최고의 소리를 찾은 순간 바로 멈출 줄 알아야 하죠.”

필립 듀포는 미닛 리피터와 뮤지컬 워치를 비교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고,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본다. 그는 “목표는 같습니다. 좋은 음을 가진 무언가를 만드는 거죠”라고 말한다. JMC 뤼트리(Lutherie)가 특별히 만든 공명 증폭 홀더에 시계를 올려두어 차임의 미묘한 매력을 드러내보는 건 어떨까? 스트라디바리우스에 사용되었다고 알려진 것과 동일한 발레드주 리주 숲의 가문비나무로 만든 제품이다. (VK)

    Anders Mod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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